현대 예술, 어떻게 볼까?
―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전 미술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서관에서 너덜너덜해진 렘브란트 화집을 보는 걸 좋아했고, 조금 자라서는 에드워드 호퍼 그림들 속의 쓸쓸함과 스산함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 해외 유명 미술관들이 무슨 패키지 행사처럼 하나하나 방문(?)하기에, 몇 번 저도 큰 맘 먹고 덕수궁 미술관이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이니 들락날락했었지요~. 하지만 미술관에서 어린아이들이 그림 보기 싫다며 떼쓰는 소리, 증거 자료 남겨야 한다며 사진 찍는 소리, 무슨 수용소도 아니고 다들 줄 서서 떠밀려 움직이는 걸 보며 전 그저 화집으로 만족하기로 했답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모르는 그림을 보거나, 형태를 알 수 없는 낯선 그림을 만날 때였습니다. 이건 현대 음악가 리게티의 보컬 작품집을 처음 듣거나, 쇤베르크의 피아노곡을 들을 때와는 또 다릅니다. 리게티나 쇤베르크를 들을 땐, ‘아, 도대체 이게 음악이냐!’ 하며 우선 씨디를 뺀 다음, 어쩌다 호기심이 생기면 들어 보고, 그러다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현대 미술 쪽은 미술관 가서 ‘이게 그림이냐!’ 혹은 ‘이게 조각이냐!’ 하는 이야기를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뭐랄까, 마음속으론 이미 이해불가라고 판정을 내리면서도 겉으로는 이해한 척, 다 아는 척, 고상하게 머리를 끄덕거리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요~. 어쨌든 돈 내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하기 싫어서, 유명한 현대 미술가가 작품 전시회를 한다고 해도 전 잘 안 간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스퍼 존스 作 <성조기>
_ 이 책에도 등장한 그림이지만, 저도 예전에 이 그림을 화집에서 보며 고민 많이 했답니다. 뭔지 모르겠다 하면서도, 남들에게 이거 잘 모르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답니다. ㅋㅋ

그런데 저만 요런 생각을 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주 약도 못 먹는 임산부 감기를 앓으며 고열의 고통을 참기 위해 읽었던 책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의 저자 에프라임 키숀도 저처럼 현대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에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더라구요. 이 아저씨가 말하는 것들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역시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부분들이 꽤 많았답니다. 현대 예술을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대중을 상대로 지적 사기를 치고 있다는 부분이라던가, 낡은 가족사진이나, 망가진 집기들을 갖고 쓱싹 콜라주를 만들어 작품이라고 내놓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너, 나 지금 놀리는 거얌?’ 뭐 이런 생각하지 않겠어요~.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아마 이 책 읽으신 분들은 모두 이 부분을 지목해서 웃겼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만―두 마리 침팬지가 물감으로 마구 채색한 그림을 저기 함부르크 어느 동네에 전시를 했는데, 그 그림을 보고 모두가 진지하게 감상하고, 예술 전문가들은 그 그림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 예술을 너무 엄숙하게 대하는 태도는 오히려 예술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게 하고, 해석만 넘쳐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현대 예술과 예전에 귀족들에게서만 소비되던 예술은 다를 게 없습니다. 의미를 뒤집어 버리고, 우리 안에서 친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보도록 만들어 주던 현대 예술이 긍정적인 점들이, 저런 엄숙주의 때문에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히텐슈타인 作 <행복한 눈물>
_작년 이맘때, 이 작품은 삼성의 미술품 비자금 의혹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됐습니다(진품 확인을 위해 단 25분, 그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100억이 넘는 작품이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죠. 에프라임 키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하는 것은 예술과 문화의 본질적인 가치 평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작품 하나하나에 터무니없이 돈을 처바르고, 그 작가들을 신격화하며 알 수도 없는 말로 칭송하는 것은 돈에 대한 탐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현대 예술에 대해 호의적인 해석만 넘쳐 나고, 비판하는 의견이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이건 단순히 아저씨가 지적하고 있는 미술계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가끔 들락거리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싸이트만 하더라도, 현대 음악 이야기만 나오면 게시판이 초토화되거든요.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이야기는 기본이고, 그게 음악이냐? 뭐 이런 이야기도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음악을 듣고 사람마다 체험하는 감각의 수준은 전혀 다를 텐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걸 그 음악의 좋고 나쁨으로, 무식과 유식의 문제로 구분해 버리니까요. 에프라임 아저씨가 지적하는 문제도 그런 부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상하고 알 수 없게 느껴지는 작품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고전적인 화풍 안에서 이게 예술이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꼭!! 그걸 못 느끼다니 넌 무식해, 그 유명한 xx의 작품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미적 수준이 형편없군~ 하는 식으로 변질되는 것이죠.

여기서 예술 작품의 수용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 그저 아저씨가 말한 대로, 쉽게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뭐라고 지적하면 네가 무식해서 그래 하고 입을 막아 버리는 요런 태도들, 요게 문제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예술 작품들이 하나의 표지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내가 어느 화가의 작품을 안다고 하면, 혹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지적·경제적·문화 향유 수준이 단번에 드러나게 되는 거지요. 전 그래서 에프라임 아저씨의 지적대로 현대 예술이 단순히 대중에게 새로운 예술적 행동이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방식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는 것이죠. 모두가 아는 것은 저널리즘적인 것이라고 폄하하면서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유리되어 그들만의 구별짓기를 하는 것일지 누가 알겠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벌거벗은 임금님
_ 우리는 왜 현대 예술 앞에선 이렇게 작아지는 것일까요? 솔직하게 말해도 아무 문제없을 텐데, 어쩌면 우리는 너무 주눅 들어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책을 다 읽고도, 미술관에 가서 당황하지 않고 ‘어 이게 그림이냐~’ 할 자신은 아직 없습니다. 에프라임 아저씨는 그 많은 현대 예술 작품들이 간단하게 나온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진지한 현대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그럴 텐데, 한 번에 그걸 무시할 순 없죠. 그래도 말입니다~ 모르면 정말 모르는 건데, 무시하고, 그걸로 사람의 위치를 규정짓고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누군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복잡했던 생애와 관련해 작품을 다시 한번 감상해 보기를 넌지시 권할 수도 있고, 팝아트가 왜 아트에요?라고 묻는 어린 아해가 있다면, 잘 아는 분이 팝아트의 등장 배경과 의미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 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관객이나 관람자들도 예술을 눈만 즐거운 감상용이 아니라, 조금씩 알아가야 할 무엇으로 생각해 주면 더더욱 좋은 거구요.

- 편집부 강혜진
2009/03/17 11:00 2009/03/17 11:0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55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