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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예감』은 오키나와(沖繩)에 관한 책입니다. 오키나와라…. 이 책의 원고를 만지기 전까지 사실 제게 오키나와는 피상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 본토 중 유일하게 전장(戰場)이 되었던 곳, 동아시아 최대의 미군 기지가 있는 섬. 이렇게 시사 상식 한 두 줄로 정리되는 ‘일본의 한 지역’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한 권의 책을 편집하다 보면, 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이번에 만난 세계는 바로 오키나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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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_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한반도와 중국 일본 대만의 한복판이니 정말 ‘요충지’라 할 만하네요. 여기에 그렇게 큰 군사기지를 확보해 놓았으니… 미군들은 출동하기 ‘참 쉽죠잉…’할 만합니다.

오키나와의 옛 지명은 류큐(琉球)입니다. 1879년 일본에 합병되기까지 류큐왕국이라는 독립된 중앙집권국가로 존재했습니다. 1429년에 통일된 중앙집권국가를 형성하고, 1879년에 망한 것이니, 한반도의 조선(1392~1910)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흥망을 겪은 셈입니다. 17세기부터 일본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패망하기 전까지는 중국과 일본에 동시에 줄을 대면서 독립국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었습니다. 이 류큐왕국이 메이지유신 직후, 일본 ‘제국주의’의 첫 희생양이 됩니다. 병합된 오키나와에서는 일찌감치 징병제가 실시되었고, 오키나와 출신 ‘일본군인’들은 히노마루(日の丸) 깃발 아래 대만으로 조선으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진군하게 됩니다. ‘천황 폐하’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내지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에게 류큐는 반식민지로 노동력과 병력의 공급처일 뿐이었고, 여차하면 무력으로 진압해야 할 폭도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류큐인/오키나와인’이라는 언명에는 언제나 폭력이 잠재해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살해당한 오키나와인+들에게서, 2차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에서 옥쇄를 강요당한 오키나와인++들에게서 그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 1923년 도쿄 일원인 간토(關東) 지역에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치안부재 상황에서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돌아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사건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자경단은 주로 발음과 이름으로 조선인들을 구별했는데, 이때 오키나와인이나 중국인, 지방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자, 일본 정부는 본토 상륙을 늦추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옥쇄’를 명령했다. 군인․민간인 할 것 없이 싸우다 죽든, 자살을 하든 남김없이 죽으라는 명령이었는데, 실제로 전투가 끝난 뒤 동굴들에서 서로를 죽인 처참한 시체들이 발견되었다. 이 때의 전투에서 오키나와 주민의 3분의 1이 사망했다고 한다.

“관동대지진 당시 표준어를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조선인이 살해되었다. 너희들도 자칫 오인되어 살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 오키나와 어느 소학교 교사의 발언
(「서장」 중에서)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郞)가 『폭력의 예감』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잠재된 폭력의 양상입니다. 폭력을 예감한 자의 신체에서 드러나는 떨림. 더 미개한 자들과의 구분으로 혹은 지배자와의 동일시로 그 폭력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 떨고 있는 자들의 노력. 하지만 반(半)식민지의 일원으로서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되어야 하는 상황. 이렇게 오키나와를 준거점으로 삼아 도미야마 이치로는 당장 눈앞에 날아오는 몽둥이나 총탄만 폭력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말로 구분짓는 데 잠재해 있는 폭력, 그 폭력을 예감하고 떨고 있는 동시에, 폭력을 가하는 자들과 동일시하려는 욕망. 이것들이 바로 폭력이 작동하는 양상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공포와 불안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만큼, 도미야마 이치로의 ‘폭력론’이 잘 맞아 떨어지는 곳도 드물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편집이 막 시작되었던 1월에 상징적인 사건들이 둘이나 있었습니다. 1월 7일 미네르바의 구속과 1월 20일의 용산참사입니다.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언론 탄압과 함께 이 사건들은 이 땅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정권이 구사하는 이 ‘공포의 정치’ 앞에서 (지난 정권 그렇게 ‘강직했던!!’) 공무원들(‘사법부’, 국정원, 검찰, 경찰 등등 몽땅)과 언론들은 알아서 기기 시작했고, 인터넷 댓글에는 스팸만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과 ‘실업’이라는 공포는 ‘직장’에 더 충실하라고, 더 ‘좋은 스펙’을 쌓으라며 몰아치고 있고, 사람들은 그 절망의 길을 따라 쉼 없이 내달리고 있습니다. 작년 촛불집회의 그 발랄한 저항을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땅의 ‘쥐’들은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지도 모릅니다. 『추방과 탈주』의 고추장님 말처럼, 주변으로 몰릴수록 더 지배적인 가치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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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구속과 용산참사
_ 우리의 일상에 내재한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은, '짱돌을 들고 나서는 자'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자-저항을 두려워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신체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짱돌을 들고 나서는 자’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자의 신체에서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찾으려 한 도미야마 이치로의 시도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짱돌을 들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전향한 자들’과 ‘겁쟁이들’의 신체, 즉 저항을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신체로부터 저항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용산참사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듯이 이제 그 공포의 구조를 통째로 뒤집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용산참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망막에 남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시체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볼 뿐이다. 그 죽음의 순간에 본 영상을 망막에 새겨 넣은 채 시체는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그 망막에 새겨진 영상에 등장하는 자는 비록 시체 옆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시체는 아니다. / 총살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이미 총을 맞은 자가 그 죽음의 순간에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의 옆얼굴을 자신의 망막에 포착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시체의 얼굴은 아니다. 또한 그 옆얼굴은 죽음이 예정되고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자의 얼굴도, 그렇다고 총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밝은 얼굴도 아니다. 그리고 폭력에 저항할 가능성에 대해 사고하고자 한다면 사자의 망막에 포착된 바로 곁에 있는 자의 옆얼굴에서 시작해야 한다. 시체 곁에 있는 자는 언제나 응시되고 있으며, 응시되고 있다는 것은 다음 총살을 기다리는 사람의 운명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본문 중에서)


- 편집부 박순기

2009/04/16 10:50 2009/04/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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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몬에이드 2009/04/23 19:13

    이 시대의 슬픈 단상인듯...

    확실히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보면 말이죠 =ㅅ=

    • 그린비 2009/04/23 20:35

      네.. 다른 곳 다른 시간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죠 =ㅅ=

  2. 블리디 2009/08/03 22:36

    처음에 들어가기가 상당히 힘드네요.
    오키나와에 대한 새로 알게 되거나 다시금 고민하게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좋은책 출판 감사드려요

    • 그린비 2009/08/04 10:27

      블리디님, 감사합니다. 열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