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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며칠 전,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메일 계정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 ‘엄마야’ 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혼자 소리 지를 뻔했습니다. 메일 사이트에 로그인 하자 한 통의 이메일이 눈에 띄었는데,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의 저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의 영문 이름이 적힌 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목 옆에 간단하게 드러난 본문은 무려! ‘Dear Park Kwang Soo’로 시작하고 있었고요. 전 이것만 보고 영국에 있을 그레이버가 제게 친히 메일을 보낸 것으로 착각했기에 놀랬던 거죠. 무슨 내용의 메일일지 떨리는 마음으로, 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메일을 열어 본 순간,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고 마음을 접었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의 저자, 데이비드 그레이버
_ 왼쪽의 검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입니다. 외모에서부터 고루한 인류학자의 느낌을 찾기 힘듭니다.

당연하게도, 그 메일은 그레이버가 제게 직접 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예일 대학교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하자 이 사건의 불합리성을 알리고 그와 연대하기 위한 인터넷 서명을 받기도 하는 홈페이지 ‘Solidarity with David Graeber’(http://www.geocities.com/graebersolidarity)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저자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이 사이트에서 인터넷 서명 운동을 하고 있는 걸 보고는 이미 그레이버가 예일 대학교를 떠나 영국의 런던 대학교에 자리를 잡았고, 2005년에 벌어진 일이니 그 사건과 관련해서 더 이상 진행되는 게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담당 편집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서명을 했더니, 감사하다고 홈페이지에서 자동으로 보낸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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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의 포스터
_ 서문 도비라(부의 제목을 써넣어 구성한 부 표제지)에 들어갈 뻔한 사파티스타의 포스터.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이들의 활동이 저자의 작업에 영감을 주고, 또 동기부여를 했을 것입니다.
처음 이 책의 편집을 시작하며 그레이버의 이런 이력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정치색이 짙고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점이나, 저명한 인류학자이면서 아나키스트 활동가이고 또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과 연대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 등은 그가 평범한 상아탑 속의 학자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편집을 진행해 나가면서 이 책에도 그의 이런 이력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치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에서 시작해, 풍부한 인류학적 사례들 속에서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철학과 대비되는 점을 찾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의 편집을 진행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것 중 하나는 기존의 인류학 서적과는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목적이 사파티스타들의 구호처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호소이며 그 가능성을 열어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 책이기에 평범한 인류학 서적처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표지를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나 제목을 결정할 때 특별히 이 점을 유념해야 했습니다(표지를 본 저자 그레이버는 이런 반응을 보였더군요. very dramatic one. It's a little scary but it's very effective!).

그레이버는 올해 7월 중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리는 제3회 국제워크숍 <인류학과 그 가능성들>+에서 일주일 동안 공개강연회와 그의 저작들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독특한 인류학자를 시간이 허락한다면 직접 만나 보고 싶습니다.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그의 책들에 담긴 사유를 들어볼 수도 있고 그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리는 제3회 국제워크숍 <인류학과 그 가능성들>의 일정 및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 편집부 박광수

2009/04/21 10:19 2009/04/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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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go2sm 2009/04/21 11:20

    이런 편집 비하인드 스토리 너무 좋네요.
    저도 저자 지인들에게 영문 메일(건너 건너서라도^^) 받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이 책 표지도 참 마음에 들어요. 수유너머 세미나에 참석해야할텐데...ㅠ

    • 그린비 2009/04/21 11:26

      에고이즘님, 감사합니다. ^^*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 궁금해 지는 걸요.ㅎ 수유+너머에서 뵐 수 있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