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책을 못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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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책을 잘 못 읽습니다. 아니, 잘 안 읽습니다-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냐구요? 안되지요_;; 책을 읽어야 하는데도, 그렇게 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책을 읽지 못하는 (혹은, 읽지 않는) 이 상황! 정말 괴롭습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제가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돌이켜보아도, 전 책과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죠, 대학시절에도 도서관에서 일(아...책읽기나 공부가 아니네요;)했죠, 심지어 전공도 문헌정보학입니다. 순전히 책이 좋아서였달까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난독증에 걸린 것 마냥 책만 보면 글자들이 눈에서 튕기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이 책을 들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책 읽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된 걸까요? (출판사 다닌다면서 책도 안 읽고, 책 읽는 게 힘들단 말이나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니!하는 질타.. 각오하고 씁니다. 녜..)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난 왜 책을 못 읽게 된 걸까? 그런데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란 걸 깨달았죠. ‘왜 책을 못 읽게 된 걸까’라는 말은 ‘예전엔 잘 읽었다’라는 말인데, 예전엔 잘 읽었다? 그럴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책을 좋아한다, 책을 잘 읽는다’라고 했을 때의 그 ‘책’은, 시험 전날 교과서 대신 읽었던 소설, 동생과 싸우고선 방문 걸어 잠그고 봤던 만화, 친구나 애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읽었던 여행 에세이, 현실의 무게가 버거울 때 종종 손에 집어 들었던 가벼운 시집…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글들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천 권의 책을 읽는 것, 한 권의 책을 천 권처럼 읽는 것, 천 권을 읽어도 한 권도 안 읽은 것처럼 읽은 것”
(이만교,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근간)

그런 책읽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책읽기에는 재미나 감동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독서도 필요한 법이죠. 다만 전, 책을 ‘천 권을 읽어도 한 권도 안 읽은 것처럼’, 그렇게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듯이 책을 읽는, 현실도피용 습관, 딱 거기까지였죠. 그런 책읽기는 힘이 들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생각일랑 접어둔 채 습관처럼 문단에서 문단으로, 이 페이지에서 저 페이지로 눈만 따라가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읽으려 하는 (혹은 읽어야 하는 ^^;;) 책들은 현실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이 ‘단언컨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그것은 어렵다는 것과는 별개의 차원으로, ‘어려워서 못 읽는다’라는 것보다 ‘불편해서 읽고 싶지 않다’에 가깝달까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고,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하는 (고추장님의 말을 빌리자면, 생각을 깨고 생각을 낳아야 하는) 그럼으로써 내가 변하고 또 삶이 변하는 그런 책이기 때문입니다. 문단에서 문단으로 눈만 따라가면 되는 책읽기에 익숙했던 제 몸은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공백까지도 온몸으로 읽어내야 하는 그 책들을 감당하기엔 버거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생각이나 몸이 변하는 것을 여전히 불편해 하고 예전의 책읽기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같은 방법으로 지금의 책들을 읽으려 했죠. 그러다 지치면 책 대신 TV를 보고, 책 대신 인터넷을 하고, 책 대신 음식을 탐하고……. 현실에 맞서기보다 현실을 피하고 내 몸이 편한 것만 찾는 것, 초콜릿이나 달콤한 말처럼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 주면서 타성에 젖은 삶을 그대로 살게 하는 것들에만 익숙한 신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폐쇄된 신체들, 개체 간, 자신의 내부와 외부 간에 고정된 경계를 갖는 신체들은 진화하지 못한다. 이는 신체가 영원히 고정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적응력 있는 구성체로서 심대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How To Read 니체』, 본문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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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무제>(1950)
_ 책을 삶에서 분리시키고 나의 내면만을 견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나요?
책을 잘 읽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바로 경계없이 언제나 변화할 수 있는 신체였던 것입니다.

아…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런 제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 이 글을 쓰면서 책과 마주했더니, 제 안에만 갇혀있던 생각이 열리고 굳어있던 신체가 반응하면서 책 속의 글자들이 점점 눈에 머리에 몸에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편함을 떨치고 변화하려는 노력을 제 몸도 조금쯤은 알아준 거겠죠? ^^;
이젠 저도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요? :)

- 마케팅팀 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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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8 11:18 2009/04/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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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책으로 이야기 해봐요.

    Tracked from 작은outsider의 생각누리 2009/04/28 14:37  삭제

    오늘은 날씨가 무지하게 좋네요. 이제 곧 더워질 테니 미리 미리 준비하심이 좋을듯 합니다. 책을 읽는 법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해보려고해요. 책을 읽는 법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재미난 영화를 보듯이, 또는 재미난 게임을 하듯이 하면 되겠지요. 내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재미나게 읽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마세요.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것이니까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혹은 대학에 오니 교수님들이 알려주는 뭐 그런 교과서적인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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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리안 2009/04/28 13:34

    뇌회로가 변경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뇌의 장기가 유연성 아니겠습니까?
    독서머신 되시는 건 시간 문제일 듯...^^

    • 그린비 2009/04/28 13:53

      길리안님, 안녕하세요~
      옙, 변화의 시동을 걸었으니 이제 책읽기-기계가 될 수 있겠지요...? ^^*

  2. 무량수 2009/04/28 14:39

    책을 막 읽기 시작하던 시절에는 책을 읽어야만 하는 직업이 나한테 딱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ㅡㅡa 세상이란 곳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취미가 일이 되는 순간 그것은 취미가 아니다 라는 사실이더군요....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좀 건방진 생각인지 모르지만 제 생각이 담긴 책에 대한 글을 트랙백에 걸어두고 가겠습니다. ^^;;

    • 그린비 2009/04/28 14:44

      무량수님, 안녕하세요.
      책읽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독서토론에 대한 생각까지 쓰신 트랙백 잘 받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3. ego2sm 2009/04/28 18:53

    하하, 책읽는 여인의 사진이 참 섹시하네요^^
    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강조하는 글 같네요.^^
    몰입할 수 없다면 TPO를 변화시켜라. ㅋ
    생활형 독서가의 작은 충고 던지고 갑니다.

    • 그린비 2009/04/29 09:34

      에고이즘님, 안녕하세요.
      TPO를 변화시켜라~ 옙, 감사합니다. ^^*

  4. 한방블르스 2009/05/03 10:30

    이만교님의 새 책은 꼭 읽어 봐야겠습니다. "천 권을 읽어도 한 권도 안 읽은 것처럼 읽은 것"가 머리를 때립니다.

    시계를 꺼내어 자랑하듯 학식을 꺼내 보이지 말라.
    대신 누군가 시간을 물어보면 조용히 시간만 알려주어라

    • 그린비 2009/05/04 09:30

      한방블르스님, 오랜만에 뵙네요.
      이만교 선생님의 새 책, 드디어! 나온답니다~
      좋은 말씀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