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김영대, 박찬우, 신승렬, 오준환 (지은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출간일 : 2006-08-16 | ISBN(13) : 9788946035539
반양장본 | 430쪽 | 225*175mm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 나오는 주인공과 그 친구들은 끊임없이 ‘주제별 노래 베스트’를 선정합니다. 그리고 이 ‘베스트 선정’에 익숙해져서인지, 주인공은 여자친구에게 차이자 심지어 ‘자신을 찬 여자 베스트 5’를 선정하고 그들을 만나기까지 합니다. 음악 베스트에서 과거의 여자친구 베스트로 넘어가는 순간은 의미심장합니다. 그가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떤날 1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떤날 2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용필 1집

흔히 영화 마니아나 음악 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즐기는(혹은 즐겼던) 놀이 중에 하나가 자신 만의 베스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자신의 좋아하는 작품에 순위를 매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순위에는 자신이 그 음악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가 들어 있습니다. 즉 ‘어떤날’의 앨범 중에 『1960.1965』(1집)을 더 높게 평가하는지 아니면 『어떤날II』(2집)를 더 높게 평가하는지, 혹은 1980년대를 ‘동아기획’의 시대로 기억하는지 조용필의 시대로 기억하는지에는, 단순히 음악적 완성도나 영향력의 순위를 매기는 것만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음악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와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역시 단순히 저자들이 생각하는 명반을 뽑아서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저자들은 서두부터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가 1980년대가 아니라 1990년대였다고 선언함으로써 기존의 논의들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일반적으로 음악 평론계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로 꼽는 시기는 1980년대인데요.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지만, 그 이유는 대략 그때가 다양한 장르와 씬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서의 앨범이 쏟아져 나왔던 시기인 동시에, 일정한 음반 판매량을 통해 그 뮤지션들이 생계유지가 가능했던 시기이기도 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한국 팝의 고고학 1960ㆍ1970』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기념비적 결과물을 발표하기도 한 신현준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를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로 봅니다. 그 이유는 음악이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파급력 면에서 중요한 움직임들이 있었던 시기였다는 거죠. 반면 이 책의 저자들은 “음악성 있는 음악인들이 광범위한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대중음악계의 주류를 점령했던 거의 유일한 시기”1)가 1990년대였기에 그 시기가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156123.html 참고

이 역시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사회적 상황 안에서 음악을 바라보느냐, ‘작가’를 중심에 놓고 음악을 논하느냐, 아니면 음악 산업 안에서의 대중성과 완성도의 공존을 중요시하느냐가 논의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은 세 번째 시선을 통해서 대중음악 씬을 바라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건모 2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이즈 2집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박진영 - 썸머 징글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관우 - Memory

그렇기에 선정된 앨범은 일반적인 작가주의 평론과 거리가 있습니다. 이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건 아무래도 선정된 앨범의 목록일 겁니다. 예를 들면 김건모 『2집』이나 ‘노이즈’ 『2집』, 조관우의 『Memory』, 박진영의 『썸머 징글벨』 같은 대중음악 평론에서 언급조차 잘 되지 않는 앨범들이 포함되어 있다든지, ‘웰메이드’로 평가받기는 하지만 작가적 진정성이라는 부분에 있어선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승환, 신해철/‘N.EX.T’, ‘015B’, 윤종신 등등의 작업들을 높게 평가한다든지 하는 부분이 이를 드러냅니다. 또한 혹자의 말처럼 ‘토이’의 앨범 중 『내 마음 속에』(1집)가 아닌 『A Night in Seoul』(4집)을 명반에 포함시킨 것도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요.2) 그리고 이런 앨범들의 공통점은 상업 시스템 안에서 전문가적 완성도를 추구했고, 어느 정도 이를 이루었던 작품들로 볼 수 있을 겁니다.
2) http://cafe.naver.com/music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45 참고(카페 회원 가입 후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전에 평론계에 많지 않던 하나의 시선을 명료하게 드러낸 데 이 책의 1차적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 책을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 이유는 단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시선에 대해 ‘긍정’은 하지만 ‘공감’은 하지 못하거든요. 책의 추천사를 써준 박준흠과 마찬가지로 저도 이 선정에 “50%만 동의”합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박준흠이 평론과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나 『대한 인디 만세』 같은 책을 통해 진행해왔던 작가 위주의 평론에 가깝습니다(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주의적 평론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평론을 통해 인정받는 음악들이 제 취향에 맞습니다). 또한 대중음악사적 의미를 따지자면 앞에서 언급한 『한국 팝의 고고학 1960ㆍ1970』이 훨씬 중요한 작업이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한 인디 만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 팝의 고고학 1970』

하지만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에는 위의 두 작업들이 갖지 못한 감성이 존재합니다.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애착, 즉 음악에 대한 마니아적 감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박준흠이 마니아적 성향을 종종 드러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평론가적 마인드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진행하는 데 반해, 또 신현준이 점점 더 학술적인 작업에 열의를 올리고 있는 데 반해, 이들은 자신들의 마니아적 정서를 숨기지 못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1980년대를 대중음악의 전성기로 보는 시선에 대한 그들의 반발에는, 물론 논리적 이유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그 시절의 대중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바탕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PC통신망 나우누리의 ‘뮤즈’라는 음악 동호회에서 대중음악 비평을 시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1990년대 쏟아져 나왔던 음악평론가 내지는 문화평론가들이 대부분 386세대에 속한 운동권 출신이었고, 그렇기에 많은 경우 평론에서도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운동적 측면을 강조했던 데 반해, 그들의 작업에는 음악 자체에 열광했던, 세상을 향한 발언으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을 통해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반짝반짝 빛나던 어떤 시기, 어떤 음악들에 대한 흥분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니 워크맨(1979년)

사실 이제 이들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즉 음반을 사 모으고,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고, 자신이 아끼는 곡들을 선곡해서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음악은 이제 컴퓨터 파일의 형태로, 핸드폰에 딸린 액세서리의 형태로, 단지 삶의 혹은 광고의(혹은 광고-삶의?) BGM의 형태로 소비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져버린 어떤 시절에 대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아가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문화를 소비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삶을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삶이 더 옳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자본주의적인, 즉 소비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근본의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절이, 그런 삶이 존재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들의 시선에 동의하든지 말든지 간에요. 아니, 그런 의미조차 인정하지 않더라도,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TV스타들과는 조금 다른 ‘언니, 오빠들’의 음악에 열광하던 이에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할 거라 생각됩니다.

ps. 최근에도 꾸준히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꼽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순위 자체에 큰 의미는 없을지라도, 중요한 대중음악 작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 시킨다는 의미에서, 또 그것을 통해 하나의 대중음악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의 의미는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작업 중에 흥미로운 두 시도가 있는데요. 하나는 『90년대를 빛낸 명반』의 저자 중 한 사람인 김영대(투째지)가 참여하기도 한 음악취향Y의 ‘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이고, 다른 하나는 박준흠이 운영하는 웹진 가슴(http://www.gaseum.com/)과 경향신문이 함께 선정한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 그것입니다. 둘 사이의 미묘한(가끔은 현격한) 차이를 읽어가면서 보시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다음에 글을 써주실 분은 그린비 내에서 꼼꼼함의 대명사이자, 현존하는 한국의 아기 중에 귀엽기로 100위권 안에 들 수 있을 듯한 희재의 아버지 ‘주기자’님입니다(사실 ‘주기자’는 별명인데 본명을 밝히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신비주의?-_-;;). 그린비 내에서 유려한 글 솜씨로 소문난 분이기 때문에 저도 기대가 큽니다. 선배~ 좋은 서평 부탁해요~

- 편집부 홍원기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2007/09/28 13:37 2007/09/28 13:37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6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와니 2007/09/28 15:34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인디 관련, 가요관련 좋은 책이 좀 더 자주 나오면 좋을텐데 말이죠~

    • 그린비 2007/09/28 16:08

      저도 이 글을 보고 나서 갑자기 불타오르더군요. ㅎㅎㅎ
      근데 현재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상황을 봤을 때, 인디음악이나 가요를 다룬 책들이 자주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ㅡㅡ;;

  2. 에헤라 2007/09/28 15:45

    김건모 2집 완전인정

    • 그린비 2007/09/28 16:17

      ㅎㅎ 한때 김건모에 '환장'했었던 기억이 ;;;

  3. 지나가다 2007/09/28 18:14

    한국의 사이먼 프리스가 탄생하길 기원합니다 ^^

    • 그린비 2007/09/30 01:47

      네, 사이먼 프리스! (검색해보니 무지 유명한 사람이군요 +.+)

  4. 늘그리운 2007/09/28 21:22

    대중음악으로서의 전성기는 90년대라는 생각에는 나름 공감합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음악을 '찍어내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곡들의 수준도 나름 괜찮았었고.. 음악시장이 가장 활발했었던 시대라고나 할까요? 수요와 공급이 적절히 맞아떨어졌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현재의 열악한 대중음악 시장과는 다른 시절이었죠. 잼과 노이즈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국민(!)학생 시절이 생각나네요.. ^^

    • 그린비 2007/09/30 01:34

      저는 잼과 노이즈의 음악에 맞춰 춤 추는 걸... 구경하던 대학시절이 ;;;;

  5. 물망초5 2007/09/29 00:58

    님들의 블로그에 슬픈 댓글을 달고 다녀 죄송한마음입니다
    에미의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짐승의 손에 어여쁜딸을 잃은 에미입니다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의 직장내성희롱 살인사건을
    사건발생지도 아니고 피의자의 주소지도 아닌 원주경찰서에서
    사건발생지인 양평경찰서로 이첩시키지 않고 초동수사부터
    사건의진실을 왜곡하고 은폐조작한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아고라 네티즌청원에도 서명부탁드립니다

    제 블로그를
    구독리스트나 즐겨찾기에 등록해주시고
    관심갖어 주셨으면 합니다
    http://blog.daum.net/ymj5800/8046796?_top_blogtop=my_update

  6. 김대호 2007/09/29 03:42

    소니워크맨 사진 옆에 있는 단락에서부터 매우 강하게 공감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7/09/30 01:45

      지금이나 예전이나 대중음악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해도 뭔가 미묘한 차이들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도 변했고, 그만큼 기술도 변했으니까요. 그 변화의 폭이 너무 크기때문에 '어렸던 시절'이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저도 나이먹은 게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네요. ㅡㅡ;;;;;

  7. OpenID Logo 강이 2007/10/01 21:00

    음악취향Y의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덕분에 회사에 사표를 내고도 즐겁게 음악 들으며 지냈었죠.^ ^
    어찌나 좋던지... 전부 다 출력하기까지..
    생각 난 김에... 새로운 원고와 함께.. 또 한 번 골라들어야겠네요.

    • OpenID Logo 그린비 2007/10/02 09:29

      네, 화이팅입니다. ^^*

  8. 신승렬 2007/10/14 21:24

    과찬의 글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본 저희 책에 대한 글 중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신, 어쩌면 저희보다도 저희 책을 잘 설명해주신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신승렬 드림

    • 그린비 2007/10/15 09:56

      우와, 선생님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주시다니 영광입니다!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9. 김영대 2008/03/06 05:12

    좋은 말씀, 리뷰 감사합니다.
    제가 쓴 책이지만 새록새록 다시 와닿네요. 부끄럽기도 하지만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