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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책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편집자의 작업을 하나의 책을 편집하기 시작해서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으로 분절하기도 하지만, 책은 다른 책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즉 어떤 코너에 있는가, 옆에 있는 책들은 어떤 책인가에 따라 책의 위치가 자리매김됩니다. 저자의 사유물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책은 저자의 수많은 생각을 일정한 틀에 따라 재배치한 것이며, 사유의 흐름에서 한 곳을 막고 길어 낸 채취물입니다. 책에 쓰이지 않은 다른 수많은 생각이 없다면, 사유의 흐름이 막혀 지식이 모이지 않는다면, 책 또한 생산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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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진 作 <나의 풍경>
_ 저자의 사유물이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지듯, 책들이 관계를 맺으면서 사유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편집자는 이러한 책의 관계, 사유의 흐름에 주목합니다. 이번에 펴낸 『거울 속에 있는 듯』 또한 이에 따라 탄생한 것입니다. 지난 9월 이 책의 번역 원고가 저희에게 입수되었을 때, 저희는 한창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을 편집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문화대혁명에 관한 서사가 한 노동자의 체험에 의해 회고되고 있는 이 책은 단순히 역사서라고 말하면 부족해 보였습니다. ‘아이아(AIA) 총서’+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현대 중국의 역사적 맥락을 한 인물이 직접 밝힌 회고록의 성격이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 원고가 들어온 것이죠.
+ ‘아시아의 문제를 아시아의 눈으로 본다’는 컨셉으로 아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쟁점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다루는 담론의 장입니다. (아이아 총서 보러가기)

다이진화의 대담집인 이 책은 1990년대 중국의 영화·문학·대중문화 등을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있는 책입니다. 한 시대에 관한 역사적 맥락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한 인물의 생생한 증언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화대혁명~』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이 두 책 외에 저희에게는 (지금 현재 편집 작업 중인) 『80년대 중국과의 대화』(가제)라는 타이틀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문화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책 역시도 문화예술계 인사 12명을 인터뷰한 ‘증언의 기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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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목소리>
_ 1970, 80, 90년대 중국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
『80년대 중국과의 대화(八十年代 訪談録)』(가제, 출간예정), 『거울 속에 있는 듯』

이로써 1970, 80, 90년대 중국의 정황들과 해당 시대의 중국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을 들을 수 있는 ‘중국 서사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 개시와 이후의 조반 활동, 1976년 제1차 톈안먼 사건과 문화대혁명의 종식, 1978년 개혁개방으로의 노선 전환, 1979년 지주·부농에 대한 명예 회복, 1980년 경제특구 설치, 1984년 덩샤오핑의 일국양제(一國兩制) 발표, 1989년 제2차 톈안먼 사건, 1992년 덩샤오핑의 남방 시찰, 1993년 시장사회주의로의 전환, 1995년 세계여성대회 개최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가로지르며, 중국인이 말하는 그들의 문제와 해법, 회고와 성찰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저희가 붙인 제목이 ‘현대 중국의 목소리’입니다. ‘중국 문제’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를 내세우면서요.
 
『거울 속에 있는 듯』은 출판 과정에서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밖에도 더 많은, 무궁무진한 콘텐츠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제 옆구리 책장에는 편집 과정에서 참조한 관련 책들이 꽂혀 있는데, 이 책들만 봐도 한 책이 얼마나 많은 책들과 연관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다이진화의 문화연구적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관련 책들(『문화연구』,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탈식민주의 문화연구에 관한 책들(레이 초우의 『원시적 열정』,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중국 문학사와 영화사를 이해하기 위한 책(『중국당대문학사』, 『중국영화사』, 『영화로 읽는 중국』), 여성주의 관련 서적(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출구』, 『제2의 성』, 『자기만의 방』), 각종 문학 서적들(쑤퉁, 왕멍, 모옌, 비페이위, 주원, 싼마오, 다이허우잉, 린바이 등의 작품들). 그리고 편집하면서 참조하지는 않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꼭 보고 싶은 영화들(「햇빛 쏟아지는 날들」, 「붉은 수수밭」, 「장한가」, 「카이로의 붉은 장미」 등)이 생겼고, 아직 한국어판이 없는 보고 싶은 책들이 생겼습니다. 특히 『장한가』(영화의 원작이기도 한)를 쓴 왕안이(王安憶)의 책들을 꼭 읽어 보고 싶어요!(그녀의 작품 「구두수리공의 자랑」(驕傲的皮匠)은 작년 중국에서 중편소설 분야 가장 좋은 책으로 선정되었다네요.)
 
- 편집부 주승일

2009/05/07 11:14 2009/05/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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