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나의 첫사랑, 세상은 나의 연인!”
― 호모 노마드 싼마오가 전하는 ‘사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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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라는 중국 문학, 정확히는 작가 싼마오(三毛)의 신혼생활을 담은 산문집을 읽었다. 이 책은 비록 중국 문학에 속해 있지만, 작가가 대만에서 성장했으니 대만 문학일 수도 있고, 스페인 사람과 스페인 법에 의거해서 결혼했으니 스페인 문학일 수도 있으며, 글의 배경이 사하라 사막이니 그저 사하라 문학일 수도 있는, 그런 다국적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적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유목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에게 국가는 장애물일 뿐. 그 경계를 넘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어떤 삶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전에 이 책을 손에 넣게 된 사연을 잠깐 말하면, 그건 이 책이 문혁(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에서, 특히 학교에서 유행했다는 말을 듣고 맘이 동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꿈꾸기 힘든 개성적 표현과 개인의 가치를 전달하여 교사와 학부모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행했다는 것이다. 그건 이 책이 기존의 가치를 벗어나는 힘이 글 속에 내장되어 있음을, 잠재된 무의식을 충동질할 수 있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바, 다른 주목할 만한 중국 소설들과 함께 이 책을 골라 보게 되었다(유감스럽게도 다른 소설들은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읽게 된 이 책은 신혼일기라고 하기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담백하고 위트 있는 문체로 풀어내어 나로 하여금 유목적 삶의 태도를 상기시켜 주었다.

싼마오는 스물네 살부터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닌 유목민이다. 그녀 스스로 말하길, “나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늘 떠돌아다녔고, 내 마음 역시 내가 살던 도시에 남겨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의 문명사회를 경험하며 감동도 받고 생활양식의 변화도 겪었지만, 그 무의미함도 깨달았다는 것. 오히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하라 사막 기사를 보자 낯선 대지를 꿈꾸게 되었고, 스페인에 잠시 머물 때 결국에는 사하라(스페인령)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그때 그녀를 쫓아, 아니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지면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한 스페인 남자가 나섰으니, 그가 바로 싼마오와 결혼하는 호세다. 사막을 여행하느라 널 보기 힘들거야, 라고 말하는 싼마오에게 같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청혼을 선택하여 줄곧 그녀 곁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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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마오
_ 유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꿈을 찾아 열정적인 삶을 살다 간(1991년) 싼마오는 지금까지도 중국 독자들의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2007년 조사한 ‘현대 중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00인’에서 루쉰, 조설근 등에 이어 6위에 오를 정도.

모로코 서사하라의 ‘라윤’이라는 시의 변두리, 원주민 사하라위족들이 거주하고, 주변은 묘지와 모래벌판인, 시내의 외국인들이 극도로 꺼려하는 곳. 호세와 싼마오는 그곳에 보금자리를 튼다. 황폐하고 낙후되고 빈곤한 곳이지만, 그녀는 그곳에서도 생명이 움트고 사람 사는 활기가 있음을 느끼고, 생존을 위해 안간힘도 발버둥도 치지 않는 자연의 생로병사를 느낀다. 그녀의 관점에서는 “속박이 없는 자유로운 생활이 곧 빛나는 문명”이기 때문에 사막 가운데 서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물론 목가적인 환상은 척박한 현실 앞에서 좌절되기도 한다. 책도, 신문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이, 낮에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물을 긷거나 불을 붙이는 일상의 소소한 일을 힘겹게 해내야 하고, 밤에는 언제 더웠냐는 듯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모래바람마저 흐느끼듯 들려와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황량함과 외로움, 두려움이 엄습하는 사막은 이방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싼마오는 “나는 사막을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사막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 작은 좌절을 겪었을 뿐”이라며 이내 사막을 자신의 공간으로 바꿔 가기 시작한다. 집을 꾸미고, 사하라위족 사람들과 왕래하면서,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는 복잡다단한 생활을 시작한다. 호세의 회사 동료들을 초대해 맛난 중국 음식들로 정성껏 대접하기도 하고, 이웃 사하라위족의 결혼식에 함께하기도 하며, 친구가 된 사하라위족 청년의 편지를 대신 써주기도 한다. 하루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는 극심한 물 부족에(정부에서 공급되는 물은 식수로는 사용할 수 없고 그나마도 부족해 설거지나 빨래 중 하나의 일밖에 할 수 없다) 음식 재료도 풍부하지 않고 돈까지 궁한 상황에서도 이웃들과는 화목하게, 손님에게는 극진하게 대하고 때때로 사막 곳곳을 여행하는 일 또한 잊지 않는다.

싼마오가 이렇게 단시간에 사막을 품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새로운 환경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그 어렵다는 운전면허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시험장 맞은편엔 교도소가 있어 죄수들이 고함을 치며 여자들을 희롱한다. 그녀는 이에 아랑곳 않고, 아니 오히려 상황을 즐기듯 (시험 땐 문제가 안 보일 정도로 긴장해 놓고선) 필기에 합격하자 환호하는 그들을 향해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이고, 실기 땐 질주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를 응원해 준 그 관중들(죄수들)에게 잊지 않고 답례를 보낸다. 콜라 두 상자와 담배 두 보루로. 싼마오는 마치 이방인의 탈을 쓴 원주민처럼 사하라위족이든 스페인인이든 아무런 차별 없이 그들과 호흡하는 것이다.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드나드는 이웃에게 서양식의, 그들에게는 기이한 물건을 내주기도 하고(좀더 사실에 가깝게 말하면 거의 내것니것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을 모아 놓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없는 의술을 베풀기까지 한다. 메주콩을 갈아 종기에 발라 주어 낫게 하고, 썩은 이빨에 매니큐어를 발라 주는 일도 서슴지 않지만, 대부분은 약을 주는 일로 해결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그녀는 이방인이 으레 그렇듯 기존의 생활방식하에서 낯선 환경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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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作 <잠자는 집시>
_ 사막에서 잠든 집시 여인과 그녀 곁에 있는 야수는 마치 주인공 싼마오와 호세를 보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든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어디서든 변이할 수 있는 것이며,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를 위해 현재와 미래를 사로잡는 고착된 인연의 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 끈을 풀어서 새로운 삶의 자원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이진경, 『철학의 외부』 중에서)

철학자 이진경은 ‘유목’이라는 개념을 말하면서 그 핵심을 이렇게 말한다. ‘공간’에 사로잡히지 말 것을, 즉 한 곳에 머물고 있느냐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있느냐는 공간의 이동 유무로 판단하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기존의 가치와 고정된 질서의 틀을 깨고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유목을 독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싼마오의 사하라 사막 여행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유목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호모 노마드의 수식을 붙일 수 있다면 그건 그가 단순히 세계 각지를 떠돌았기 때문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사건을 일으키고 새로운 이웃들과 관계를 엮어 나가는 창조적 삶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녀는 머묾과 떠남에 매이지 않고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애초에 그녀는 인간이 ‘길 위의 존재’임을, 많은 부를 쌓아놓아 봤자 결국엔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인 것을 통절히 깨닫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한편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용감하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적의를 품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다가간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대하고 선물과 우정을 나누는 데 아낌이 없다. 용기, 진실, 우정이라는 덕목을 가지고 그녀는 지금 있는 그곳에서 게걸스럽게 세상을 탐닉하고, 삶과 열애하고 있다.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축적’하고 있는 무감각하고 패턴화된 나의 삶을 다시 보라고 그녀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다.

뱀다리.
제목으로 붙인 “삶은 나의 첫사랑, 세상은 나의 연인!”은 사실 이 책의 뒤표지 카피다. 싼마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이 책 자체에서도 감동을 받았는데, 그건 이런 카피 하나하나까지도 정성스럽게 마감질되어 있는 편집 때문이다. 옮긴이가 펴낸이(즉 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책을 만들고 있다 했으니 내 추측엔 그렇다)인 이 책은 표지에서는 앙리 루소의 그림이 어우러져 있고 문구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꿰어져 있을 뿐 아니라 각 페이지마다 정성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 녹아 있고 본문은 가독성과 정보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편집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다른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 편집부 주승일
알라딘 링크
2009/06/10 10:45 2009/06/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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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떠돌이 2009/06/11 17:30

    앗 이런 멋진 서평을.. 감동 먹었어요..
    "삶은 나의 첫사랑! 세상은 나의 연인!" 역시 싼마오가 남긴 말이랍니다.

    서평 퍼가고 긁어가도 될까요? 저는 <사하라 이야기> 옮긴이/펴낸이/편집자입니다...

    • 그린비 2009/06/11 17:44

      앗..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글 긁어가시는 건, 오히려 제가 감사드릴 일이네요.
      <흐느끼는 낙타>도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싼마오의 다른 글들도 읽고 싶은데, 후속작을 기대해도 될까요?^^; ...어찌됐든 좋은 작품들 계속 부탁드릴게요~

  2. 떠돌이 2009/06/12 00:02

    저도 싼마오의 다른 글들을 읽고 싶고 내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어요..
    마침 오늘 삐뽀삐뽀119를 주문했는데 뜻밖에도 그린비 책이데요^^

    • 그린비 2009/06/15 09:21

      헙, 삐뽀삐뽀119 ^^;; 네.. 뜻밖에도 저희 책이죠 하하.
      싼마오의 다른 글들이 나오면 꼭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