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새로 시작되는 <인문학 해외 통신>은 해외에서 체류(활동) 중인 인문학자들이 세계 각지 인문학계의 새로운 흐름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코너입니다.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 사상

최진석 (연구공간 '수유+너머')

몇 해 전 구(舊)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잠시 체류하던 때의 일이다. 급하게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택시를 잡아탔는데, 여느 때의 버릇대로 실제 읽을 틈은 없어도 되는 대로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나온 참이었다. 대체로 수다스럽게 잡담을 즐기는 우즈벡인 택시기사에게 낯선 외국인이 뭔가 묵직한 책을 들고 나온 품새가 자못 흥미로웠는지 이것저것 물어대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도 늦었고 이미 우즈벡식 잡담에 어느 정도 익숙하던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어학 실력이 받쳐주는 대로 익숙한 질문과 대답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갑자기 대뜸 그가 내게 여기서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전공이 어느 분야냐고 상당히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나 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문학, 문화연구, 어느 것을 선택해도 귀찮은 부연 설명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철학이나 좀 공부해 보려 한다”라고 지극히 평범한 대답을 내놓고 말았다. 그런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내뱉은 한마디가 정말 명언이었다. “오, 마르크스-레닌주의! 나도 학교 다닐 때 철학 공부 좀 했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러시아, 그리고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소비에트 철학의 공식 지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그것은 사상의 다양한 흐름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하게 ‘옳은’ 사상이며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 사상이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철학 자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근대 아카데미즘의 산물인 분과 과학으로서 철학이 아니라 정치학·사회학·경제학·심리학·법학·문학 등 (심지어 전투기 산업조차도!) 제반 학과들을 통합하고 아우르는 일종의 '메타과학'으로서 군림했다. 인식과 경험의 모든 분과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했으며, 이 검증대를 무사히 통과하지 못한 사상은 그 무엇이라도 배척되고 제외됐다. 무소불위의 권능이자 권력의 실천적 매뉴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소비에트 제국 변경의 택시기사의 생활 감각 속에 그렇게 살아남아 있던 것이다.

하지만 소비에트 시대의 지적 생활 전체가 체제의 공식적 이념에 온전히 잠식되어 천편일률적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공산당 일당독재하에 획일화된 지식의 구조라는 서방의 ‘악질적인’ 비방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지식인들은 체제 너머를 향하는 다양한 사유의 흐름들을 조성했다. 사실 러시아는 제정 시대부터 체제의 감시망을 빠져나가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안했던 ‘유구한 탈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가 아니던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의도된?) 지루한 번역이 검열관을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만듦으로써 선뜻 출판 허가를 내주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거니와, 19세기 초엽부터 발달한 근대 문학 비평은 사회사상인지 문학 평론인지 도대체 장르 불명의 글쓰기로 범벅이 됨으로써 검열 기구의 발톱을 요리조리 빠져나간 역사를 보여 준다. 다소 아이러니컬하지만,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으며 성립한 소비에트 시대에도 검열의 족쇄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지식인들은 체제의 강령과 지침을 ‘전통대로’ 벗어나 줌으로써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길을 열어 나갔다.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 사상을 언급하기 위해 소비에트의 사상을 살펴봐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1917년의 사회주의 혁명은 제정 말기까지 지속되던 러시아 전통 사상의 맥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여기서 ‘전통 사상’이라 함은, 러시아 정교에 기반을 둔 종교철학적 사유의 흐름을 말한다. 서기 988년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동방 정교를 받아들여 기독교 문화권에 편입되기 시작한 러시아에서 종교는 혁명 전 1,000여 년 동안 비할 데 없이 막강한 권위를 누려 왔다. 일찍부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던 서구 제국과는 달리 러시아 정교는 국가의 공식 종교로서 인민의 공식적·비공식적 생활 전반을 지배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러시아적 미의식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도 러시아 정교라는 특수한 종교적 마인드를 배제하고선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치」의 나스타샤 필리포브나(이자벨 아자니)
_ "굉장한 아름다움인걸! 이런 아름다움은 힘이야. 이런 아름다움이라면 세상을 바꾸겠어!"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백치』(1868)에서 선언된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테제에서 절정에 달하는 러시아적 심성, 소위 윤리와 미학의 결합은 러시아 종교철학의 독특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에 따르면 기독교적 구원의 역사는 곧 세계 구원의 역사이자 미(美)가 만천하에 널리 전개되는 역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도스토옙스키 개인에게 국한된 문학적 전망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19세기 러시아 철학의 거인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1853~1900)가 도스토옙스키의 창작 세계를 온전히 민족 종교적 계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이후 러시아 종교철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가령 파벨 플로렌스키(1882~1937)나 게오르기 플로로프스키(1893~1979) 등의 정교회 신부들로부터 프랑스에 망명하여 명성을 얻은 니콜라이 베르댜예프(1874~1948)와 레프 셰스토프(1866~1938) 등은 모두 자신들이 러시아 종교철학의 자장에 속해 있음을 자인하곤 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던 볼셰비키가 집권하며 정교를 구체제의 악습으로 지목하고 파괴 운동을 벌여 나가자, 이들은 사상적 전향을 단행하든지 혹은 망명길에 오르든지, 어느 쪽이든 생존을 위한 선택을 해야만 했고(제3의 선택 아닌 선택은 수용소 생활과 총살형이었다), 그로써 소비에트 체제에서 ‘전통 사상’의 흐름은 70여 년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무튼 체제의 ‘공식’ 철학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동안, 전통 사상과는 거리를 두면서 어떻게든 새로운 사유의 흐름을 구축해야 했던 소비에트 지성인들은 다시 몇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우선 그 큰 흐름을 대별해 본다면, 첫째는 체제의 이데올로기와 직·간접적으로 타협하는, ‘내적 망명’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보다는 인식의 방법론적 토대를 연구했던 게오르기 셰드로비츠키(1929~1994), 고전 문헌학과 미학 연구의 태두로 추앙받은 알렉세이 로세프(1893~1988), 러시아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의 길을 연 에발드 일렌코프(1924~1979), 마르크스로의 귀환을 모토로 문화 간 대화를 주창하던 블라디미르 비블레르(1918~2000), 소비에트가 낳은 최대의 철학자로 지금까지도 존경받고 있는 보편 계몽주의 사상가 메랍 마마르다슈빌리(1930~1990),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인 미하일 바흐친(1895~1975) 등이 이 계열에 속한다. 다른 한편, 혁명 직후부터 소비에트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적 망명’의 길을 나선 러시아인들로는 베르댜예프와 셰스토프를 비롯해 ‘호모 소비에티쿠스’라는 신조어를 창안했던 왕년의 공산당원 알렉산드르 지노비예프(1922~2006), 전위예술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보리스 그로이스(1947~현재), 엄격한 반공주의자이자 열렬한 민족주의자의 양면을 보여 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 등을 주로 거론할 수 있겠다. 물론 후자의 계보에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 노벨상 수상 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1940~1996)의 예에서 보듯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인들이 있다(이들은 '소비에트 문화'와 대별되는 '망명 러시아 문화'의 주된 설립자들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하일 바흐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왼쪽부터)

재미있는 사실은, 근대 이후 '망명'이라는 테마가 러시아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는 주된 열쇠어로 나타났다는 점이며, 이는 소비에트 시대와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도 여전히 러시아를 이해하는 불가결한 요소로 지목된다는 점이다. 제정 시대에는 차르의 압박을 피해 해외로 떠나거나 문학 비평이라는 엄폐물을 통해 '자유로운' 사유의 길을 찾았다면, 소비에트 시대에는 공식적 전범으로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슬쩍 우회하면서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말로 '내재하는 외부' 또는 '클리나멘'이라고도 부를 법한 러시아의 망명 전통은 고정된 이데올로기의 격자 속에 갇히지 않고 언제나 탈주의 선을 그을 수 있는 사유의 본래적 힘 자체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럼 다음부터 이 망명적 사유의 면면을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자.

 
2009/06/12 10:37 2009/06/12 10:37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63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