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활동가의 고민
― 『GO』의 스기하라와 『완득이』의 완득이에게 묻다



며칠 전부터 고민이 두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뒷골 전체를 짓누르는 것이 자꾸만 등을 기대게 만든다. 4년 8개월 동안 둥지를 틀었던 지금의 활동 공간을 비워줘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받고부터 시작된 고민이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허약한 곳을 비집고 나온 것이다. 스스로 해석하기는 혼자서 머리 싸맨다고 해결될 것 없으니 그 시간에 등을 기대어 잠을 자거나 수다를 떠는 게 낫다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당연한 말. 그 당연한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는 늘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든, 인권이든, 민주주의건, 역사건 간에 할 것 없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전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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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료展
_ "이주, 다른 세상을 꿈꾸다"

고민은 크게 세 가지다. 이전 공간 마련을 위한 현실적인 재정 문제가 가장 당면한 문제고, 그 고민은 함께 하는 모두가, 그리고 우리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이들이 거들어줘 그런대로 해결되어가고 있다. 다음은 단체 활동에 대한 비전과 사명이다. 사실 이 비전과 사명이라는 단어 안에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는 개인의 미래다. 새로 옮긴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현안을 해결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불쑥 찾아오는 ‘그러면 나는?’이라는 화두는 온몸에 힘이 빠지게 한다. 불안정한 이주의 삶이 나에게도 투영된 것 같다.

이 세 가지 고민은 한데 엉켜있다. 어느 한 가지가 꼬리를 물고 풀려 나와 온갖 상상을 하다가 다시 그 타래 속으로 숨어들기를 반복하며 어느 순간 확 풀릴 것 같다. 그러다 또 엉켜서 꼬인 타래가 될 것이고. 시간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안다. 하지만 그 절대적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우리는 안달한다. 왜? 나에게 그것은 당사자성의 문제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 활동가. 당사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당사자 단체가 아니라는 한계를 대변한다. 당장에는 그런 대변하거나 지원하는 단체가 필요하겠지만, 어느 순간 확 풀리는 타래처럼 존재 자체가 발전의 방해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언제까지가 언제인가?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체질을 바꿔내야 하는가? 다시 또 머리가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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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예제도

현장에서 부닥치는 당사자성은 훨씬 더 민감하다. 특히 외국인력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가 만들어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한국사람들) ― 미등록이주노동자문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 이제는 보편적인 인권이 어느 정도 이주노동자들도 보장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을 한다. 우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권이 짓밟힌 ‘자의적인 사업장 이동의 금지’가 있는, 그래서 현대판 노예제라 불러야 한다며 부당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 메아리는 작다. 우리의 절실함이 작아서다. 한국에서 이주민이라는 특수성이, 그 예외성을, 내국인 일자리와 국내경제 우선이라는 전제를 우리도 모르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기검열로 인해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부터 작아진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후퇴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위축되어 진다.

부연설명이 길었다. 당사자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좀 길지만 아래 옮겼다. 재일 한국인 3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 『GO』와 김려령의 『완득이』 중에서 발췌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태도에서 한국사회에서 당사자성은 어떤 것인가 조금은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스기하라의 말에서는 통쾌함을(한민족이라는 의식을 배제하고서) 느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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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중에서 스기하라의 말


난 가끔 너희들, 일본 사람을,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 때려죽이고 싶어져. 너희들, 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나를 재일이라고 해대는 거지? 난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구. 재일 미국인이니 재일 이란인처럼, 밖에서 온 사람들하고 똑같이 부르지 말란 말이야. 재일이라니, 우리들이 언젠가는 이 나라를 떠날 외부인으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말이잖아. 알기나 해. 그런 거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냐구?

상관없어. 너희들이 나를 재일이라고 부르는 말든,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불러. 너희들, 내가 무섭지? 어떻게든 분류를 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지? 하지만 나는 인정 못해. 나는 말이지. 사자하고 비슷해. 사자는 자기를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너희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 사자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야.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너희들은 국가니 토지니 직함이니 인습이니 전통이니 문화니. 그런 것들에 평생을 얽매여 살다가 죽는 거야. 제길.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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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중에서 도완득의 말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좋다. 숨었다 걸렸으니 이제는 내가 술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찾을 생각은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다 힘들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 쉬엄쉬엄 찾고 싶다. 흘려보낸 내 하루들, 대단한 거 하는 없는 내 인생, 그렇게 대충 살면서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작은 하루가 모여 큰 하루가 된다.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다.

김려령의 『완득이』 는 소설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다. 결말 부분에서 『GO』의 스기하라와 비교하면 더욱더, 한국사회에 바치는 전향서처럼 보인다. 이제 하루하루 헛되게 보내지 않고 잘 살겠습니다. 오버하자면 민망하기까지 한다. 현장활동가의 시선이니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시라. 그렇다면 왜? 나에게 그것은 당사자성의 문제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에서 일하는 한국인 활동가. 당사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당사자 단체가 아니라는 한계를 대변한다. 당장에는 그런 대변하거나 지원하는 단체가 필요하겠지만, 어느 순간 확 풀리는 타래처럼 존재 자체가 발전의 방해물로 작용할 것이다. 그 언제까지가 언제인가? 어쩌면 지금 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체질을 바꿔내야 하는가? 다시 또 머리가 아파진다는 앞선 고민의 연장선이다. 당사자가 쓴 소설과 한국인의 시선이 작용된 작품의 차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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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현장활동가(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_ 이주노동자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활동을 위해 나는,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문제다. 단단히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들과 언제든 떠밀려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과 행동과 그 사회에 대한 태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센터 이전 기금을 마련하고 비전과 사명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바람과 현실의 차이를 체감해야 했다. (다만 여기서는 그 동안의 단체 활동에 대한 평가를 가능하면 배제하고 말하고 있으니 당신들이 잘 했으면 달라졌겠지 라는 식으로 해석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그 동안 센터와 함께 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을 위한, 당신들의 공간이니 당신들도 돈을 내시라’는 말에 대부분 주저하고 갸웃거린다. 우리 활동이 당사자성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가 우선이겠지만, 한국사회의 짧은 이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한국사회의 시선으로 차별과 배제를 이야기하며 동정하고, 한국사회의 수준으로 차별과 인권의 감수성에 대한 저항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그것을 넘어서는 활동.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한국인의 혹은 한국사회의 수준에서 검열되어 전달되지 않고, 날것 그대로 확산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 활동을 위해 우리는 나는 어떻게 체질을 바꿔 내야 하는가? 이 상황에서 완득이는, 스기하라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 오는 21일, 센터 이전 비용 마련을 위한 후원콘서트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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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0:56 2009/06/1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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