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통한 출판사의 브랜드 전략

책이 가지는 브랜드 가치는 강력하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베스트셀러나 학문적 성취가 두드러지는 책의 후속작들은 대개 전작에 못지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또 많은 이들이 자기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음을 고백하곤 한다. 이런 현상들은, 물론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다른 요소들이 작동하겠지만, 책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는 책에 견주어 어느 정도일까?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출판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책은 저자의 창작물이다. 저자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지식과 열정과 시간과 노동력 모두를 쏟아붓는다. 그 과정을 통해, 수많은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특이성을 가진 책을 쓰기 위해, 즉 한 권의 책이 가지는 브랜드 가치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출판사는 ‘한 권’의 어떤 책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진 않는다. 오히려 ‘책들’이 가지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어떤 책들이 함께 읽히면 좋은지, 특정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책들과 순차적으로 접속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한다. 저자가 ‘한 권’의 책을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출판사는 ‘책들’의 관계를 창작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출판사는 저자를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이미 자신만의 독특한 활동을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인 브랜드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황용진 作 <나의 풍경>
_ '책들의 관계맺음'을 통한 출판사의 브랜드 전략

그러나 출판사의 이런 브랜드 전략은 많은 경우 책의 브랜드 파워에 밀려 묻혀버리곤 한다. 아무리 열성적인 독자라고 하더라도 한 출판사의 모든 책을 읽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나의 총서(시리즈)를 다 읽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부분의 독자들은 인상 깊게 읽었던 몇 권의 책만 인지할 뿐이고, 출판사의 활동보다는 자신에게 전달된 충격의 정도에 따라 몇몇 책의 브랜드 가치만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린비가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것은 이런 맥락들 속에서이다. 처음부터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웹의 활동이란 것이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를 키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독자들을 만날 경우 완결된 이야기를 가지고 책이 되었을 경우에만 말해질 기회를 얻게 된다. 아이디어 수준의 생각이나 조각 이야기들은 아예 말해질 기회마저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의 브랜드 가치가 아니라 출판사의 고민과 활동을 독자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웹이란 공간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말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직접 소통하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린비가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 또하나의 계기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지금까지 책은, 적어도 출판사라는 생산자가 만드는 모든 콘텐츠의 유통을 독점하고 있던 미디어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미디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책도 이 변화된 환경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전통적으로 책이 독점하고 있던 콘텐츠와 유사한, 때로는 거의 동일한 콘텐츠가 웹을 통해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책이 아닌 다른 미디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신문, 잡지에서부터 TV, 영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역에서 웹이 기존 미디어의 역할을 흡수하거나 때론 대체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의 변화를 통해서, 웹은 가장 대중적인 (어쩌면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가 되었다. 보통은 이 상황을 위기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웹이 PC라는 장치의 제약을 벗어나 모바일 기기와 완전히 결합하는 순간의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웹 미디어
_ 책들의 관계맺음을 통한 출판사 브랜드 전략을 넘어, 웹을 통한 콘텐츠의 표현과 독자·저자·출판사의 소통으로 그린비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린비는 지금의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 생각한다. 늘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가공하는 일을 하는 입장에서 콘텐츠를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게다가 이 새로운 미디어는 시·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을 뿐더러 생산자와 수용자가 직접 소통하며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책의 시장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어떻게 출판사의 능력을 키우고 활동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웹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린비의 블로그는 인문학 콘텐츠들로 가득하지만,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인문에 관심이 깊은 것은 아니다. 인문 콘텐츠를 좇아서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연한 기회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간혹 댓글이나 방명록을 통해서 흔적을 남겨 주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면 인문이라는 키워드와는 전혀 무관한, 심지어 어렵다고 꺼리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그린비의 블로그는 방문자가 많은 편이다. 파워 블로거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블로그에 견주어 봐도 크게 뒤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 그린비가 인문 콘텐츠를 풀어내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린비 블로그에서는 인문학이 어렵다는, 이해하기도 힘든 단어들만 난무한다는 고정관념이 통하질 않는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인문의 시각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학술 용어를 써 가며 애써 폼을 잡거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말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인터넷 신조어와 통신체까지 써가며 일상의 언어들을 이용해서 인문을 표현하고 있다. 내 삶과 주변을 사유하고 성찰하려는 그 자세가 바로 인문의 기본이라는 것을 충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린비 블로그와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거나 인문학을 공부해 봐야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런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린비 블로그는 크게 여섯 개의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다.
1. 그린비 직원들이 매주 돌아가며 자신이 읽은 책이나 본 영화를 가지고 글을 쓰는 ‘이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코너 : 소재나 주제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자유롭게 정한다. 사회적 이슈를 말할 때도 있고 유쾌한 코믹스 만화를 소개할 때도 있고, 영화나 음반에 대한 감상을 말할 때도 있다. 그래도 책에 대한 서평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긴 하다. 주 1회 연재되고 있다.

2. 시사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책으로 세상읽기’ 코너 : 처음에는 그린비의 직원들이 시사 문제와 책을 연결시켜 글을 쓰다가 지금은 외부 필자들이 원고를 기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6개월 동안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젊은 연구원들이 글을 썼고, 지금은 새롭게 짜여진 2기 필진들이 글을 쓰고 있다. 역시 주 1회 연재되고 있다.

3. 때론 사장님까지 직접 나서서 출판계 전반의 이야기를 하는 ‘출판·편집 이야기’ 코너 :  출판편집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쉽게 풀어 소개한다는 것이 이 코너의 기획 의도였다. 원고검토는 어떻게 하는지? 교정/교열이란 어떤 일인지? 사전을 잘 활용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책의 제목은 어떻게 정하는지? 인쇄/제작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등등. 그러다가 그린비의 사장님이 출판업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쓰시기 시작하면서 내용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출판 마케팅이나 북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들도 연재함으로써 출판 현장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코너로 만들 생각이다. 비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다.

4. 글재주 있는 그린비 직원들의 공식 활동 무대, ‘니 꼬리를 물어주마’ 와 ‘이 언니를 만나다’ 코너 : 그린비는 무려 두 명의 직원이 자신의 연재 코너를 가지고 있다. ‘니 꼬리를 물어주마’의 임유진(편집부), ‘이 언니를 만나다’의 강혜진(편집부) 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니 꼬리를 물어주마’는 자기 삶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이야기들을, 책을 소재로 때론 즐겁게 때론 진지하게 풀어내는 ‘생활’ 칼럼이다. ‘이 언니를 만나다’는 주로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소개하면서 그와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코너인데, 지금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연재가 잠시 중단된 상황이다. 각각 주 1회씩 연재되고 있다.

5. 그린비가 말하는 ‘그린비 이야기’와 각종 ‘이벤트 안내’ 코너 : 그린비의 사무실 소개, 직원 소개, 블로그 운영에 대한 이야기 따위를 연재하는 ‘그린비 이야기’와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이벤트들을 소개하는 ‘이벤트 안내’ 코너가 비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6. 책과 관련된 무수한 이야기들 : 이외에 책의 시리즈 분류에 따른 많은 카테고리들이 있다. 책 소개에서부터 편집자의 편집 후기, 저자의 인터뷰, 동영상으로 제작된 책 미리보기와 같이 책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책이 출간될 때 연재가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개인 연재 코너들이다. ‘니 꼬리를 물어주마’와 ‘이 언니를 만나다’는 고정 팬들이 많고 댓글로 드러나는 방문자들의 호응도 가장 좋은 편이다. 하지만 방문자 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상위에 있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책으로 세상읽기’ 코너의 글들이다. 아무래도 시사적인 문제를 다루다 보니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출판·편집 이야기’는 출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코너이다. 그린비 블로그는 2007년 8월부터 22개월 남짓 운영하면서 400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1,500명 정도의 방문자가 다녀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린비 블로그무적의 인문 스트리트 잡지 <gBlog>

이제는 그린비 블로그를 말하면서 <gBlog>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gBlog>는 그린비 블로그에 소개된 콘텐츠를 모아서 만든 무가지 잡지이다. 웹진이 아니라 종이에 인쇄된 실물 잡지이다. ‘무적의 인문 스트리트 잡지’를 표방하고 있으며 광고는 전혀 싣지 않는다. 2009년 3월에 창간호를 내면서 블로그에 댓글로 주소를 남기면 무료로 발송해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불과 2주 만에 댓글이 800여 개나 달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지금은 17군데의 오프라인 공식 배포처를 통해서도 배포되고 있다. 이 지면을 통해서 <gBlog>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듯하니 그린비 블로그에서 <gBlog>에 대한 글(gBlog 1호 소개 및 신청(마감), 블로그 수익모델 vs 놀이모델)을 참고하기 바란다. <gBlog>는 6개월에 한 번씩 계속 발행될 예정이므로 오는 9월에 2호를 만날 수 있다.

블로그는 다양한 콘텐츠를 빠르게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의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해 준다. 또 블로그 운영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더 중요하게는 출판이 책이라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콘텐츠를 다루는 일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게 해 준다. 그런 점에서 그린비에게 블로그란 매력적인 출판 도구이다. 책 만드는 기쁨 못지않게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위 공간이다. 그린비는 이 새로운 출판 행위에 자랑스러움마저 느낀다. 앞으로도 새로운 실험과 고민을 계속 하며 블로그를 운영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젠가는 그린비 블로그가 웹에서 인문학 콘텐츠를 대표하는 곳이 되리라 믿고 있다.

- 마케팅부장 이경훈

이 글은 (자타공인) 그린비 브레인이신 이경훈 마케팅부장님이 쓰신 글로 『기획회의』 250호 특집 '블로그의 진화'에 게재되었습니다. (관련글 보기)

2009/07/02 17:02 2009/07/02 17:02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656

  1. Subject: 한국 블로그 문화의 현주소 [특집/기획회의 250호]

    Tracked from capcold님의 블로그님 2009/07/04 15:07  삭제

    !@#… 기획회의 250호 커버스토리로 ‘블로그의 진화’라는 좀 짱인 특집을 했는데, 총론과 각계에서 활동하는 유명 블로거들 – 고재열, 김홍기, 조안나, 구본준, 이경훈 – 의 진단글으로 구성. 이것은 그 중 capcold가 기여한 총론 원고인데, 보통 그렇듯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 받았으나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참고 눌러 담은 글… 역시 연재칼럼이나 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레몬에이드 2009/07/02 19:19

    오랫만에 왔습니다 ^^
    급한일도 어느정도 불도 껐고
    책 블로그는 현재까지 휴업중이지만
    테크 블로그에서 간간히 흔적을 남기고 있었어요 ㅎ

    제가 그린비 블로그를 좋은 이유는
    소통하기 너무 쉬운 곳이기 때문이죠
    출판사들은 책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곳이라서 그런지
    홈페이지도 활용도가 낮고
    그나마 홈페이지도 없는 곳도 많더군요

    출판사 블로그를 몇군데 알고 있지만
    자사 도서를 제외하고 이렇게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곳은
    많지가 않죠 ^^

    그래서 꼭 돌아오고 싶었다니깐요~

    • 그린비 2009/07/02 19:31

      레몬에이드님~ㅠㅠ
      너무 오래 안 보이셨던 것이지요..발길 끊으신 줄 알았습니다 흑.
      어쨌든, 다시 돌아오셔서 반갑습니다.^ㅡ^*

      출판사는 책을 다루기에 더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하고 활용할 수 있음에도 여러모로 부족한 점들이 많지요. 하지만 생산하고 활용해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결론은, 자주 와 주세요. 후후.

  2. 띠보 2009/07/03 14:10

    저도 기획회의에서 이 글 새겨가며 읽었어용

    • 그린비 2009/07/03 14:32

      감사합니다. 함께 가는 길이 든든하네요 :)

write a comment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