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左翼), 잊혀지도록 강요당한 과거

김해규(한광중학교 교사, 평택지역 향토사연구가)


필자는 지난 십 몇 년 동안 평택지역 자연마을(지역사 연구에 사용되는 ‘리’ 이하의 마을을 지칭하는 용어)을 답사하며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대상자는 80세가 넘는 시골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과 해방 전후의 지주-소작관계, 일제 말 전시체제기의 삶, 해방정국의 삶, 한국전쟁의 경험, 마을과 가문의 내력, 보릿고개 경험 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들이 넓으면서도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던 평택지역은 해방 전후만 해도 소작농이 전체 농업인구의 90%가 넘었다. 지주와 마름의 수탈은 얼마나 심했던지 하루하루의 삶이 외줄 타는 광대와도 같았다.

해방 뒤 농지개혁과 적산농지 불하를 받으면서 생활조건은 나아졌지만 지독한 가난과 수탈의 경험은 해방정국에서 좌익세력을 키우는 배경이 되었다. 해방정국을 거쳐 한국전쟁까지 평택지역의 좌익 경험자는 대략 당시 평택군 전체 인구의 70%쯤으로 추정된다. 가혹한 수탈과 절대빈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는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엘도라도였다. 한 번은 해방 정국에서 좌익활동을 하였다는 분에게 가담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그분은 필자의 질문에 ‘일정 때 친일했던 놈들, 자신들을 수탈했던 지주나 마름들이 우익이 되어 활개 치는 마당에 없는 놈들 도와주겠다는 좌익을 안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남로당과 전농(전국농민조합총동맹),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지도를 받아 곳곳에서는 좌익폭동도 발생하였다. 우익마을과 좌익마을의 극한 대립도 빈번하였다. 진위면 무봉산폭동과 팽성읍의 봉우재폭동은 우익과 경찰의 습격에 마땅히 피할 곳이 없던 좌익농민들이 산 위에 올라가 농성을 하였던 사건이었다. 좌익세력의 활동은 정부가 수립되고 지도부들이 월북하면서 잦아들었다. 남아 있던 좌익 경험자들은 정부의 강요에 의해 ‘보도연맹’에 가입하였다. 고덕면의 김씨처럼 가입하면 이전의 좌익활동을 면죄 받지만 때를 놓치면 공산당으로 몰려 경을 칠거라는 소문에 서둘러 막차를 탄 사람도 많았다. 포승읍의 이씨는 평소 사이가 나빴던 동네 사람이 형님을 좌익으로 몰아붙이자 대신 가입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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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이미지출처 : 미국국립문서관)
_ 1949년 6월 5일에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은 좌익단체에 관계했던 사람들을 가입시키고 그 외 강제적으로 가입된 민간인까지 약 3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관변단체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들은 인민군에 협력할지 모른다며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약 25~30만명이 군·경·우익청년단체 등에 의해 학살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한청년단이나 경찰에게 끌려가 K-6미군기지 비행장터(일제강점기 일본해군시설대 비행장)를 비롯한 평택지역 곳곳에서 학살을 당하였다. 인민군이 내려오자 학살당한 사람들의 가족과 좌익계 활동가들, 수탈의 최하층이었던 빈농들과 고공들은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하며 경찰, 군인, 우익단체, 지주, 친일인사들에게 보복하였다. 일명 지방빨갱이가 그들이다. 사상과 이념의 훈련이 부족했던 지방빨갱이들의 보복은 객관적 기준이 모호하였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교육수준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후폭풍이 거셌다. 보복당한 우익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밀고 올라오자 좌익들보다 훨씬 가혹하게 재 보복을 하였다. 평소 조금만 개인적 원한이 있어도 좌익으로 몰아 죽이기도 하였다. 평택지역 곳곳의 대형 창고와 고갯마루, 계곡에는 좌익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마을 골목골목에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일명 ‘모스크바’라고 불렀던 몇몇 마을은 빨갱이 마을로 낙인찍혀 1970년대까지도 감시와 차별을 받았다. 심지어 강제 부역자들조차 호적에 빨간줄이 올라가서 연좌제의 고통을 당하였다. 보도연맹 관련자, 좌익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당한 사람의 가족들도 빨갱이로 몰릴까봐, 또는 연좌제로 친족과 자녀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억울하다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공무원을 지낸 모씨는 가족들의 과거를 덮기 위해 열렬한 반공투사로 활동하였다. 혹여 ‘빨갱이’, ‘좌익’ 같은 단어만 나오면 남보다 소리 높여 비판하였다. 보도연맹으로 죽임을 당한 김 모씨의 아들도 진상규명 요구는 물론, 서울의 양정고보에 유학했던 학력과 넉넉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연좌제에 몰려 지방 면서기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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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콤플렉스(이미지출처 : 경기일보, 김호영 화백)

이 같은 레드 콤플렉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마을에 들어가서 좌익문제를 꺼내면 노인들의 표정은 금세 굳어지고 만다. 어떤 노인은 필자의 설득에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다른 노인이 들어오자 황급히 입을 닫았다. 그 노인은 다름 아닌 마을의 대표적인 우익이었기 때문이다. 안중읍의 어떤 마을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몇몇 집안과는 원수사이라며 아이들끼리 놀지도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굳게 닫힌 좌우익 경험자들의 입을 열기란 참으로 어렵다. 몇 번 만나고, 내 신분을 말해주고, 10년쯤 후에나 공개하겠다고 밝혀야만 겨우 몇 마디 말해줄 뿐이다. 필자는 좌익 경험자들의 입을 열기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우익 경험자들의 입을 통하여 유추하는 변칙적 방법까지 동원한 적도 있다.

힘들고 어려운 좌익계열 연구는 문헌으로만은 불가능하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얼개를 활자 몇 개로 풀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지역적 편차, 개인적 편차는 어찌 그리 심한지 현장 인터뷰 없이는 풀어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근래에 구술사에 의존하여 연구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도 좌익문제가 갖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출간된 인류학자 윤택림(영남대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연구교수)의 『인류학자의 과거여행-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역사비평사)는 주목할 만한 연구서다. 특히 이 책은 요즘 주목받는 구술사, 생애사 연구방법으로 서술하였다는 사실로도 눈길을 끌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한국전쟁 당시의 좌익문제를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더구나 연구자가 현지조사를 한 시점이 1989년과 1990년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독재의 그늘이 한 꺼풀 벗겨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레드 울렁증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에 좌익관련 마을조사를 한다는 것은 머리채를 쥐어뜯기고 뺨맞을 각오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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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쌍용자동차 총파업 "해고는 살인이다!"
_ 1950년, '빨갱이'라고 학살당한 수많은 농민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스런 역사는 2009년,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되풀이되고 있다.

요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안에서는 1,000여 명의 해고노동자들과 해고를 면한 노동자들이 공장건물 사이에서 대치하고 있다. 며칠 전 저녁에는 해고를 면한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강요와 살아야겠다는 본능에 못 이겨 공장 안으로 난입하면서 격렬한 싸움이 있었다. 그곳에는 회사에서 동원한 수 백 명 용역들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앰뷸런스 수 십 대가 오가고, 방송국 취재차량이 진을 치고, 고함 소리·확성기 소리가 난무하는 장면은 전쟁을 방불케 하였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떠넘기고, 노조가 제안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통합 일자리 나누기’조차도 거부당한 상태에서 노동자들이 살아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책임의 한 축인 정부마저 노동자들의 애끊는 호곡소리에 수수방관하고 있다. 보수적인 시민단체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공장을 정상가동하여 평택경제를 살리자고 압박하고 있다. 철저하게 약자로 몰리는 해고노동자 속에는 교사 초임 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도 있다. 학창시절 유난히 수줍음 많고 착해 빠졌던 그는 졸업 후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객관적 기준도 없이 정리해고를 당하였다. 정리해고는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사형선고와도 같다. 약자라는 이유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가족과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마저 박탈당한 그의 미래는 암울하고 불투명하다. 흡사 60여 년 전 다른 세상을 꿈꿨다는 이유로, 또는 그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오그라들었던 좌익들과 그들 가족들의 삶처럼.
2009/07/01 11:06 2009/07/0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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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갱이 척결 2009/08/17 16:32

    http://www.cyworld.com/bpskor/2747566 빨갱이가 우리사회에서 용인되었을때 일어날일입니다.

    • 포토프레임 2009/08/17 16:48

      님하 아무래도 님이 좀 척결되야 할 것 같아염.
      그리고 궁금한게 있는데염. '빨갱이'가 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