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맺은 인연 '서연'(書緣)


얼마 전, 독자 분께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보통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일한다고 하면 독자 분들보다는 서점 관계자 분들을 더 많이 만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전 특이하게도 서점 관계자 분들보다 독자 분들을 만날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그린비 블로그와 그린비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웹을 통해 만나는 블로그 독자 분들, 홈페이지 회원 분들, 그리고 각종 이벤트와 행사를 통해 직접 관계 맺는 분들까지요. ^^*

책 선물을 해 주신 독자 분도 그린비 홈페이지에서 진행했던 이벤트 행사를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린비 홈페이지 오픈 이벤트였던 <문·사·철 특강>의 역사 특강을 시작으로 그린비 월간 특강에 매달 참여해 주셔서 그린비 사무실에서 만나 뵙기도 하고, 홈페이지의 댓글 이벤트나 서평 이벤트 등에 참여해 주셔서 당첨 선물을 보내드리기도 했죠. 제가 책 선물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나를 바꾼 씨앗문장> 댓글 이벤트였습니다.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출간 기념 이벤트로 그린비 식구들의 씨앗문장을 소개하고, 댓글로 씨앗문장을 소개해 주신 홈페이지 회원 분들께 그린비 식구들의 씨앗문장이 담긴 씨앗도서를 증정해드리는 이벤트였죠. 그때 그분께 제 씨앗문장이 담긴 『페미니즘의 도전』을 선물로 드렸고, 그분은 책을 다 읽으신 후 메일로 감상과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역사 특강 두 번째 시간에 본인의 씨앗도서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선물해 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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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강연 행사(<예술, 삶을 만나다> 중에서) _ 바로 그 독자 분!

‘시민 불복종+’은 그린비에서도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으로 출간된 바 있습니다. ‘시민 불복종’ 원문과 함께 등장배경과 지은이에 대한 이야기와 당대에 미친 영향, ‘시민 불복종’의 유산, 여파, 그리고 홍세화 선생님의 ‘오늘날의 『시민 불복종』’이 실려 있습니다. 독자 분께서 선물해 주신 『시민의 불복종』은 ‘시민 불복종’을 비롯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여러 단편들이 함께 실려 있구요. (그분은 「시민 불복종」보다 「돼지 잡아들이기」를 더 좋아하신다고 밝혀 주셨어요. ^^ㅎ) 어쨌거나, 전 그분께 이 책을 선물받기 전에는 『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도 읽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살포시 밝힙니다. ‘시민 불복종’, 너무나 유명하기에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읽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그분께 이 공간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 ‘시민 불복종’은 1846년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해 오던 소로우가 감옥에 수감되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원 제목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1849년에 『미학』지를 통해 발표되었으나 소로우 사후 ‘시민 불복종’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849년에 쓰인 이 ‘시민 불복종’은 “시간이 흘러도 세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15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빛난다. 아니, 오늘날 더욱 빛난다. 시간과 함께 더욱 교활해진 것은 정부이고, 새로운 사회를 향한 긴장을 상실한 것은 시민들이다.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성난 얼굴로 되돌아와 우리의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는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래는 ‘시민 불복종’에서 얻은 저의 씨앗문장들입니다. 조금 길지만 이 문장들 모두, 블로그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씨앗문장들이랍니다.

각 사람들은 자신의 존경을 받을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수치감 없이는 이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말이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 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도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 왜 정부는 시민들로 하여금 방심하지 않고 항상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며, 정부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시민들이 잘하도록 격려하지 않는가?

정부는 ‘나를 인정하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때 당신이 정부에 대해 만족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효과적이며 또 현재의 조건에서 가장 불가피한 방식은 바로 정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직후, 신기하게도 ‘출판문화인 시국선언’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직 시국선언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앞으로 있을) ‘출판문화인 시국선언’에 제 이름이 보인다면, 위의 씨앗문장들이 저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독자 분께서 주신 책 선물에 대한 그 어떤 감상이나 서평보다도 강력한 답례겠죠? 그렇기에 ‘출판문화인 시국선언’에는 출판인들 뿐만 아니라 독자 분들의 이름도 마음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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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인가는 반복해 읽게 되어 내가 좋은 이에게 권해주고 읽어봐라 읽어봐라 채근하고 종래에는 내 돈으로 스스럼없이 사주게 되는 그런 책이 바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인 듯싶습니다.
행동하기를 주저하고 두려울 때, 혹은 힘이 들어 가끔 포기 상태에 다다랄 때 내게 힘을 내어라 하듯 소로우의 여러 글을 읽으며 심신의 안정을 찾기도 합니다.
현아님과의 인연에 대한 답례를 이 책으로 하게 되니 더욱 더 아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

그린비와 인연을 맺은 또 다른 독자 분은 책과 맺은 인연을 ‘서연’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어떤 인연보다 깊고 강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책으로 맺은 인연이겠죠. 책으로 맺은 인연, 책을 통해 맺은 독자 분들과의 인연을 저도 ‘서연’이라 부를까 합니다. 함께 책을 나눌 수 있고, 그 책들로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기에 각별한 것이 아닐까요? 저와 함께, 그린비와 함께, 또 다른 독자 분들과 함께 ‘서연’을 맺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곳을 찾아 주세요. ^-^*

- 마케팅팀 서현아
알라딘 링크
2009/07/13 16:26 2009/07/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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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량수 2009/07/13 18: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좋은 분위기 글에서 저는 자꾸 왜 소녀시대가 떠오르는 것인지 ㅡㅡ;;;;

    • 그린비 2009/07/14 10:01

      흑. 무량수님, 소녀시대는 서'현'이잖애욤.ㅎㅎ

  2. 띠보 2009/07/13 21:48

    아핫.
    저도 책 받는 마케터가 되야겠어요.
    시국선언도 하셨군요.
    공문 얼핏보다가 외근 나가는 바람에.
    요런 핑계나 대고 있고ㅠㅜ
    자극 받고 갑니다아~

    • 그린비 2009/07/14 10:02

      아유, 띠보님도 블로그에서 독자 분들이랑 아주 활발한 교감을 나누고 계시던걸요. ^^*

  3. 비밀방문자 2009/07/14 11:0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09/07/14 11:43

      아유, 제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