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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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作 <이카루스>
_ 가볍고 즐겁고 명랑하지만, 풍성하고 충족된 듯한 느낌은 자기에 대한 사랑과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건강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자유로운 정신은 지식을 소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영양을 취하는 법을 아는 정신이다. 그는 무거운 영혼, 중력의 영을 거부한다. (…) 중력의 정신은 지식을 섭취할 줄 모른다. 다시 말해 지식을 소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한다. 여기에서는 유한한 존재인 자신에 대한 사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자신만으로 견디어낼 수 있기 위해, 그리고 (위선적으로 사랑할 이웃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건전하고 건강한 애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력의 영에 대하여」2).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섬세함과 인내를 요구하는 모든 기술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기술이다. (…) 인간은 자신의 상충하는 욕망들을 조절하고 삶의 경험들을 포함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들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How To Read 니체』, 80쪽)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소화하고 흡수할 줄 아는 사람,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꾸려갈 수 있는 사람. 그렇기에 항상 가볍고, 즐겁고, 명랑하며,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 니체가 말한 '자유로운 정신'이 깃든 '건강한 자'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지식을 섭취할 줄 모르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여기저기 끄달려 다니고, 실수나 사건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여전히 미숙하다. 왜 항상 긍정하기보다 부정하는 것에 익숙한 걸까? 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나 자신을 옭아매기에 급급한 것일까? (자신 스스로에게 사랑받기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먼저 사랑받기를 바라는 약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지금도 이렇게나 죄책감과 반성으로 자꾸만 무거워지려는,) '자유로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중력의 영을 느낀다.

문장들을 곱씹는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또 그럴 만큼의 건강함이 필요하다고 말한 니체의 문장들을. 그리고 나만의 건강과 욕망과 (실수와 사건들을 포함한) 경험과 지식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법을,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기 위한 취향을 찾아본다. 언젠가는, '난 지금도 자유로운데'라고 말한 그 누군가처럼 당당히 '난 자유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

- 마케팅팀 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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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16:15 2009/07/2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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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후네시 2009/07/23 00:18

    공자는 '나이 일흔이 되면 하고 싶은대로 해도 하늘의 뜻과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고, 칸트는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게 행위하라'고 하더군요. 일견 다르게 보이는 동서양의 철학자들이지만 '자유로움'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충분한 숙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같은 지향점을 보이는 듯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일흔 전에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다는 소망이 있지만요^^

    • 그린비 2009/07/23 09:48

      오후네시님, 안녕하세요.
      정말, 니체와 공자와 칸트..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통하는 점이 있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