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거나 악몽이거나
― 『제7의 인간』(존 버거, 눈빛)에서



여름휴가를 앞두고 주문 물량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 공장들이 바쁘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라면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지만, 냉방은 물론이며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공단지역의 한여름은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로 고욕이다. 공단 안 아파트형 공장 한편에 있는 센터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맘때면 늘 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줄어들고는 했다. 올해는 센터 이사와 겹쳐 사람들의 자리를 폐기 처분할 낡은 가구들이 대신하는 풍경이 서늘하기까지 하다. 특히나 센터의 낡은 가구들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내던, 그래서 상담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살아가는 농담 한두 마디로 근황을 나누던 이들의 빈자리가 가슴에 박힌다.

바쁜 것은 공장만이 아니다. 이미 유통기한 훨씬 지난 불법이주노동자들을 추방하는 작업도 혹서기를 앞두고 상반기 실적을 채우기 위해 분주하다. 출퇴근길, 심야작업장, 주말 장보러 가는 길, 심지어 한밤의 잠자리까지. 그들의 동분서주는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발걸음도 바쁘게 한다. 지난 몇 주, 수년간의 한국생활을 25kg의 가방 하나에 담은 귀국 보따리를 여러 번 배달해야 했다. 업무상 꼭 필요하고 또 자주 마주서야 하는 곳이지만, 피하고 싶은 곳이 있다. 우리들에게는 출입국관리사무소나 외국인보호소 면회실이 그곳이다. 하킴을 만나러 가는 길도 그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주노동자 단속 현장
_ 야간작업을 마치고 취침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는 출입국직원과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맨발로 끌려 나온 이주노동자 (출처: <오마이뉴스>, "이주노동자 단속날, 그곳은 '야만의 거리'였다")

깐비르 하산 하킴. 방글라데시 출신, 한국생활 13년, 사출공장 야간팀 팀장, 나이 29세, 그동안 번 돈으로 수도 다카에 집을 사고, 동생 둘의 학비를 댐. 존 버거는 『제7의 인간』에서 1970년대 유럽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을 "도시로 떠나가서 성공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영웅들이다"라고 묘사한다. 하킴 역시 고향 마을에서, 그리고 그의 가족에게서 영웅으로 그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웅이 갇혀 있다. 며칠째 면도를 하지 못해 듬성한 수염이 영웅의 현재 모습을 대변한다. 이 모습을 고향의 가족은, 10대에 고향 마을을 떠나 방글라데시의 대도시도 아니고 낯선 한국으로 날아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수도 다카에 집까지 마련한 어린 영웅의 뒤를 따르려는 더 많은 하킴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절대로 상상하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러나 그의 이민은 마치 다른 사람이 꾼 어떤 꿈속의 사건 같기만 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면서 꾼 꿈속의 인물처럼, 그는 마치 자동적으로, 가끔씩은 얘기치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 그가 반발하지 않는 한 - 그 꿈꾸는 사람의 정신적 욕구에 의해서 결정된다(47쪽).” 하킴의 행보는 하킴만의 것이 아닌 거다. 당당하게 25kg 가방 하나가 아니라 온 가족, 마을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가득 담은 가방을 한 개 더 챙겨서, 새로 구입한 양복을 입고 귀향하는 영웅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 것이 못내 아쉽다. 그와 그를 바라본 모두에게.

하킴이 단속되던 날도 나는 하킴과 하킴의 친구들을 미워하는 중이었다. 센터 이전 모금 얘기를 꺼낸 후 그들을 두 달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센터를 찾는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하는데, 그동안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교감을 해왔던 사람들이라며 내심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 센터를 찾는 개개인의 반응에 따라 “그 이민의 의도에는 그 자신이나 그가 만나는 어떤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역사적인 필요성이 이미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왜 그의 삶이 마치 남의 꿈속에서 꿈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는 이유다(47쪽).” 이주의 문제를 재지 말자고, 그래서 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자고, 그 역사성에 대해 예의를 다하고 친절하자고 다짐을 해보지만 현실에서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하킴에게 면회가는 길이 더 곤혹스러웠다. 사실 그렇게 끝내 마음을 풀지 못하고 보낸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를 낭송하는 하킴
_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친구를 하나 둘 잃으면서 외롭고 슬픈 마음을 담은 하킴의 「슬픔의 친구」 (출처: <책날개를 단 아시아>, "아시아문학낭송회")

하킴은 그의 가족과 고향 사람들에게만 영웅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영웅이었다.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이것이 임시 이주의 의미일 뿐이다(62쪽).” 결코 영구적인 이민노동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한국에서 모든 이주노동은 3년 단기의 임시 노동이다. 모두가 기계로 수입되고 기한이 넘으면 추방되는 거다. 그런데 하킴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되었다. 그가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해 선택한 것은 시였다. 그는 한국에서 데뷔한 시인+이다. 인천작가회의가 발행하는 『작가들』 18호를 통해 한국사회에 그의, 이주노동자의, 이주민의 감수성을 알렸다.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감수성을.

+ 하킴이 출연해 자신의 시를 낭독한 KBS <낭독의 발견>

면회실에 들어선 그가 웃는다. 밀린 퇴직금을 비롯한 상담 건은 우리 상담팀과 이미 얘기를 나눴을 터였고, 나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과 부재를 확인하는 절차만 남아 있었다. 그가 심각한 얼굴로 얘기를 한다. “미스터리 여기 출입국 문제 많아요.” 마지막까지 자신의 위치를 다하려는 듯 한발 다가서는 내 모습에 한층 더 진지해 진다. “내가 밤 9시 30분에 단속됐는데, 이 사람들 다음날 점심까지 밥 안 줘요. 야간일 하면 12시에 저녁밥 먹고 다음날 아침도 먹어야 하는데, 배고파서 진짜 힘들어요. 사람들 이렇게 하면 안돼요. 미스터리 이거 꼭 문제 만들어줘요.”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렇게 우리는 웃는다. 하킴의 꿈과 그가 발 딛고 있는 현실. “그것이 왜 그의 삶이 마치 남의 꿈속에서 꿈꾸어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는 이유다(47쪽).”
알라딘 링크
2009/07/22 10:20 2009/07/22 10:20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67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