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시작하는 법: 다니가와 간(谷川雁)과 1950년대 서클마을운동
― 일본에서 마을 만들기 2


신지영 (연구공간 수유+너머)

* 여기는 바다 위 네크워크-마을
사진 한 장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다. 이곳엔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종교, 두 개의 바다가 공존한다. 아시아와 유럽이, 비잔틴과 오스만이라는 두 거대제국의 역사가, 기독교와 이슬람이, 마르마라해와 흑해가 공존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양쪽에 거느리고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이 공존 혹은 섞임이 가능한 것은 두 지역을 잇는 다리 덕분이다. 그 다리 위엔 통행이 끊이지 않고 다리 밑으론 매년 5만 척이 넘는 선박들이 통과하며, 곧 기차 터널도 건설될 예정이다. 나는 이 해협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해협을 연결하는 다리를 보았을 때, "바다 위에 떠 있는 네트워크 마을이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다니가와 간(谷川雁; 1923-1995)의 글 「여기는 도마뱀의 머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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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
_ "바다 위에 떠 있는 네트워크 마을"

보통 '마을'이라고 하면 작고 안정된 시골을 떠올린다. 그러나 다니가와는 차별부락민, 나병환자, 외딴 섬의 어민, 재일 조선인 등이 도달한 규슈의 탄광촌, 집도 절도 없이 변방을 떠돌던 그들의 경험 속에서 이질적인 것을 연결·변화시키는 "네트워크 도시"의 잠재성을 본다. "규슈를 코르시카(Corsica)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난 역시 이 지역속의 알제리적인 것에 희망을 품는다. 아니 황해와 동지나해가 우리들의 지중해가 될 때에는, 아테네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를 하나로 뒤섞은 듯한 도시가 반드시 건설될 것이라고 공상하기도 한다. "(「ここはとかげの頭」, 『谷川雁セレクション2』, p.60) 다니가와 간. 그가 보스포러스 해협을 잇는 다리를 보았다면, 그것을 하나의 마을로 만들려 했을 것이다. 
 
일본의 사상동향을 전달하는 게 이번 연재에서 내가 맡은 몫이다. 그러나 나는 다니가와 간을 이른바 "일본", "사상", "동향"으로 말하는 데 일종의 저항을 느낀다. 그는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이름조차 없는 잠재력을 보고, 그것을 마을 형태로 실험하면서, "한 공동체", "한 학문체계", "고정된 지금"과 대결했던 네트워크 운동체였기 때문이다. 다니가와 간은 오직 다니가와적인 방식으로만 말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사상동향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으로서만. 그리고 그 사건은 '마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여기는 공작자-마을
사건은 한번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첫번째 공작. 올해 중순쯤, ‘일본경제평론사’에서는 『다니가와 간 셀렉션1, 2』(谷川雁セレクション1,2)를 출판했다. 1권은 ‘공작자의 윤리와 배리’로 이와사키 미노루(岩崎稔)가 편집을 맡았고 2권은 ‘원점이 존재한다’로 요네타니 마사후미(米谷匡史)가 편집을 맡았다. <일본경제평론사>의 셀렉션은 현재적 의미를 지닌 일본 사상가를 발굴해내는 힘이 있다. 다니가와 간은 1950년대에 일본 공산당의 당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으나, 1958년부터 규슈의 후쿠오카현(褔岡県) 나카마에시(中間市)의 다이쇼 탄광(大正炭鉱)에서 살면서 서클문학운동(잡지 『서클마을』[サークル村] 간행)과 탄광노동운동(다이쇼투쟁[大正闘争])에 참여한다. 이런 다니가와의 활동은 소수의 전위가 주도하는 공산당의 민주집중제와 달랐다. 그의 활동은 단일한 중심이 없는 네트워크로 이루어졌고 소수의 전위가 중심이 되는 게 아니라 모순되고 어두운 탄광의 잠재성을 통해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일본공산당과 어긋났고, 1960년대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때 공산당으로부터 이탈한다. 그 뒤 그는 기존 혁신정당이나 노동조합에서 자립하여, 새로운 좌익운동의 카리스마로서 코뮨적 활동을 벌인다. 그의 말년은 현재로서도 수수께끼인데, 1965년 도쿄로 와 라보 영어 교육운동에 관여하고 혁명운동이나 비평활동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한편, 경영자 측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여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80년대에는 ‘십대회’(十代の会)나 ‘이야기문화회’(ものがたり文化の会)를 조직해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1896-1933)의 동화를 인체교향극으로 표현하는 코뮨활동을 하다가 1995년 죽는다. 다니가와 간은 전후 일본에서 전위, 도시, 지식인과 같은 중심적 권력구도를 비판하고 원점, 마을, 민중의 잠재성 속에서 공동체를 모색했던 공작자(사건을 일으키는 자)였다. 그의 공작들은 이번 셀렉션 출판을 통해 현재적 사건으로서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 책을 알리는 일이 우리 손에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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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가와 간 셀렉션 1, 2

두번째 공작. 6월 6일엔 이 셀렉션의 출판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제목은 ‘다니가와를 다시 읽는다-지금 되살아나는 원점/공작자의 사상’. 기조 발표는 오키나와 티칭, G8반대 포럼 등 활동하는 학자인 우카이 사토시(鵜飼哲)씨와 오사카에서 피차별부락 활동을 하고 있는 사카이 다카시(酒井隆史)씨였다. 우카이는 혁명가 다니가와 간과 언어/신체를 새롭게 구성하려 한 다니가와 간. 이 단절이 지닌 울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사카이는 다니가와의 공간감각이란 어떤 지역에 잠수한 뒤 엄청난 크기로 확장되며 중앙 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고 말했다. 1권 해설자인 사토 이즈미(佐藤泉)씨는 다니가와 간을 집단적 존재로서 읽을 때, 현재의 비정규직 운동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권 해설자인 나카자토 이사오(仲里効)씨는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다니가와 간의 강연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나 80년대 동아시아의 난민확산 및 민중문화의 흐름 속에 위치시켰다. 사쓰마가 오키나와를 침략한 지600년 류큐처분 130년을 맞는 올해, 나카자토씨의 지적은 유민의 흐름을 잇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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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가와 간

드디어 편집자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1권을 편집한 이와사키는 다니가와 간의 '공작자'란 사이에서 사건을 만드는 자라고 강조하고, 비정규직 활동인 파견마을활동, G8반대 활동 등과 같은 활동 속에서 다니가와 간을 '현재적으로 오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2권을 편집한 요네타니는 이번 셀렉션 편집 작업 전체가 코뮨적 네트워크였다고 말했다. 수유+너머를 통해서 네트워크적 코뮨의 가능성을 보았고, 나카자토씨와의 만남을 통해 오키나와를 연결되었으며,  ‘이야기문화회’ 등과의 교류가 이번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1958년부터 2~3년간 지속된 서클마을 활동 또한 다니가와 간 외에도 모리사키 카즈에(森崎和江),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 등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낸 것이었다. 심포지엄 발표자들은 이처럼 자신의 활동 속에서 다니가와 간과 접속했다. 나는 이 공작들이 심포지엄과 책이란 틀을 깨고 흘러넘쳐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꿈을 꾼다.  

* 여기는 어둠 속의 어둠, 침묵하는 마을
네트워크가 되고 마는 심포지엄처럼, 그의 글은 네트워크 없이 독해가 불가능하다. 그의 글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편지글, 공동선언문도 다수를 차지한다. 다이내믹한 1950년의 구체적 활동, 그 안에서만 의미를 지닌 단어들, 인명, 지역명, 사건명이 어지러울 정도로 비약적인 이미지로서 등장하며 때로는 깊고 어두운 심연을 지니고 있어서 건너가지질 않는다. 이런 구체성들은 우리가 경험했던 마을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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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수유+너머, 대추리, 일본의 홈리스마을, 오키나와의 산호초……. 내 속에도 혼동스러운 몇 가지 마을 이미지가 있다. 그것들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 공동체에도 다시 그림자가 생기고 차별이 생기고 어둠이 생긴다. 그러나 마을의 어둠 속엔 단지 어둠으로 끝나지 않을 아름다운(감히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빛깔이 있다. 다니가와는 그 어둠에 '밝음'이나 '진보'란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혁명의  음극(陰極)", "마이너스의 극한치"에 "원점(原點)"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이야말로 어둠 속에서 눈을 밝히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의 소용돌이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 경험한 어렴풋한 놀라움이다. 그건 정말이지 평범한 사실이지 않은가라고 몇 번이나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윙윙 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이다. 이것이 어디로 가서 닫을까, 나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그것이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생성할 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여자들의 새로운 밤」(「女たちの新しい夜」, 『谷川雁セレクション1』, p. 308)

그런 점에서 다니가와 간의 서클마을 활동은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과 함께 조명해야 한다. 특히 모리사키는 다니가와 간와 연인사이로 함께 서클마을 활동을 하지만, 그녀는 탄광의 가장 하층여성들과 함께였다. 그녀는 당시 만들었던 잡지『무명통신』(無名通信)의 복간을 거절하고 있다. 그 잡지는 그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자신 혼자 복간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이다. 그 잡지는 이렇게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밤에 불을 밝힐 때 밤은 사라지거나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는다. 밤을 낮이 아니라 밤 자체로 말할 수 없을까? 밤을 밤 자체로, 침묵을 침묵 자체로, 마이너스와 결여 그 자체를 가치로서 말하는 법, 그래서 세상의 좌표계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법을, 1950년대 서클마을의 활동들은 알려줄는지도 모른다.

* 우리, 어두운 낙천주의자들의 마을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보스포러스 해협.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 스파크를 일으키는 네트워크-마을. 그러나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리만이 아니다. 사진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보스포러스 해협은 깊고 거칠다. 해협의 직선 길이는 20.9km이고 폭이 넓은 곳은 3,500m나 된다. 수심도 50m~120m으로 깊다. 북에서 남으로 진행하는 남류와 남에서 북으로 진행하는 북류 두 가지 해류가 흘러 물 흐름은 세차고 소용돌이친다. 수면은 흑해에서 지중해 쪽으로 흐르지만 바다 속은 지중해에서 흑해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좁은 수로, 급격한 만곡, 바람, 안개 등은 수많은 해상사고를 일으킨다. 다니가와 간의 글을 읽을 때 건너야 하는 심연들, 이른바 구체적이고 독특한 활동어와 고유어, 공동체 속의 다시금 생기는 어둠, 어둠 속의 어둠이 내뿜는 숨막힐 듯한 에너지처럼. 그러나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일은 이런 심연이 지닌 어둡고 괴상한 에너지를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조금은 이상한 눈으로 여전히 사진을 쳐다본다. 아니 사진을 움직이려고 애쓰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 아직 아무도 만나 보지 못한 마을이, 우리 어두운 낙천주의자들의 마을이, 그 구체적인 숨결을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2009/07/24 12:01 2009/07/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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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3 00:16

    다니가와 간 검색하다 들어왔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 그린비 2009/08/03 09:30

      아,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구요. ^^*

  2. 낙타 2009/08/27 22:01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니가와 간을 검색하고 계시다니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인데, 어쩐지 기쁘네요 또 들려 주세요.

  3. 조은미 2010/06/22 22:58

    신지영씨의 실천하는 삶은 늘 대견스럽습니다.동경의 벗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