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노조 간부'였던 아빠


“아버지는 뭐 하시니?”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에 “회사 다니세요.”라고 답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직업란에는 ‘회사원’이라는 세 글자를 적어 넣었습니다. 보통 ‘회사원’이라고 하면,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고 책상이 놓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를 떠올리기 마련일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회사원’은 꽤 오랫동안, 파란 작업복을 입고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일하는 ‘블루칼라’ 노동자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자공업도시라는 ‘구미’에서 태어나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공단의 사원아파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당연히 저희 아빠도, 제 친구들의 아빠도 모두 공장에 다니시는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였습니다. 저에게나 저희 가족에게나 회사는 공장이고 공장은 회사와 같은 말이었죠. “회사 다녀올게.”라는 아빠가 출근하는 곳이 바로 공장이었으니까요.

대학에 입학하기 전(예전 글에서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 이마트 아르바이트 시절),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 어머님이 제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본인의 아들은 스키장에 갔는데, 넌 여기서 일하고 있느냐는 둥의 몇 말씀을 하고 가셨습니다. 후에 남자친구에게, 그 아이는 그렇게 아르바이트 해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렵냐고 물으셨고, 남자친구는 “그냥  대부분 여기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다 그렇잖아요.”라고 대답했더랍니다. 그때서야 하얀 와이셔츠가 아니라 파란 작업복의 회사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미 공단
_ 이 넓은 공단에 빽빽하게 들어선 공장들, 북적대며 돌아가던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철거되고 있습니다.

저희 아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버렸을 ‘오리온전기’에 다니셨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다니셨고, 분명 당신이 정년이 다할 때까지 그곳에 다니시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장기근속상을 타 오셨던 날, 아빠는 16년 동안 지각도 결석도 없이 만근을 하셨다며 자랑스레 말씀하셨었죠. 그게 만 15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광풍과 그럼에도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회사를 그때는 꿈도 못 꾸셨을 테지요.

오리온전기는 브라운관(CRT)을 생산하던 회사로, 대우그룹 계열사였지만 1999년 대우사태 이후 워크아웃에 들어가 계열에서 분리된 후에 복지축소, 임금동결은 말할 것도 없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아빠는 시위며 파업에, 바람 잘 날 없는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셨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친구 아버지, 같은 사원아파트에 살던 아저씨들, 사촌언니들이며 이모부를 비롯한 친척들…) 회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1만 5천여 명이었던 사원들이 1천5백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최종 부도가 났고, 2005년 매틀린패터슨이라는 (정말이지 입에도 올리기 싫은) 미국계 투자회사에 매각되었습니다. 3년 간 고용보장이라는 합의는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고, 4개월 만에 공장을 분할해 다른 곳에 넘겨버렸죠. 아빠는 결국 20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에서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쓸쓸히 나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 사실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아빠는 시위니 파업 같은 건 하지도 않으시고, 아빠와 똑같이 다녔음에도 과장급 관리직에,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오신 후에는 다른 회사로 재취업하시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저희 아빠는 노조 간부로 온갖 시위 현장은 다 다니셨고, 평생을 공장에서 평사원으로 일하신 데다, 회사에서 나오신 이후로 다른 일을 하는 건 꿈도 못 꾸셨습니다. 제게 아빠는, 일은 안하고 시위만 하는 아빠, 딸에게 용돈 한 번 넉넉히 쥐어주지 못한 아빠, 대학 등록금 한 번 제대로 내주지 못하고 빚만 안겨준 부끄럽고 못난 아빠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_ "일하면서 살거나 싸우다 죽는다.", "노동자의 가족들에게서 가장 필요한 시기에 가장(家長)의 보살핌과 도움을 빼앗아버리는 불행을 초래한다." (『자본 I-1』(맑스, 길)에서 재인용, 이미지출처는 한겨레 "오리온전기 노조원 외교부 기습 진입"(좌), "쌍용노조원 가족 7명 한나라당사 농성"(우))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 지는, (제가 일을 하기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니)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제가 중학생일 때부터 대학생이 된 후에도) 그 긴 시간들을 ‘일하기 위해’ 싸워 왔던 것입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생존권 투쟁이었던 만큼, 강성노조라는 이미지 때문에 구미 공단 내에서는 재취업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회사가 문을 닫은 것으로 기나긴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힘없이 당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투기자본에 대한 법과 제도적 규제마련을 위해 계속해서 싸워 오셨습니다. 당신의 계급에 충실했던 아빠. 언젠가는 서울에서 집회가 있어 올라오셨다가 밤늦게 딸 얼굴이라도 보겠다며 찾아오셨었는데,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해 하던 게 떠올라 죄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못났던 건 아빠가 아니라 딸인 저였던 거죠.

그래서인지, 쌍용자동차 사태가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들에 대한 폭력적인 진압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외롭게 싸웠을 아빠에게 조금도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던 미안함에, 그 조합원 분들이 제 아빠같고, 그 가족들이 우리 가족들과 같아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투기자본에 팔아넘긴 쌍용차, 선 구조조정 후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정부, 오리온전기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렇게 싸워 왔던 사람들의 노력을 한 순간 물거품으로 만드는, 모든 문제를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조 탓으로 돌리기 급급한 사측과 정부와 보수 언론들. 그들은 점점 더 우리를 추방시키려 듭니다. 1천5백명만 희생하면 몇 십만명이 산다며 다수의 논리로 소수를 희생시키려는 다수들. 이 폭력의 문제는, 비단 쌍용차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포섭되는 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우리 지역 곳곳에, 우리 사회에,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일어날 일입니다.

- 마케팅팀 서현아
알라딘 링크
2009/07/27 11:12 2009/07/27 11:12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68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백두대간 2009/07/28 01:57

    글 잘 읽었습니다.

    • 그린비 2009/07/28 09:51

      백두대간님 안녕하세요.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 풍차래미안 2009/07/28 10:37

    정말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우리 아버님들께 화이팅을....!!

    • 그린비 2009/07/28 10:40

      풍차래미안님 안녕하세요.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중요한건 얼마나 강하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인 것 같아요. 풍차래미안님도 화이팅입니다!

  3. 안타까움 2009/07/31 13:50

    글을 참 이쁘게 쓰시네요..^^ 정말 안타까울 뿐이지만.. 꼭 그렇게 블루칼라만 희생당하는 듯이 생각하시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인가요? 훔..

    저는 화이트 칼라 노동자입니다.. 28살에 시작했고.. 지금 만 9년을 했네요.. 앞으로 10년을 더 버틸 수 있을지 갑갑한건 저 뿐만 아니고 주변의 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 들도 다 같은 심정일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오너나(물론 이들도 부도 등의 불안감에 항상 떨지만..) 공무원 등이 아닌 다음에야 회사가 사정이 안좋으면 언제던 칼날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다니는건데.. 학생도 아니고 말이죠..

    투쟁으로 일자리를 더 연장하고.. 그러기 위해서 세금을 투입해야 하고.. 이게 맞는거라면.. 저도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투쟁을 해야겠군요..

    사람마다 입장차가 있지만.. 아버님께서 안타깝게 회사를 그만두신 것과.. 쌍용자동차 파업의 정당성과는 연결고기가 좀 약한 것 같습니다.

    다만 쌍용차 직원 분들이 개인적으로 잘 풀리시기를 바랄 뿐이네요..

    • -_- 2009/07/31 14:18

      안타까움님이 개인적으로 잘 풀리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 그린비 2009/08/03 09:36

      네, 말씀 감사합니다..;

    • 디비디비딥 2009/08/05 10:56

      연결 고기는 언제 먹는 고기라냐. 먹고 힘내라! 안타깝다

  4. ㅇㅅㅇ 2009/08/01 17:45

    근데 저분들
    왜 비정규직+하청업체 직원들을 위한
    행동은 안 보여주나염?

    그러니까 귀족 노조지요
    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린비 2009/08/03 09:34

      뭐라 할 말이..;;;

  5. 은유 2009/08/05 09:19

    그 때 트랙백 타고 왔다가.. 마음이 짠해서 심상한 댓글을 달기도 뭐하고..그냥 갔더랬습니다. 오늘 다시 와봅니다... 쌍용차 공장 위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특공대원을 보고 있자니 이것이 게임화면인지 현실인지 감이 안오네요.. 오늘이 고비입니다..제발..

    • 그린비 2009/08/05 09:39

      은유님, 안녕하세요.
      네..아침부터 들려오는 속보들에 마음이 답답하네요..

  6. 그렇죠. 2009/08/31 18:34

    우리들 대부분은 노동자가 많은데 우리의 아이들도 대부분 노동자일텐데 아직도 우리는 노조라면 부정적 이미지만 떠올리죠. 우리의 언론환경이 그렇고 정치권이 그렇고 부정적 이미지만 각인시켜서요. 독일은 어려서 부터 노조와 사측이 대화와 타협을 하는 걸 교육시킨다는 데 우리는 언제나 제대로된 노동자 대접을 해 줄런지요.
    아마 우는 아이 젖준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겠죠.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댓가가 없겠죠...

    • 그린비 2009/08/31 20:04

      네.. 이번 사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노조를 탓하곤 했죠. 위에서 화이트칼라니 블루칼라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무슨 색(;)이든 노동자라는 사실은 같을텐데..자신이 노동자라는 자각도 거의 없는 것 같아 답답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