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쓰려는 지금, 참 난감합니다. 뭘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제가 읽는 책들은 주로 '진화론'과 관련된 책들입니다. 어제 오후에 올라온 포스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린비에서 이제 막 출간한 책 『굿바이 다윈?』 덕분입니다.('진화론'이 재미있다고 자기에게 종교와도 같다며 추천해 주신 친한 누님 덕분이기도 하구요. ^^) 요즘 주로 듣는 음악은 뭉뚱그려서 '일렉트로니카'라고 부르는 음악들입니다.(과거엔 '전자음악'이라고 그랬던 그 음악입니다.) 허허 이게 억지로 꾸며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체의 진화'와 '음악의 진화'가 꽤나 유사하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케미컬 브라더스,「We are the night」의 앨범커버
_ 손바닥 위에 돋아난 눈, 별자리처럼 보이는 배경 이미지들.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이 이런 이미지를 앨범커버에 자주 채용하는 것이 완전히 우연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_ 손바닥 위에 돋아난 눈, 별자리처럼 보이는 배경 이미지들.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이 이런 이미지를 앨범커버에 자주 채용하는 것이 완전히 우연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윈의 점진성에 대한 개념은 그 본질에서 변형주의자들의 점진성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변형주의자들의 점진주의는 본질적 유형의 점진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고 다윈의 점진주의는 개체군의 점차적인 구조 재편에 따른 것이다."(에른스트 마이어『진화란 무엇인가?』, 180쪽)
다윈의 놀라운 점은 19세기까지 서구 사유를 지배하고 있던 본질주의적인 사고 방식, 이를테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처럼 어떤 사물에는 그 본질이 있어서 그 사물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변하지않는 본질이 있다는 사고방식을 전복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곤 '개체군의 점진적 변화'라는 개념을 창안하죠. '개체군의 점진적 변화'란 특정한 집단을 이루는 '개체들'이 자연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켜나가고, 이 변형을 토대로 '진화'가 전개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DNA가 큰 역할을 합니다. DNA에 잠재된 것들이 환경과 맞물리면서 현실화되어 가는 것이죠.
음악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음악들은 예술가 각자의 창작물(이면서 모방물)이었습니다. 모차르트에겐 모차르트의 음악이 있고, 베토벤에겐 그의 음악이 있는 법이죠.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아무런 토대도 없이 세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모차르트에겐 백여 년간 지속된 바로크 음악이라는 토대가 있었고, 베토벤에겐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잘 닦아놓은 고전주의 양식이라는 토대가 있었죠. 이것들이 그 위대한 작곡가들의 DB(데이터 베이스)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 DB는 직접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작곡가 자신이라는 필터를 거쳐서 '창작물'이 되어 나옵니다. 생명체의 진화만큼 점진적이진 않지만 제약된 연속성 속에서 '진화'한 것이죠. 이 '진화'가 그들을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을 남기게끔 해준 것이죠. 이런 형식은 20세기 대중음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디 거스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밥 딜런이 있었고, 비틀즈, 롤링 스톤즈가 있었죠.(종분화) 또 롤링 스톤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하드록 밴드들, 영국의 펑크 밴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지금의 무수한 밴드들이 있습니다. 이 진화의 도정 속에서 어떤 밴드는 완전히 잊혀지고, 어떤 밴드는 기념비적인 뮤지션으로 이름을 남깁니다.(화석화)

믹서(Mixer)
_ 이 기계는 그러니까 여러 음원들에서 나오는 소리를 '섞는' 기계입니다. 양쪽에 턴테이블을 붙이고 DJ들이 온갖 현란한 쇼를 벌이는 것도 다 이 기계 덕분이죠. 음원들의 볼륨 레이트를 조정하고, 피치를 조정하는 등 사실상의 악기나 다름 없습니다.
_ 이 기계는 그러니까 여러 음원들에서 나오는 소리를 '섞는' 기계입니다. 양쪽에 턴테이블을 붙이고 DJ들이 온갖 현란한 쇼를 벌이는 것도 다 이 기계 덕분이죠. 음원들의 볼륨 레이트를 조정하고, 피치를 조정하는 등 사실상의 악기나 다름 없습니다.
일렉트로니카의 출현은 이런 음악의 역사에서 특이한 장을 형성합니다. 이 모든 역사적 음악들을 하나의 '소스'로 활용해서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집단의 탄생(생명공학)인 것입니다. 이전까지의 음악은 사실 그것이 모방과 도용으로 태어난 것이라고 해도 '창작물'로 취급받았습니다. 하지만 일렉트로니카의 장에서는 '창작'의 딱지가 사라집니다. '믹싱' 중심의 음악이 되었기 때문에 '창조'와 '창작'의 개념은 희박해지고, 편집의 '창의성', 믹싱의 '참신함'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음악사적 DB를 직접적으로 이용합니다. 이 음악과 저 음악을 섞고 비비고 비틀어서 희한한 놈(키메라)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만들어 낸 음악엔 과거의 유전자가 남아 있기도 하고, 완전히 지워져서 원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발견할 땐 참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걸 또 누가 어떤 식으로 재조립해서 얼마나 신기한 사운드로 다시 태어나게 할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쫙쫙 돋아나죠.
Underworld의 <Cups> 라이브 장면
_ 기타, 베이스, 드럼과 같은 악기는 무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커다란 전자장비들 뿐이죠.
_ 기타, 베이스, 드럼과 같은 악기는 무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커다란 전자장비들 뿐이죠.
들뢰즈의 중요한 개념 중에 '잠재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그때 A처럼 했었더라면'이라는 형식으로 말해짐으로써 비현실적인 선을 그리는 데 반해, 잠재성은 지금 하고 있는 A라는 행위에서 벗어나 B라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의 차원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선을 그립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가진 '능력'이 바로 그러한 '잠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온갖 '소리'의 DB를 다양한 계열로 접속 분해시키면서 그것(소리의 요소들)이 가진 잠재적 능력을 극한까지 확장하는 작업이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일렉트로니카의 이러한 '창작형식'이 정치적으로도 굉장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온 온갖 지식들, 감성들, 목소리들을 DB삼아 새로운 정치의 형식, 새로운 소통의 형식, 새로운 감각의 형식들을 발명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명박의 이미지와 뒤섞인 영화 포스터, 또 그것들과 뒤섞인 농담들, 그 농담을 통해 생성되는 우리의 웃음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기인 것이죠. 우리 세계의 모든 것들을 우리의 삶의 재료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유'를 향한 열망이야말로 음악, 미술, 인문학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일렉트로니카의 이러한 '창작형식'이 정치적으로도 굉장한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온 온갖 지식들, 감성들, 목소리들을 DB삼아 새로운 정치의 형식, 새로운 소통의 형식, 새로운 감각의 형식들을 발명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이명박의 이미지와 뒤섞인 영화 포스터, 또 그것들과 뒤섞인 농담들, 그 농담을 통해 생성되는 우리의 웃음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기인 것이죠. 우리 세계의 모든 것들을 우리의 삶의 재료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자유'를 향한 열망이야말로 음악, 미술, 인문학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웹기획팀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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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곡 추천 좀 해주세용~ ^^;;
dawnsea님 안녕하세요. 하하 이게 추천이라는게 참 어려운 일이라서요. ^^
1) 제가 어제 씨디를 사서 좀전에 들어본 곡은 Erland Oye라는 노르웨이 출신(Kings of Convenience 중 한명입니다.) 뮤지션의 솔로앨범이었는데요.아 끝내줍니다. 약간 나른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좋아하심 함 들어보셔도 좋으실 듯.
2) Darren Emerson이라고 과거 언더월드에서 DJ를 했던 분이 따로나와 만든 앨범들도 좋습니다. 시원한 느낌이죠.
아 역시 그래도 추천은 어렵네요. ^^
감사합니다~ 언더월드는 트레인스포팅 보고나서 그 정도만 들어봤는데 지금 추천을 받고 언더월드의 Dubnobasswithmyheadman 라고 들어보는 중입니다. 말씀하시는 음악은 구하기가^^;
나름 함법적인 경로로만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중이고요.. 요즘은 벅스 한달에 만몇천원짜리를 쓰고 있는데 어지간한 일렉트로니카는 찾기 힘드네요 -_-;; 이짝 음악은 MP3.com이 살아 있을적에는 좀 들어봤지만 잘은 몰라영.. 좋아는 하는데.. 티에스토, 비티, 랭크1은 평소에서 많이 듣습니다. ^^; 좀 드라마틱한 구성 있는 걸 좋아하나봅니당. 요즘은 에어, 가빈, 이비자 스타일 칠아웃계 컴필앨범 들어요~ ^^;
종종 소개좀 해주세요~ 클럽을 가는 것도 아니고 까페활동 하는 것도 아니라 새로 가르쳐 주는 소스가 없으면 새로운 것 듣기가 힘이 듭니다 -_-; 차트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
감사합니다.
흐미! 댓글을 이제야 봤네염 -_-;; 저도 들은지가 얼마되지 않아서 정말 소스 구하기가 힘들어요. 주로 퍼플레코드(http://www.purplerecord.com/)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사는 편이죠. ^^; 드라마틱한 구성을 좋아하심, sasha를 함 들어보셔요. 뭔가 굉장합니다. ㅋㅋ
앞으로도 뭔가 삼삼한거 건지면 소개해보도록 하께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