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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노컷뉴스

난 야구를 매우 좋아한다. 2001년 응원하던 팀이 11 대 18로 대역전패를 당하고 잠시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이듬해 비로소! 우승하고 난 뒤 시들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프로야구 원년 다음 해부터 야구에 빠지기 시작했으니, 난 올해로 25년째 야구와 함께 살아온 셈이기도 하다. 소년 시절엔 방과 후에 야구하는 걸 잊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도망가면 한두 명이라도 붙잡아 야구시합을 했고, 그마저도 안돼 혼자가 되면 벽에다가 스트라이크존을 그려놓고 공을 던질 정도였다. 매일같이 야구 중계를 듣는 것도 모자라 스포츠신문을 보면서 기록들을 확인하고, 중계를 듣지 못할 땐 기록지를 통해 시합 장면을 시뮬레이션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야구선수가 되어 있는 나를 상상하며 잠을 청할 정도로 야구는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이만수 22번, 성준 14번, 강기웅 6번, 이승엽 36번(욤우리 현재 25번) 등 좋아하는 선수들의 등번호는 웬만하면 평생 잊지 못할 것도 같다.

야구는 숫자놀음이다. 타율, 출루율, 안타수, 홈런수, 방어율, 승수, 세이브수와 같이 일반인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데이터에서 득점권타율, ops, 특정 투수나 특정 상황에서의 기록, 한 선수의 통산 기록 등 고급 정보까지, 이런 무수한 숫자들이야말로 야구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야구는 통계가 좌우하는 비중이 가장 큰 스포츠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러면서도 수싸움이니 지략대결이니 하면서 멘탈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게임의 흐름이니 승부처니 하면서 드라마틱한 요소를 한껏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야구는 종종 인생을 비유하는 수사로 사용된다. 대표격이랄 수 있는 ‘9회말 투아웃부터’는 거의 속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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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야구는 여러 가지 작품들의 단골소재로 사용된다. <더 팬>, <슈퍼스타 감사용>, <메이저리그>, <공포의 외인구단>, <H2>,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머니볼> 등등. 야구를 소재로 한 이런 작품들 중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가장 매혹적인 작품이다. 사실 좀 따지고 보면 야구는 일종의 병풍이고 수학이 그 중심에 있는 것도 같지만, 어쨌든 야구와 수학은 이 작품을 이끌고 있는 코드이다.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으로 자주 묘사되는 만큼이나 수의 세계를 색다르게 용해해 놓은 이 작품에서 지금껏 느끼지 못한 수(학)의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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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과 284우애수라고 한다. 화자인 파출부 ‘나’와 사고로 기억이 80분밖에 재생되지 않는 수학박사를 연결해 주는 운명적인 신호이다 ― ‘나’의 생일인 2월 20일과 박사의 학장상 번호 284가 우애수로 서로 맺어진다. 220은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284이고, 반대로 284의 약수의 합은 220이다.

220 = 1+2+4+5+10+11+20+22+44+55+110 = 142+71+4+2+1 = 284

220과 284보다 더 큰 우애수는 1184와 1210, 17296과 18416 등으로 찾기 힘들다고 한다.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평생에 걸쳐 단 한 쌍씩밖에 발견하지 못한, 박사의 말에 따르면 “신의 주선으로 맺어진 숫자”이다.

― 파출부 아들의 별명이기도 한 루트이다. 제곱근이라고도 부르는 루트는 어떤 수 x를 제곱해서 나오는 수에 얹어 놓은 헬멧과 같은 기호이다(√x2=x. 예를 들어, 2의 제곱은 4이고 4의 제곱근은 2이다). 이런 루트는 모든 수를 다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다. 박사 말대로,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고, 무한한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가 있다.” 루트는 √-1과 같이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숫자에도 의미를 준다. 그러니 당연히 박사는 루트를 매우 아낀다. 80분이라는 짧은 순간이지만, 이렇게 (야구와) 수학을 반복하면서 세 인물은 잔잔한 일상을 이룩해낸다.

28완전수라고 부르는 이 수는 자신을 뺀 약수의 합이 자신과 같은 수이다. 1+2+4+7+14=28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한신의 에이스 에나쓰의 등번호와도 같은 수이다. 정확한 어떤 것 혹은 에나쓰처럼 위력적이고 최고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수이다.

그러나 이 수가 주는 느낌과 달리 이들의 관계는 불안해 보이고, 80분이라는 짧은 생활 리듬은 아슬아슬하다. 이런 고비들이 수학의 힘에 의해 극복되는 장면들은 다이내믹하진 않지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대표적인 게 1부터 연속하는 자연수의 합을 구하는 과정 같은 것이다. 박사는 같은 숫자, 같은 공식, 비슷한 숫자 나열을 얘기하더라도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주 섬세한 변화를 일으킨다. 숫자를 4B 연필로 정성스럽게 적어 놓고는 각각의 숫자가 갖고 있는 개성, 미묘한 예외적 관계, 색다른 나열법 등을 관찰한다. 문제와 해결로 점철된 수학이 아니라 관찰과 직관으로 삶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수학. 건조하게만 느껴지던 숫자들이 제각각의 색깔과 ‘삼각수’처럼 모양을 갖는 숫자로 탈바꿈한다.

πi+1=0 ― 세 사람의 우정 역시 수식으로 설명된다. 파출부에게 의심스런 눈빛을 보내던 미망인도 박사가 적은 이 수식을 보고는 ‘수식의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변했다. e는 자연로그(순환하지 않는 무리수이다), π는 원주율, i는 -1의 제곱근이다. 정체불명의 세 수가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박사의 메모를 쳐다보았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 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180쪽)


오일러의 공식은 세 사람의 우정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수들을 끌어 모아 생명을 불어넣으면서,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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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아름다운 만큼, 어지러운 수(학)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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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수학사를
드라마틱한 내용 전개를 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한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 오가와 요코는 야구와 수학을 삽입한 절묘한 구성력으로 야구만큼 매력적인 수의 세계를 보여 준다. 수의 세계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우리의 가슴속에 있고,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숫자가 펼치는 멋진 하모니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수학이라면 지레 겁부터 먹는 이들에게도 이 책은 수학에 대한 유쾌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다음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는 그린비의 인기스타이자 얼굴마담, 이라기엔 2% 부족한 박부장님(박순기 식사부장님)께서 재기발랄한 서평으로 꾸며주시겠습니다.
- 편집부 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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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은이), 김난주 (옮긴이) | 이레

출간일 : 2004-07-05 | ISBN(13) : 9788957090251
양장본 | 260쪽 | 198*138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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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은이), 박병철 (옮긴이) | 영림카디널

출간일 : 2003-02-25 | ISBN(13) : 9788985055970
양장본 | 400쪽 | 248*176mm (B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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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2 11:01 2007/10/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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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이 2007/10/13 22:45

    책으로는 못 보고, 영화로만 접했는데... 마침 그날 고등학교 동창이랑 늙어가시는 부모님 이야기를 했죠.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시는 부모님. 젊음, 건강함만을 정상의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늙음도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일이 두려움이 아닐까. 그러나 가족이니까, 그 비정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면서 좀 엉뚱하지만 그런 위로를 받았습니다. 중요한 건 뭔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아아.. 그러나.. 오늘도 시집 안 간다고 아버지와 또... 전화로 싸우고 말았습니다. T T

    • 그린비 2007/10/15 09:57

      아... 힘내세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