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프롤레타리아가 되자!
― 회사에서 잘린 건, '네 탓'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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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소이어 作 <도시의 공원에서>
_ 숙인 고개가 거세의 징표라면, 초점을 잃은 눈은 절망의 징표다. 담배 하나에 기댄 신체, 주어진 현실을 잊으려는 듯 입을 벌린 채 잠든 얼굴. 이 또한 모두 실업자라는 '타자'의 얼굴이다. (이진경, 『자본을 넘어선 자본』, 274쪽)

프롤레타리아가 되어야(devenir-proletariat) 한다. 자본에 포섭되어 노동하는 존재, 가변자본의 형태로 ‘계급’에 포섭된 존재에서, 자본의 척도를 벗어나고 계급적 안정성의 부르주아적 환상에서 벗어나, 자본의 지배, 자본의 포섭에 대항하는 비-계급화 내지 반-계급화의 선을 그려야 한다.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역시 프롤레타리아-되기를 해야 한다. 단순한 비-계급적 상태에 머문 존재로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자본의 손길을 기다리며 다시 계급적 자리를 꿈꾸는 ‘열등한 계급’ 내지 ‘버림받은 계급’이 아니라, 자본의 요구를 자신의 욕망으로 삼길 거부하고 자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길 거부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활동방식을 창안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되어야 한다.
(이진경, 『미-래의 맑스주의』, 243쪽)

2주정도 됐을까요.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휴가를 아주 길게 받았다고. 무슨 말인가 했더니, 회사에서 비정규직 정리해고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이틀 전에 통보해서 나가라고 했답니다. 6개월 이상이 되어야 실업급여를 받는데, 6개월 되기 일주일 전에 퇴사 처리를 해버려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게 됐다구요.. 그 친구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친구들도, 며칠 전에 만난 친한 선배 언니도, 그리고 제 동생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자리를 잃고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보다도, 제가 느낀 더 큰 문제는 모두들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는 건,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모자라서, 내가 운이 없어서라고 말이죠. 한창 ‘생기’ 있게 ‘생’을 보내야 할 때에 자신의 탓이 아닌 일로 자신을 탓하며 ‘생’을 걱정하느라, 라파엘 소이어가 그린 도시의 공원에서처럼 ‘실업자’라는 타자의 얼굴로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문장들을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탓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자본’에, ‘계급’에 포섭되어 시들어 버리지는 말자고.

- 마케팅팀 서현아

2009/07/29 16:44 2009/07/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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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stlcjd 2009/07/29 17:44

    슬프 일이군요. 계약만료로 줄줄이 나가고 있는 우리 회사도 어쩔 수 없다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크고 네탓은 아니지만 체념이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겐...

    • 그린비 2009/07/29 17:58

      네, 써 주신 글 봤습니다. 직장동료 분도 계약만료로 떠나신다구요.. 저도 친구들에게, 남아있는 자로서 괜히 제가 다 미안해지더라구요.
      그래도 떠나는 자나, 남아있는 자나, '숙인 고개'로 '초점 잃은 눈'으로 현실을 피하기 보다 창조적인 활동들을 만들면서 생기있게 지냈으면-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일까요?

  2. 독자 2009/08/01 16:51

    정말 남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출판계에도 비정규직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슬퍼요.

    • 그린비 2009/08/03 09:28

      네..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3. 2009/08/03 15:38

    조직 밖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이 안 되지요. 항상 어딘가에 속해 있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저도 밖에 있으면서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없구나'라는 걸 많이 느껴요. 그런데 혼자의 반대말이 꼭 조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해요. 조직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공동체나 연대로 작업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좋겠지요.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 몰라서 헤매고 있지만 분명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린비 2009/08/03 16:17

      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린비도 회사라는 조직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 연대를 꿈꾸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