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역설
― 김정희의 『대추리 아이들』


김해규 (한광중학교 교사, 평택지역향토사연구가)

1.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 켄 로치는 존경받는 영화감독이다. 명문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법의 정신을 좀더 구체적이고 사회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영화감독이 되었다. 켄 로치 감독은 트로츠키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카메라도 스페인 내전, 아일랜드 민족해방운동,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민족적, 사회적 약자에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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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 「랜드 앤 프리덤」
_ 「랜드 앤 프리덤」의 배경은 내전 당시의 스페인이다. 그렇지만 그 배경이 '꼭' 스페인인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토지와 자유'가 문제가 되는 곳이 있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1995년에 만든 「랜드 앤 프리덤」이다. ‘땅과 자유’ 또는 ‘토지와 자유’로 번역되는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이 배경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1936년 스페인은 민중들이 건설한 공화정부와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세력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내전이 발발하자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는 전 세계 지식인과 노동자, 청년들이 반파시스트 깃발 아래 결집되었다. 공화정부의 사상적 경향은 무정부주의에 가까웠지만 내전에 참전한 사람들은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하였다. 스페인의 세계적인 축구클럽 바르셀로나도 입장수입의 상당 부분을 공화정부에 기탁하였다. 유명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내전에 참전하여 총을 잡았다.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역사적인 죽음을 선택한 그들의 삶은 숭고하였다. 비록 사상과 노선의 차이로 동지를 죽이는 장면이 가슴을 때리지만, 수천 년 억압의 사슬을 끊고 농민들이 토지분배를 놓고 벌이는 논쟁은 그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하게 한다.  

2. 미군의 재배치, 과연 한국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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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스트라이커 부대
용산미군기지 이전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른 것은 1987년 대통령선거 때였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도심지역 군사시설 외부이전’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듬해 관계부처에서는 기지이전문제를 내부검토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미국 상원에서도 주한미군감축과 주한미군재배치법안이 제출되었다. 1990년에는 딕 체니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한미군감축 및 역할변경문제를 협의하고 돌아갔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이상훈 국방장관과 메네트리 주한미군사령관이 ‘용산기지 이전에 관한 합의각서 및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합의각서에는 1996년까지 용산미군기지를 K-55오산기지로, 기타 지원부대는 K-6기지로 이전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기지이전사업은 김영삼 정부 출범 후 막대한 비용문제에 걸려 전면 유보되었다. 그렇게 다시 몇 년, 미군기지이전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0년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이 발표되면서다.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은 미국의 주적이 과거의 소련(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2001년 한미국방당국은 고위정책회의를 열어 용산기지 이전을 재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다음 해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도 조속한 용산기지 이전을 약속하였다. 2001년 9․11테러를 겪으면서 미국 내 강경파들은 ‘예방전쟁’ 개념을 도입하였다. 예방전쟁이란 세계 어느 곳에서든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낌새만 보여도 예방적 차원에서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방어개념으로 배치되었던 미군을 분쟁지역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 기동군 체제로 재편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 평택지역은 평택시 신장동 일대에 주둔한 K-55기지 비행장과 평택항을 통하여 병력이동과 물자수송이 용이할 뿐 아니라,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용산미군기지와 미2사단을 이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혔다. 미군기지 평택이전사업은 군사작전처럼 일사불란하게 추진되었다. 주민들의 의견이나 생존권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것은 미군기지이전사업이 한반도의 평화와 거리가 먼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3. 대추리의 촛불, 평화를 위해 타오르다
미군기지이전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2004년부터다. 정부는 이전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주민들과의 대화나 주민들이 참여한 제대로 된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보상과 이주를 서둘렀다. 이전계획에 포함된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 2리, 서탄면 황구지리와 금각 2리 주민들은 분노했다. 경작지의 대부분이 도두리들에 있었던 함정리, 신대리, 본정 2리 주민들의 분노와 상실감도 컸다. 정부는 주민들을 갖은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어르고 달랬다. 일부 주민들은 정부의 협박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보상금을 받아들고 고향을 떠났다. 떠나는 사람들과 남아 있는 주민들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고향에서 쫓겨나는 것도 모자라 평생을 함께해 온 이웃들과 반목하며 떠나게 된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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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의 할머니
_ '6억과 10억' 또는 그보다 많은 액수의 돈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 그런 기준으로 살곳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났지만 1952년 겨울 옛 고향마을에서 쫓겨났던 경험이 있었던 대추리 주민들과 도두 2리 주민 일부는 이주를 거부하였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주민들의 평균 보상금이 6억에서 20억이고 이주를 거부하는 것은 보상금을 더 타내기 위한 술책이라고 여론을 호도하였지만 그것은 도시인들의 셈법이었을 뿐이었다. 주민들에게 고향과 집과 산과 들판은 자본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도시민의 그것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주민들에게 고향산천에서 여생을 살다가 조상들이 묻힌 고향 뒷산에 묻히는 것은 가장 소박한 꿈이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였다.

2004년 9월 1일 본정2리 농협 앞에서 촛불을 켜졌다. 촛불은 본정 2리 마을회관 앞 비닐하우스를 거쳐 대추초등학교, 평화예술공원, 농협창고를 거치면서도 700일 넘게 꺼질 줄 몰랐다. 자신들의 조국과 지역주민들에게까지 외면 받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도두 1리 출신의 가수 정태춘과 시인 박후기였다. 정태춘은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미군기지이전반대 문화예술인연대’를 결성하였다. 문예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백 명의 문화 예술인들이 결집한 ‘들 사람들’이라는 거대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들사람들은 황새울 들판에서 문화행사와 퍼포먼스를 열었고, 대추리, 도두리 마을의 빈 벽에 벽시와 벽화 작업을 하였으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콘서트를 열어 여론을 환기시켰다. 대추리 문제가 여론의 관심을 끌면서 문정현 신부가 이끄는 ‘평화바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대추리에 들어왔고, 서울의 향린교회를 비롯하여 종교단체들도 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에 동참하였다. ‘대추리 지킴이’, ‘도두리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에 기거하며 반대투쟁에 동참했던 다수의 청년, 학생, 시민단체들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흡사 파시스트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던 전 세계 지식인과 노동자들과도 같았다.

4. 김정희의 『대추리 아이들』과 대추리의 평화
근현대사의 여러 사건에 주목하며 소년소설을 써온 소설가 김정희는 대추리, 도두리의 지킴이였다. 그는 촛불집회와 각종 문예행사에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나중에는 도두 2리와 대추리에 정착하여 주민들의 아픔을 몸으로 채득하였다. 주민들은 그를 친딸, 친누이로 여겼고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나누었다. 2009년 김정희는 그와 같은 경험을 살려 『대추리 아이들』이라는 소년소설을 출판하였다. 이전에도 시인 박후기와 서수찬, 류외향, 손세실리아와 소설가 이인휘, 강기희 등이 시와 소설, 산문으로 대추리의 현실을 표현한 적이 있었지만 김정희만큼 주민들의 정서를 정확히 읽고 쓴 작품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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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마을'을 그리는 대추리 아이들

_ '평화'는 '화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수준의 군비를 지출하는 '미국'이 과연 평화롭던가?

2009년 8월 현재 대추리 주민들은 이웃마을 송화리의 포유빌라에 집단 거주하고 있다. 근처 노와리에는 ‘평화마을 대추리’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평화마을에는 주민들이 더 이상 쫓겨날 위험 없이 안식을 취할 주택들과 평화박물관, 세상과 소통할 공연장, 쉼터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달쯤에는 대추리 투쟁을 정리한 백서도 발간된다. 새로 조성될 마을에는 노와리가 아닌 대추리라는 마을이름이 그대로 사용될 예정이다. 김지태 이장의 뒤를 이어 이장을 맡고 있는 신종원 씨는 평택농민회 회장까지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추리의 평화가 지역사회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로 발전하고 있어 흐뭇한 마음이다.

수원시민신문 소설가 김정희 인터뷰 "『대추리 아이들』을 아시나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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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5 09:59 2009/08/0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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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역설 _김정희의 『대추리 아이들』

    Tracked from 길 Old Man and the Land 2009/08/05 17:23  삭제

    몇개월 전 이곳에도 소개했던 『대추리 아이들』을 기억하시나요- 관련된 글이 눈에 띄어 살짝 퍼왔습니다. 휴가철이잖아요- 어딘가 멀리, 오래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집에서 약간의 게으름과 함께 영화 한 편, 책 한권으로 뒹굴뒹굴- 뭐 이런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 출처 _그린비출판사 블로그 ***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2. Subject: 공포로 만들어진 평화 :「NARUTO - 나루토」 47권을 중심으로

    Tracked from 세상을 보는 검은 눈, Skyjet 2009/10/12 02:27  삭제

    PROJECT 나루토 ~ 말은 프로젝트인데 실상은, 「나루토」 기사를 썼다가 언럭키즈 님의 지적으로 상당히 다뤄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 리뷰/평론/소품 등의 형식으로 작품 전체를 분석하는, 그냥 글 모음집입니다 ~ ▶ 편견을 떨치고 제 모습을 보라 - 2009년 10월 7일 (기사는 10월 5일 발행) ▶ 전쟁 비즈니스 : 「NARUTO - 나루토 -」- 2009년 10월 8일 각종 매체에서 평화란 인류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상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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