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창하는 자기의식이라는 문제,
그리고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걸까?’


염창근 (평화바닥)

말과 글과 책, 팽창하는 자기의식의 발로와 절제

언젠가 글을 쓸 때면 늘 팽창되어 버린 자기의식을 느꼈다. 다 쓴 내 글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게 내가 쓴 글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글을 쓸 때마다 어김없이 부풀어 오르는 자기의식은 어느새 나에게서 벗어나 내 머리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봤고, 세계마저 관조했다.

그 시기에 글이란 나의 삶이나 생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의식이 억지로 짜낸 결과물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전지(全知)함이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지함이 강박관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좀더 엄격히 말하자면, 전지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이다. 전지함은 분명 인간에게 가능의 영역이 아님에도 한없이 부족했던 내 지식(앎)이 너무 부끄러워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지식으로라도 부족분을 채워 넣어야 했다. 그런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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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마라(Not In Our Name)
_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들 모임이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로운 내일(Peaceful Tomorrows)' 캠페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나에게 이라크와 중동이라는 곳은 갑자기 다가왔다. 2002년 겨울의 초입,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에 전쟁 선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이라크나 중동에 대해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생긴 후, 곧 전쟁이 날 것이라는 이라크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정말 우연하게도 신문에 실린 사진 한 장이 시선을 끌고 말았다. 미국의 9.11테러 유가족 모임이 이라크 현지에서 ‘우리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마라’고 조용히 외치는 시위 사진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미국의 모 단체가 이라크 현지에서 이라크전쟁 반대활동에 함께하자고 전 세계에 뿌린 메일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았다. 그 메일은 나를 온통 뒤흔들었다.

그때부터 이라크와 중동은 최우선 관심사가 되었다. 지금도 가끔은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서조차 왜 중동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하지만, 스스로 돌아봐도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밤낮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 나의 눈과 귀는 온전히 그곳으로 향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심을 굳힌 이후부터는 이라크와 관련된 뉴스와 글과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신문을 보아도 다른 기사에는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언제나 국제면을 먼저 펼쳤다.

출국 허가는 나지 않았다. 군복무 미필자의 출국 허용 나이 제한에 걸렸다. 잠깐 좌절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전쟁을 실제로 마주할 이라크 사람들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던, 결심했던 그 순간의 마음이 여전히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국내에서 이라크 반전활동을 했고 이라크에 가려는 사람들을 보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라크에 가지 않았는데도 이라크에 대해 잘 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강연과 인터뷰와 글 청탁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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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척 괴로웠다. 이라크 전쟁 반대를 더 많이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이라크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은 이렇다 하며 마음대로 규정 내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저 전해 들은 이야기를 조합할 뿐이었지만 마치 많이 아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온 줄 착각하기도 했다. 괴로운 마음을 지닌 채로 나는 자신을 부풀렸다. 그래야만 뭐라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은 부족함과 괴로움의 반편향으로 나아갔고 더욱 총체성, 보편성, 객관성을 획득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총체성과 보편성을 향한 이 욕망은 나를 팽창시켰고 이라크에서뿐만 아니라 평화로부터도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극복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타인)을 만나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타인의 글들을 읽는 것밖에. 그러면서 그 말들을 생각하고, 상상하고, 돌아보았다. 타인의 글(책)들을 읽어가고 있으면 부풀어진 의식이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대비평 17』에서 오카 마리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걸까?’

오카 마리는 우리의 의식과 인식이 어디로 팽창하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그것은 세계를 보기 위해 ‘누구의 시선’을 갖고 있느냐 하며 나를 질타했고 일깨웠다.

우리는 또 언론에서 보도되는 이러한 지도와 입체 모형을 통해서 사건을 이해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정찰 위성의 시각으로 동일화되어 미국 수뇌부의 시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그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이해되는 ‘사람들’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 것일까? 그것은 하나하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살아 있는 인간, 울고 웃고 분노하는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 환원되는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이라는 추상적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시각에 서는 한, 우리는 테러를 박멸하기 위해서라면 군사 공격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일부 주민의 희생 또한 불가피하다고 너무나도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게 아닐까?
(「오오, 아프가니스탄, 오오, 카불, 오오, 칸다하르……여!」『당대비평 17』, 163쪽)

각자의 삶은 매우 한정된 경험 속에 있고 시선은 협소하고 너무도 제한적이기에 우리는 더 넓게 보는 ‘어떤 시선’에 기대어 세계를 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계의 지배계급이 제공하는 시선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지배계급의 시선을 따라 세계를 보는 일은 너무도 쉽고 편하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도 공감이 잘 되기에 거의 불가항력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시선에 서는 한’ 전쟁도 폭력도 조건 없이 용인된다는 점이다. 그것도 ‘평화’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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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국가로 팽창되는 자기의식은 세계와 평화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킨다.

이 속에서는 우리의 자기의식은 국가로 팽창된다. ‘자기’에 대한 인식은 ‘국가’와 동일시된다. 국가와 일치화된 자기는 자연스럽게 배타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우리와 적을 만든다. “공습하는 자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이란 정찰 위성으로 관측된 지형도로 환원되고”, “카불도, 칸다하르도 지도상에 표시된 점, 군사 거점”이 되고, “그 땅에 사는 인간들 역시 대지로부터 분리된 추상적 존재, 작전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카 마리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향해 “무슬림의 마음은, 오오, 아프가니스탄이여, 그대들과 함께 있다”고 소리 없이 외치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아프가니스탄의 땅과 사람들에게 마치 사모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팔레스타인 여성의 시선에는 먼 타국의 사람들이 겪을 파괴의 아픔을 추상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이미 수없이 겪은 아픔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집들은 불도저로 쓸려 나가고, 일용 양식인 올리브나무들은 뿌리째 뽑히고, 검붉은 토양은 마치 도려내어진 내장처럼 파헤쳐지고, 매일매일 학살로 숨져 가는 땅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 아픔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공감은,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식량과 의약품 투하를 ‘인도적 지원’이라 부르는 자들과의 시각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카 마리의 글을 읽자마자 내 편협한 인식에 대한 부끄러움도, 팽창된 자기의식에 대한 괴로움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한 해답을 찾은 것만 같았다. 이때부터 오카 마리는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글이나 책은 번역된 것이 없었다. 뒤늦게 출간된 『기억ㆍ서사』를 마주했을 때,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장인처럼 한 자 한 자 새기듯 읽었다. 『기억ㆍ서사』 역시 또 한 번 나를 일깨워 주었다. ‘고통’의 언명이 누구의 시선으로 연결하고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절절하게 물었던 오카 마리의 통찰은, 우리가 보는 ‘대상’과의 연결 방식이 어떠한지를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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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suffer untold violence
_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이라크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남성의 ‘부풀려진 자기인식’에 대해 비판했던 여성주의자들의 지적처럼, 평화는 “총체적, 보편적, 객관적 사고방식으로는 만날 수 없”음을, “상황적, 맥락적, 현장 의존적, 발화자의 사회적 위치성에 의지하는 언어”일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리더라도, 전지적이고 총체적이고픈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국가의 모습과 지배자의 모습을 따라 자기를 팽창하고 싶더라도, 세계와 타자를 팽창된 자기의식으로 재단하려는 오만을 돌아볼 수 있을 때 평화도 가능의 시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를 위해 오카 마리가 ‘난민적 삶의 생성’을 제시했듯, 진정 가능하지도 않은 지배계급으로의 연결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버겁기는 하겠지만 땅에서 살아가는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평화도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카 마리의 글을 읽을 때 느꼈던 생생한 감동은 지금까지도 그런 희망을 품게 한다.

“우리는 그들처럼 생생한 상상력을 과연 갖고 있는 걸까? 우리는 도대체 누구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고 인간을 보며 말하고 있는 걸까? 정찰 위성의 시각일까, 아니면 폭격으로 통곡하는 바위의 아픔을 자신의 고통으로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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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서사 * 절판입니다.
10점
2009/08/12 10:44 2009/08/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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