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장애인과 한 동네에서 살기
― 그들을 향한 공정한 시선, 공정한 삶의 권리를 생각하며


엄상미 (막달레나공동체)

내가 사는 아파트에 정신 장애인이 한 명 산다. 한 이십 대 후반쯤일까, 하여간에 그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매일같이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며 한참 동안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어디 벤치 하나를 차지하고 낮잠을 자는지 하늘을 보는지, 생각에 잠기는지 혹은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하여간에 그러고 있는 시간이 많다.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중얼거리거나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내가 아이 둘을 끌고 나가 시냇가에 발 담그고 앉아 있노라면 살금살금 다가와 유독 이제 막 두 돌이 지난 작은 아이의 풍선 같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한다. 머리는 항상 빡빡 깎여져 있고, 옷은 덥건 춥건 상관없이 늘 블랙진에 가로줄 무늬가 있는 블랙스웨터.

내 보기에 그는 아마도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이른바 ‘정신병자’라고 부른다. 그밖에도 ‘또라이’라거나 ‘미친 남자’ 혹은 ‘모자란 남자’라고 부르기도 하며, 귓가에 검지 손가락을 빙빙 돌리는 것으로 지칭을 삼가는 사람도 간혹 있다. 나는 그와 이야기 나눈 적이 없다. 그는 우리 집 둘째만 좋아했지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와 눈 한 번 맞춘 적도 없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거나, 베란다 앞에서 집 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기도 한다. 우리 집 둘째가 보고 싶은 거라고 짐작하곤 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으니 나도 그냥 그를 내버려 둘 뿐이다. 내 보기에 그는 하염없이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청년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젊고 건강한 대학생에게 무지 맞았다. 어느 날 그의 얼굴을 보니, 평소와 달리 불어 터진 만두처럼 얼굴이 탱탱 부어 있었으며 그 위로는 시커먼 멍이 몇 군데나 들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가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부모로 보이는 한 중년부부가 씩씩 거리며 비쩍 마른 그 청년을 끌고서 그가 맞았던 현장을 쫓아다나며 증인들을 만나고 다녔다. 부모는 청년의 옷을 들추며 어떻게 사람을 이 지경까지 만드냐며 큰소리를 냈다. 청년은 비단 얼굴만 맞은 게 아닌 듯 온 몸에 멍 자국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는 내게 말하기 좋아하는 이웃여자가 자기가 아는 정보와 생각을 총동원해 충실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학생한테 맞았어. 아니 아니 글쎄, 그 대학생 여자 친구를 희롱했대나 봐. 내가 봤는데, 무서워서 막 도망가는데도 그 덩치도 큰 놈이 쫓아다니며 패더라고. (나: 안 말렸어?) 아니, 아주 화가 많이 난 것 같더라고. (나: 딴 사람들은 가만있었어?) 말렸지. 근데 어떻게 막무가낸지, 말려도 소용도 없어. 경찰 부르래. 지가 얘 죽이고 들어가면 된다고. 쟤가 꼼짝없이 다 맞았지. (나: 쟤가 무슨 성희롱을 해? 저렇게 얌전한데.) 아휴, 모르는 소리 마. 쟤가 이렇게[실눈을 뜨며] 뜨고 여자애들만 본다니까. 내가 얼마나 걱정되는지 알아? 나도 딸 가진 사람인데 왜 걱정이 안 되겠어. 쟤네는 부모님이랑 산다는데 왜 그냥 이렇게 두는지 몰라. 병원으로 보내든가, 어디 시설에 보내야지. 내가 쟤 누구네 집 베란다 화단에서 오줌 싸는 것도 봤다니깐! 어떻게 한 동네서 살아. (나: 그래도 가족이랑 같이 살면 좋잖아.) 어머 어머, 웬일이니. 이웃 사람 생각도 해야지! (나: --;)

씁쓸했다. 그가 정말 성희롱을 했는지 보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때린 남자의 여자 친구를 보고 히죽 웃거나 따라와서 뭐라고 중얼거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가끔 그의 가족들을 본 적이 있다. 마트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고르거나 장이 서는 날 순대를 사 먹기도 했다. 가끔 길거리에서 그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분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헤어지는 것도 종종 보았다. 그는 평소의 무표정과는 달리 가족들과 있을 때는 고개를 들고 눈을 맞추며 웃기도 했다. 사건 이후로 청년은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잊을만할 때 쯤 다시 나타나 옛 모습 그대로 동네를 배회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리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폭행한 대학생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동네 아줌마 통신도 그 소식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의 탈출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상해 사건이 났을 때, 피의자가 정신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며 앞다투어 보도하곤 한다. 과연 정신과 환자는 위험한가?

막달레나의집은 오랜 동안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고 어떤 규정도 규율도 없이 운영되던  시절을 살았다. ‘사회복귀’니 ‘실적’이니 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막달레나의집에는 일반 시설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혹은 수용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와 식구를 이루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 중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들도 있었다.

그때 같이 살던 태임 언니는 밥이 되든가 말든가 수시로 밥통의 코드를 뽑고 다녔고, 국이 끓든가 말든가 가스불은 보는 족족 끄고 다녔다. 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려도 초록빛 전원이 켜져 있는 보일러는 꼭 끄고야 말았다. 생 쌀밥을 먹고 냉방에서 자는 것은 건강에 안 좋으니, 이것을 위험한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기는 하다. 앞머리를 뽑는 습관이 있던 미화는 달덩이처럼 훤해진 이마에 늘 붉은 립스틱을 마르고 한밤중에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곤 했으니, 심신이 미약한 누군가에게는 그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한국 아빠와 엄마에게서 태어나 엄연히 한국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데도 수시로 ‘다’국적을 내세우며 한국인을 천민 대하듯 하면서 미국과 중국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던 사람, 방송국에서 자기 아이를 납치해 프로그램에 내보내고 있다고 믿는 통에 수시로 방송사 관계자를 곤혹스럽게 했던 사람. 그리고 처음으로 정신분열적 증상에 휩싸여 충격과 괴로움에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방황했을 때 ‘막달레나 사람들이 지켜줄게, 지켜줄게’라는 환청의 지시를 고분고분 받아들여 무사히 돌아왔던 사람… 이들이 정녕 위험한가?

물론 정신 장애인이 우리집 베란다 화단에 오줌을 싸면 무척이나 싫을 것이지만, 노상방뇨 하는 사람이 어디 정신 장애인 뿐이랴(…!). 중증일 경우 환자는 속수무책으로 자기 눈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믿는 것에 지배당해 심각한 행동을 할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그것은 꾸준히 약을 먹는 등 지속적인 치료가 간과된 경우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행동들은 정신장애인만 하는 이상행동인가? 그렇지 않다. 경찰관이나 고위관료가 범죄를 지르는 일도 허다하다. 일련의 편견적 잣대로 보자면 정신 장애인들의 ‘범죄’가 두려움을 안겨 주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 ‘정상인’들의 범죄가 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 아니던가. 중독성 장애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경우는 타인을 해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각의 시선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분명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치료적 개입과 사회적 안정 장치를 전제로 한다면 위험성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정신질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은 그 증세에 따라 개방과 준 개방, 폐쇄 등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병원입원 치료가 끝난 사람들은 관련 정신장애인 시설에 입소해 생활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배제당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것이 설령 개방이라 해도 대부분의 정신 장애인들은 스스로도 폐쇄된 삶을 살아간다. 한 번의 짧은 정신병원 입원경력 조차도 뼛속 깊은 콤플렉스가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건만, 도무지 완치되기 어려운 정신질환으로 온 생을 다 병원이나 시설에서 지내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심각한 ‘배제’의 경험으로 그들의 삶을 지배할까. 한 번쯤 그 심정을 느껴 볼 수 있어야 한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약을 보는 앞에서 털어 넣은 뒤 입을 벌려 혓속까지 확인을 받으며(약을 거부하는 환자의 경우), 큼지막하게 날짜가 쓰여 있는 달력에 촘촘히 붙어 있는 약을 하루하루 떼어먹으며 얼마나 간절히 평범한 삶을 그리워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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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신 장애인을 사회에서 '삭제'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폐쇄병동』에 등장하는 한 정신과 의사는 정신장애로 병원에 입원해 삼십 년을 살아온 한 남자의 퇴원결심을 흔쾌히 허락한다. 이 남자의 퇴원을 곤혹스러워하며 도대체 병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왜 퇴원을 허락하는가 항의하는 그의 가족들(입원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면회 오지 않았던)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할 수도 있다, 수술을 하고 아무리 치료를 해도 절단한 다리는 돌아오지 않으니 보행에 문제가 있는 그를 시설에 보내야 하는가? 그것은 나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보조기구를 이용해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어딘가 불완전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병이 나은 상태라고 할 수도 있다고.

결국 남자는 삼십 년 만에 스스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하고 퇴원을 한다. 그에게는 그 긴 세월을 함께 병원에서 보내며 인생을 나눈 동료가 있었다. 동료는 야쿠자에게 성폭행당한 뒤 삶을 포기하려는 어린 환자를 살리고자 그 야쿠자를 살해하고 법정에 선다. 퇴원한 남자는 동료의 증언을 위해 법정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동료에게 전할 말이 있으면 하도록 허락하겠다는 판사의 배려에 “나 퇴원했어!”라고 울며 부르짖는다. 순간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내 마음속 저 깊은 곳, 얼마 전 울며불며 긴급호송차에 매달려 또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한 여자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까닭이다.

살아갈 권리, 삶의 형태를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왜 눈이 보이지 않는지, 왜 다리가 없는지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아직도 수많은 편견의 그물이 쳐져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와 공동체의 배려는 이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신 장애’라는 타이틀로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더 다양한 치유의 현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적일 것’이라는 규정에서 출발하기를 접어야 한다. 이들 삶의 권리를 인정하며 동네사람이 되는 것을 공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정신 장애인들 역시 폐쇄된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름의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링크
2009/08/19 10:52 2009/08/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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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날 2009/08/19 12:22

    잘 읽었습니다. 가슴을 치는 글입니다. 나 또한 편견의 시각이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 그린비 2009/08/19 13:14

      맨날님 안녕하세요. 지금 있는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글이죠.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우리 각자가 늘 다시 태어나는 느낌입니다.

  2. 들풀처럼 2009/08/19 13:16

    편견없이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는 일,
    참 만만치 않습니다.

    저 역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구벅.

    • 그린비 2009/08/19 14:21

      들풀처럼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죠. 우리 삶에서 편견은 가깝고, 열린 태도는 멀리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우리를 넘어서야 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