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남은 네 달, 무슨 꿈이 우리를 밀어 갈 것인가?

이상재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정권이 바뀐 뒤, 민주주의 후퇴라는 거대 담론이 등장해 우리들의 현안이었던 고용허가제와 출입국관리법 개악, 최저임금 삭감 등의 문제를 우리들에게서부터 뒷자리에 머물게 했다. 올 상반기를 돌아보면 노무현과 김대중이라는 두 전직 대통령 이름만이 큼지막하게 떠오를 뿐이다.(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평가임을 밝힌다. 그리고 고용허가제는 정부 안, 시민사회단체가 만든 안이 섞인 상임위 합의 안이 통과를 기다리고 있고, 출입국관리법은 우리 안도, 법무부 안도 아직 제출이 안 된 상태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문제가 현장에서부터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 현장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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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 집행부가 표적 단속된 후 결성된 농성단의 활동 사진
_ 정부의 잇따른 표적 단속으로 인하여 이주노동자 활동가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지난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5주년을 전후해 고용허가제 문제와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삭감 문제와 관련된 사례를 찾는 언론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리로 저리로 연결을 하는데 사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최저임금이 삭감되어 사업장을 이동하려는 사람들은 더욱 없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가 회원 기업들에게 최저임금에 숙박비를 포함해 이주노동자와의 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수 있다는, 그 방법까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공문으로 인해 계약이 변경된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보다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경기가 조금씩 풀리면서 이주노동자 임금에 압박받는 것보다 인력난이 더 심각한 이유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다시 말해 제조업에서의 고용허가제는 이미 사업주들의 이익을 충분히 반영하고, 산업연수제도에 비해 세련되게 운영되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인권활동가들에게도 익숙해진 제도가 된 것이다. 용산에서, 평택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국민들에게도 국민의 권리가 무시된 채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회를 보면서 스스로 위축된 부분도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우리들의 최저임금 삭감 대응이었던 듯하다. 대구지역에서 최저임금 삭감에 항의에 중소기업협동조합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최저임금 삭감 반대 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에는 군불이 약했다. 대구는 노무현보다 김대중 보다, 용산보다, 평택보다 멀었던 거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익숙함과 민주주의 후퇴라는 역사적 무게에 대한 부담, 그리고 이주노동자 강제 단속 추방에 대한 무력감, 무엇보다 우리를 옥죄는 단체의 내실강화라는 화두를 넘어서 함께 공유하고 키워나갈 우리들의 꿈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하긴 그런 게 있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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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고용허가제 시행 5년 기자회견
_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측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 사업장 이동제한(3회 초과 시 미등록)으로 인해 상습 임금 체불이나, 폭력이 있어도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이동하기는 어렵다. 정부에게 고용허가제는 싼값에 장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는 성공적인 제도이다.

어느새 한해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9월이다. 이후 우리들의 대체적인 일정은 문화 사업으로 돌입하곤 했다. 지역 다문화축제와 심포지엄, 포럼, 연말 행사를 치르다 보면 어느새 또 한해가 갈 것이다. 그렇게 또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을 버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왜냐? 아직 시작에 불과한 한국의 이주운동은 앞으로가 몇십 년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운하다. 이주운동을 고민하는 단체로서, 그리고 그 단체의 활동가로서 언젠가는 지금의 한국인 인권활동가들이 서 있는 자리를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에게 내어 줘야 한다는 당위를 항상 생각하게 된다. 이주노동자 운동이라는 소수자운동이 발전하고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운동의 당위를 짊어지고 있는 활동가들이라면 이 시기에 해야 할 ‘공동의 음모’가 분명히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인 의견임을 분명히 하고 뜬금없으면서도 지난 몇 년의 활동 기간 동안 마주한 현실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 보고 싶다.

‘불법 사람은 없다’와 ‘숙련노동자’

장기체류를 통한 이주운동 역량의 축적이야말로 한국인 활동가로서 해야 할 당위이다. 이것을 가능케 할 키워드는 두 가지다. 국가주권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강제추방을 뛰어 넘지 못하고서는 이주노동의 미래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을 넘어설 마땅한 대안이 없다. 활동가들끼리 할 수 있는 원론적 이야기는 있지만(물론 이주노동자들이 일궈내는 경제적 효과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누려야 할 권리를 나타내는 인권규약 등이 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치는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일정 정도 뚫어줄 (활동가들 입으로 먼저 말하기 머쓱한) ‘개량적인’ 단어가 ‘숙련노동자’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업주들의 볼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숙련노동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이라는 것이 현실성이 없어서(합법적으로 5년 이상 체류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관련 업무 자격증에 고소득을 요구한다. 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최장 3년 간 체류할 수 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허공에 떠 있는 정부의 숙련노동자 정책에 대해 활동가들이 소리를 높이지만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누가 이야기할 것인가? 사업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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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강제추방
_ "국가주권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는 강제추방을 뛰어 넘지 못하고서는 이주노동의 미래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을 넘어설 마땅한 대안이 없다.

늘 사업주에게 월급 언제 주냐고 전화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문제고, 의지도 안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해야 한다. 그들이, 그들의 하소연과 경제논리가 국민들을, 정부를 설득시킬 단초다. 신자유주의하에서 급속하게 취약해지는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사업주로부터 획득할 수는 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그들을 통해서라도 체류권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주노동자 리더들이 표적 단속되거나 시도 때도 없이 강제추방되는 장면을 목격한 이들이라면 누구든 동의할 게 분명하다.

숙련노동자를 사이에 두고 엮어지는 광범위한 경제적·인간적 연대.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 것인가? 아니 어떻게 첫 단추를 끼울 것인가? 천상 현장 활동가들의 몫이다. 노동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오히려 본인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업주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하청업체들의 상황이 어떤지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들의 하소연이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한국의 제도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상담 속에서 늘 인식한다면 단속에 대한 벌금과 고용허가제 취소라는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필요한 사업주들과 충분히 대화를, 낮지만 연대의식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제추방 반대라는 대정부 투쟁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숙련노동자라는 호소를 할 사람이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 어쩌면 그들이 고용허가제 너머의, 강제단속추방이라는 국가주권 너머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줄 단초가 되지 않을까.

최근의 사회 모습에서 너무 위축된 나의,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나부터 함께 꿀 꿈이 절실한 날들이다.


2009/09/02 10:32 2009/09/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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