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직장인의 슬럼프 극복기
― 장자의 '쓸모'와 '대붕'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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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作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_ 절벽의 가장자리는 저 절벽 아래의 땅과 자신이 서 있는 절벽 위의 공간 사이의 차이, 감당하기 힘든 고도의 차이가 맞물려 있는 지점이다. 차이와 낯섦에 머물기 위해서는 강력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는 아찔한 현기증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

(아실랑가 모르겠습니다만,) 저 요즘 슬럼프였습니다. 요즘이라기엔 너무 오래됐달까요. 두 세달 동안이나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오기는커녕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나게 되었죠.

惠子謂莊子曰, 子言无用. 莊子曰, 知无用, 而始可與言用矣. 夫地非不廣且大也.
혜자위장자왈  자언무용 장자왈  지무용  이시가여언용의 부지비불광차대야
人之所用容足耳. 然則厠足而墊之, 致黃泉, 人尙有用乎?
인지소용용족이  연즉측족이점지  치황천 인상유용호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쓸모가 없네.” 그러자 장자가 이야기했다. “‘쓸모없음’(無用)을 알아야만 함께 ‘쓸모있음’(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법이네. 땅은 정말로 넓고 큰 것이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사람이 쓸모를 느끼는 것은 단지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뿐이라네. 그렇다면 발이 닿는 부분만을 남겨두고 그 주변을 황천, 저 깊은 곳까지 파서 없앤다면, 그래도 이 발이 닿고 있는 부분이 쓸모가 있겠는가?” -「외물」

슬럼프 기간동안 여러 망상들이 제 안을 헤집어 놓고 나갔습니다. 내 일이 회사에서 쓸모가 있는가, 지금 내 일이 나에게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 내 존재가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 내 변화가 쓸모가 있는가 없는가. 장자는 말합니다. “지금 당장 사람이 쓸모를 느끼는 것은 단지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부분뿐”이라고 말이죠. 그 부분만 남겨두고 다 파서 없앤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합니다. 현기증이 절로 나죠. 눈을 질끈 감고서 “이 위험한 장소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본문 47쪽)는 생각만 떠올릴 뿐입니다. 어쩌면 진정 쓸모없는 것은 이런 망상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쓸모없다고 단정지어버리고서 제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으니, 슬럼프 극복은 먼 나라 이야기였겠죠?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바로 「소요유」의 ‘대붕(大鵬) 이야기’인데요.

계속된 실패와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날고자 하는 의지를 관철시킬 때 비로소 어느 순간 대붕은 구만리 높이로 우뚝 올라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런 경우에만 대붕은 자신을 떠받치는 바람을 타고,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본문 35쪽)

‘대붕 이야기’의 핵심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대붕의 거대함이나 초월적 경지가 아니라 메추라기와 대붕 사이의 차이에 있다고 합니다. 대붕이 9만리 높이에 오르기 위해 힘겨운 날개짓을 한 것은 속세를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속세를 ‘바라보고’, 결국 속세로 내려와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구요. 경계를 벗어나 차이를 긍정하기 시작하면 풍부하고 다채로운 삶이 우리에게 펼쳐진다는 사실을 9만리 높이에서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메추라기가 대붕을 비웃는다?' 에피소드 보러가기)

도망치듯 회피해 버린다면 일상적 삶에 다시 매몰되고 말 것입니다. 한낱 메추라기에 머무르고 말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현실과 똑바로 마주서기. 딛고 있는 쓸모의 경계를 벗어나 대붕처럼 날아오르기. 그런데, 대붕은 혼자 날아오른 것이 아니라 바람을 의존해서 날았답니다. 혼자 쓸모 운운하며 삽질하지 말고, 지금 있는 곳에 의존하며 올라가야겠죠? 저, 갑자기 슬럼프 다 극복됐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사실 전혀 없습니다. 다만,

나는 내가 딛고 있는 땅에 여전히 서 있고, 내가 밟고 있지 않는 땅들도 여전히 내 앞과 옆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제 무엇인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 보인다. 나는 내가 서 있다는 것 자체를 하나의 축복으로 혹은 경이로운 행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 46쪽)

- 마케팅팀 서현아
2009/09/07 11:43 2009/09/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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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놈리 2009/09/07 17:58

    엇! 저도 요새 마침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읽으려고 챙겨놨는데.. 이 글을 읽으니 오늘 저녁에 꼭 30쪽을 읽고 자리라! 결심하게 되네요 감사*^^*

    • 그린비 2009/09/07 18:27

      앗! 반갑습니다, 놈리님~^-^*
      리라이팅 장자, 꼭 읽어 보시어요. 한 구절 한 구절 버릴 것이 없답니다 :)

  2. 길리안 2009/09/07 21:08

    슬럼프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 아니겠지요? ^^; 모 책을 보니까 생명의 정의를 "동적인 평형"으로 정의하더군요...동적인 상태가 깨지는 것 즉 순환이 안되는 것도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고 평형이 깨진 비평형 상태도 역시 생명의 이치에 맞지 않는...슬럼프, 권태로움은 전자에 가까운 상태 아닐런지요...

    • 그린비 2009/09/08 09:51

      길리안님, 안녕하세요.
      어서 동적인 상태를 회복해야 겠습니다.ㅎ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

  3. 놈리 2009/09/07 23:28

    앗! 지금 방금 57쪽까지 읽었는데요!!!!!!!!!!!!!!!!!!!!! 정말 거의 모두 형광칠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장자 선생님.
    대붕이 타고 비상하실 현아님 화이팅. 나는 모자 팔러 월나라로 가는 송나라 상인 해볼게요ㅋㅋ

    • 그린비 2009/09/08 09:55

      엇! 고 에피소드도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놈리님께서 이렇게 읽고 친히 얘기해 주시니, 바람타고 비상하는 대붕의 기분이 이럴까 싶습니다. (응?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