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즈와 콘셉트, 텍스트와 책기계

※기획에서부터 집필, 편집, 제작, 유통, 프로모션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전과정을 니즈와 콘셉트, 텍스트와 책기계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니즈, 원츠, 디멘드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상품이 만들어져 유통·소비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니즈(needs)를 바탕으로 원츠(wants)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다시 디멘드(demand)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니즈란 소비자의 ‘본원적 욕구’ 또는 소비자가 ‘항상적으로 느끼는 불만이나 결핍’을 말한다. 사람들의 욕구나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 수단인 제품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원츠’다. 목이 마르면 사람들에게 ‘뭔가 마시고 싶다’는 ‘본원적 욕구’(니즈)와 함께 ‘삼다수’ ‘콜라’ ‘사이다’ 등의 ‘구체적 욕구’(원츠)가 생긴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디멘드(수요)는 원츠를 살 수 있는 능력 즉 구매력을 의미하며, 흔히 화폐량으로 표시된다. 디멘드는 원츠가 이룰 수 있는 ‘시장의 크기’로, 흔히 ‘3조원 출판시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다. 구체적 욕구가 있고 이를 충족시킬 구매력이 생기면, 사람들은 시장에 나와 있는 여러 제품 중에서 가장 높은 가치와 만족을 제공해 주는 제품을 구입한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상품은 이 메커니즘에 따라 제조·유통·소비된다. 책도 상품이라고 할 때, 이 사이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니즈-원츠-디멘드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책을 기획하고 만들어야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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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作 <스토클레 저택의 벽화>
_ '기다림(기대)-생명의 나무-충만(성취)'를 그린 클림트의 벽화에서 '니즈-원츠-디멘드'를 찾아볼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외연보다 내재된 것들을 파악하고 끌어낼 수 있는 본원적인 힘.

본원적 욕구인 니즈는 마인드 차원의 문제로, 구체적 욕구인 원츠는 제조기술 차원의 문제로, 디멘드는 유통 차원의 문제로 치환 가능하다. 환경(문화적 환경, 기술적 환경, 정치적 환경 등)의 변화는 디멘드에 영향을 미쳐 제품(원츠)에 대한 수요를 변화시킨다. MP3라는 기술적 환경의 변화가 시장에서 CD플레이어를 밀어낸 게 그 예다. 그러나 기술적 환경의 변화로 CD플레이어는 사라져도, ‘녹음’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는 사라지지 않는다.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면 원츠는 선택이다. 니즈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원츠의 세계는 넓어진다. 따라서 환경의 변화가 심할수록 원츠 차원의 분석이 아니라 니즈 차원의 분석을 해야만 한다. 흔히 마케팅을 기술이 아니라 마인드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독자가 원하는 책 vs 저자가 쓰고 싶은 책
니즈의 중요성에 대해선 이제 출판계가 웬만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늘 이론을 압도하는 법. 니즈만 하더라도 ‘생리적 욕구’ ‘개인적 욕구’ ‘사회적 욕구’ 등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여기에다 드러난 욕구, 잠재된 욕구 등의 여러 층위까지 가세하게 되면,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니즈의 중요성이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나타나는 오해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편에선 독자를 대상화․고정화시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독자님!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뜻을 따르겠나이다” 하는 ‘독자 추수주의’적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편집자나 마케터는 독자의 니즈를 ‘고정된 단일한 어떤 것’으로 포착하고 싶어하지만, 독자는 늘 움직인다. 출판에서는 수요자(독자) 니즈와 공급자(저자, 출판사) 니즈가 포개져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출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그 순간부터 이미 공급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기 때문이다. 남의 저작을 읽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가. 아니 굳이 글로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독자 스스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총동원해 새로운 책과의 조우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자기 마음속에 써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아니면 저것’ 하는 식의 정형화된 니즈 파악은 위험하다.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것 속에서 저것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안(in)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beyond)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니즈는 수동적인 동시에 능동적인 것이며, 개인적 조건의 산물인 동시에 사회경제적 조건의 산물이다. 저자나 기획자는 때론 독자지향적이어야 하지만, 또 때론 독자를 앞에서 끌고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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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초판
따라서 출판의 니즈를 파악할 때는 독자의 니즈(독자는 어떤 책을 원할까)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나 편집자의 니즈(저자 혹은 편집자인 나는 어떤 책을 내고 싶은가)를 묻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독자 니즈’에만 집중하고 ‘저자 니즈’에 등을 돌릴 경우 예정된 실패를 피할 수 없다. 좋은 기획, 좋은 책은 양쪽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탄생한다. 저자 혹은 편집자가 내고 싶은 책이란 뭘까? 그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그런 절박한 이야기일 것이다. 절박하다는 것은 좁고 깊다는 것이며, 좁고 깊다는 것은 전문성과 독창성을 의미한다. 넓을수록 옅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문제와 이에 대한 해결책”, 이런 식의 주제 설정은 너무 넓어서 하나마나한 얘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맡고 있는 3학년 1반 아무개의 문제와 이에 대한 문제해결” 정도는 되어야 깊이가 생기고 차별화된다. 전문성과 독창성이 확보되면 해당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상대로 한 시장성이 확보된다(출간의 판단기준으로 ‘시장성’을 묻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은데, 어떤 타이틀의 시장성을 판단한다는 건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시장성을 묻기 전에 전문성과 독창성을 물어야 한다).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이 설문조사다. 설문조사는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손쉬운 방법 같지만, 질문이 뻔하면 나오는 답도 뻔하기 때문에 자칫 하나마나한 조사가 되기 쉽다. “좋은 대학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뻔한 질문에는 기껏해야 “5시간만 자고 열심히 공부한다”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한다”는 등의 뻔한 대답밖엔 안 나온다. 좋은 대답을 얻으려면 “좋은 대학은 뭐며, 왜 그렇게 해야 하지” 하고, 통념에 찌든 질문 자체를 다시 묻는 질문을 해야 한다. 문제설정을 새롭게 하면 드러난 니즈 말고 감춰진 니즈가 드러난다. 세상은 넓고 물을 것은 많다. 그린비가 펴낸 책들 중에는 이런 감춰진 니즈에 주목한,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꽤 된다(우리 출판사의 출간 방침 중의 하나가 질문하는 힘이 센 책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독창성과 질문하는 힘은 나란히 간다). 겉으로 드러난 소비자 니즈에 초점을 맞춘 책이 아니라 공급자 니즈 즉 저자가 나누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이야기에 철저히 집중한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대개 스테디셀러가 된다. 생산과 소비가 스피디하게 이뤄지는 자본주의 상품경제 속에서 어떤 책이 시간을 견뎌낸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같은 경우, 출간 당시 그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출판업자들이 독자의 이름으로 저자(니체)를 괴롭힌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니체는 결국 책의 제4부를 자비로, 고작 40부만 출판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을 알아줄 친구들을 기다렸다. “최소한 300년을 기다리지 못한다면 내 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니체 말대로 초판이 나온 지 125년이 지난 지금, <차라투스트라>를 찾는 독자들은 전세계적으로 계속 늘어가고 있다. 오늘날 니체처럼 자신의 독자를 선택할 배짱을 가진 저자, 출판사가 몇이나 될까.

출판의 시작과 끝, 콘셉트
절실함이 저자와 편집자의 등을 떠밀어 책을 펴내는 길로 나서게 했다면(즉 니즈가 확실하다면), 이제 필요한 건 책(원츠) 만드는 ‘기술’이다. 한 권의 책을 쓰거나 편집하는 데 요구되는 기술은 콘셉트잡기, 제목잡기, 목차짜기다. 이들 기술은 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콘셉트 하나로 모아진다. ‘일이관지’(一以貫之)란 말이 있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말이다. 이 ‘일이관지’가 바로 콘셉트다. 책의 기획에서부터 집필, 편집, 제작, 가격, 유통, 프로모션을 관통하며 지탱해 주는 흔들리지 않는 ‘무엇’(니즈에 기초한 책의 핵심내용과 차별적 특징)이다. 주제, 독자대상층, 책의 서술과 전개방식, 디자인, 심지어 책 출간 후의 보도자료나 광고․홍보 문구조차도 하나의 콘셉트 아래 체계적으로 배치된다. 한 권의 책은 보통 200자 원고지로 700~800매 이상의 분량이 된다. 이것을 다시 50매, 10매, 1매, 한 단락, 이런 식으로 줄여나갈 때 최후로 남는 단 한 줄. 이게 바로 콘셉트다. 그런 점에서 콘셉트는 제목이며 한 줄의 광고카피다. 그런 만큼 콘셉트는 독자의 감성과 언어로 기술되어야만 한다. 단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콘셉트가 안 잡혔거나 책으로 출간하기엔 불충분하다는 걸 의미한다. 콘셉트가 잘 잡히면 절반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책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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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달인시리즈>

우리 출판사가 펴낸 <달인시리즈>의 핵심 콘셉트는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이다. 인문학으로 인생역전을 하다니! 인문학이 무슨 로또도 아니고. 우리가 인생역전이란 표현을 핵심콘셉트로 삼은 건 “한번뿐인 인생, 잘 살아보자”는 뜻에서 잡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잘 살다’와 ‘잘살다’를 혼동하면서 살고 있다. 아니, ‘잘살아야’ ‘잘 사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잘살다’는 “부자로 부유하게 산다”는 뜻이고, ‘잘’이라는 부사가 ‘살다’라는 동사를 수식하는 ‘잘 살다’는, ‘좋게, 훌륭하게, 만족스럽게, 멋지게, 아름답게 사는 것’을 뜻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인문학이 ‘잘’ 사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앞에서 ‘잘’의 뜻을 설명하면서 열거한 ‘좋다, 훌륭하다, 만족스럽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말은 하나같이 가치와 관련된 것들이고, 이것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 사는’ 데 아이와 어른이 따로 있을 수 없다(여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책이 아동용, 초등학생용, 중고등학생용, 대학생용, 성인용, 실버용 등 독서연령층을 세분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들의 독서력이 형편없는 건 이런 세분화의 탓도 크다. 열다섯 나이를 넘어서면 사람살이와 우주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감수성이 있는데도, 제한적인 지식만을 공급하도록 짜여진 교육·출판 시스템, 나아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아이들을 독서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달인시리즈는 모든 세대가 함께 어울려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또 하나의 콘셉트로 삼았다. 뒤표지 카피가 “1080 세대공감 호모 ○○○”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또 시리즈 1번을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로 내세운 건 대화와 소통의 단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에서 그 니즈를 반영한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 부부 간에, 남녀 간에 대화의 곤란을 호소하는 것은 테크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콘텐츠가 부족해서다. 콘텐츠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컨셉이 확정되었다면 그 다음은 목차짜기다. 콘셉트가 확정되면 목차짜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목차는 건축에 빗대어 말하자면 설계도와 조감도다. 출판 쪽에서 편집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기획은 제목잡기고, 편집은 목차짜기다.” 이 말은 저자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기획은 제목잡기고 저술은 목차짜기다.” 편집자와 저자가 콘셉트를 공유하고 있다면 목차짜기는 더욱 쉬워진다. 목차를 짜면서 책의 전개방식이나 책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구체적으로 모양을 잡아나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 축소되거나 빠져야 할 것, 보충되어야 할 것, 누락된 것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것은 제목잡기와 목차짜기로 거의 70% 이상이 끝난다고 보면 맞다.

책은 텍스트이고, 기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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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 作 <연대의 끈>
_ 텍스트와 '연대의 끈'을 맺는 순간, '책기계'가 된다. 우리는 이 '책기계'를 통해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변용하며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한권의 책이 완성되는 시점은 인쇄와 제본을 막 끝낸 시점이 결코 아니다. 독자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눈을 반짝이면서 책장을 넘길 때 비로소 한 권의 책은 완성된다. 책은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책을 “언어로 만들어진 예술품”으로 생각할 때, 책은 ‘작품’이 된다. 책을 ‘작품’으로 보는 사고에는 ‘권위’와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이러한 ‘작품’을 읽을 때 독자에게 허용되는 선택권은 그 ‘작품’을 거부할 자유, 즉 읽지 않을 자유뿐이다. 독자의 역할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독자는 단지 작자가 설정한 최종적이고 유일한 의미를 찾아내는 수동적 객체가 되고 만다. ‘작자’만이 생산자이며 독자는 소비자일 뿐이다. 이러한 작품에 비해 ‘텍스트’는 열린 ‘장’(場)이며, 복수성의 ‘장’이다. ‘텍스트’의 원래 뜻은 ‘직물’이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면서 직물이 짜이듯, ‘텍스트’는 다양한 요소의 결합체로서 나타난다. ‘텍스트’는 전 시대의 여러 텍스트와 동시대의 여러 텍스트를 인용한 직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여러 텍스트의 결과물인 독자가 관련됨으로써 의미가 생산되는 동(動)적인 장이다. ‘읽는다’는 것은 독자가 지금까지 다양한 책을 통해 쌓아온 자신의 기억과 지금 읽고 있는 텍스트를 상호 관련시키는 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독자 자신의 텍스트를 짜나가는 일이다.

텍스트적 관점에 서면 책은 책기계가 된다. 기계라고 하면 명령 혹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고정된 장치를 떠올리는데, 그때의 기계는 mechanism이다. 책기계라고 할 때의 기계는 machine을 가리키는데, 어떤 배치 속에서 외부와 접속하여 작동하면서 어떤 효과를 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손은 식당의 배치에서는 ‘먹는 기계’가 되고, 컴퓨터 자판의 배치에서는 ‘쓰는 기계’가 된다. 마찬가지로 칼은 어떤 외부와 접속하는가에 따라 요리기계가 되기도 하고 살인기계가 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기계인 셈이다. 책은 어떤 외부와 만나고 접속하는가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효과를 만들어내는 책기계다. 책은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책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책을 다른 세계 속으로 끌어내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은 다양한 것으로 증식된다. 따라서 편집자와 마케터는 책의 생산과 유통뿐만 아니라 ‘책과 독자와 함께하는 다양한 생활 장면’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출판한 책을 놓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세미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요컨대 책기계로 이용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출판사가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저자-편집자-책-독자-마케터가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많이 기획하는 것도, 그만큼 책기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표 유재건

2009/09/25 18:00 2009/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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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르바 2009/09/26 22:12

    제가 잘못 이해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본문 중에서 '책을 작품으로 보는 관점'이 지양되어야 하는 것으로 일단 이해했습니다.

    제가 이제껏 만난 선배 편집자 분들은 자신이 편집하는 책을 '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는데요(그동안 본인이 편집한 책에 대해 자기 책이라고 생각하는 선배들의 그 자부심이, 뭔가 뛰어나 보기이도 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기도 했어요;;).

    저는 아직 책을 몇권 만들어 보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제가 작업하는 책을 '제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명감 부족인건가 하고 오랫동안 고민하면서(선배들이 무서워 말은 못하고) 나름 생각의 돌파구를 찾아다니던 중에 대표님 글을 읽었습니다.

    아직 독해 능력이 형편없어 대표님의 글을 제대로 이해한건지 자신할 수 없지만, '텍스트'로써 책이라는 매체에 접근한다는 것이 뭔가 발상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에 두서 없이 댓글 남겼습니다;; 좀더 고민 해봐야 겠습니다.

    • 그린비 2009/09/28 09:56

      조르바님, 안녕하세요.
      편집자로서 고민이 많으신 것 같네요. 뭐든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본문에도 나와있듯 어떤 고민, 어떤 질문인가 하는 게 중요할테니까요.. 사명감이 부족한 걸까라는 질문에서 텍스트로써 책을 만드는 게 어떤 걸까하는 질문으로 옮겨졌다면 편집자로서 한 걸음 더 다가서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