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과 신종플루, 흑사병의 상관관계?
― 존 켈리의 흑사병시대의 재구성
, 환경파괴가 전염병의 주범


김해규 (평택한광중학교 교사, 지역사연구가)

1.욕을 알면 역사(歷史)가 보인다
대학시절 서울의 대학가 앞에는 욕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우리는 욕쟁이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과 질펀하게 퍼부어 대는 욕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시원하게 욕 한번 할 수 없었던 시절, 할머니의 욕은 가슴을 뻥 뚫어 주는 대리만족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호환
_ 옛날 비디오테이프 경고 영상 중, '옛날 어린이에게는 호환, 마마가 무서웠다면…' 욕에는 형벌, 질병 등과 관련된 말들이 많다. '호환'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할머니의 욕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은 ‘육시럴 놈’과 ‘염병헐’이었다. ‘육시럴 놈’, ‘찢어 죽일 놈’, ‘능지처참할 놈’은 조선시대라면 ‘허걱’ 하고 들어야 할 욕 중의 욕이었다. 경국대전에는 태(苔), 장(杖), 유배(流配), 사형(死刑) 등의 형벌을 규정하였고 사형에도 죄질에 따라 교형(絞刑), 참형(斬刑)이 있었는데, 반역죄나 부모를 죽인 것과 같이 극악무도한 죄인일 경우에는 능지처참(陵遲處斬)이나 육시(戮屍) 또는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하였다. 능지처참은 중국에서는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칼로 살점을 떼어낸 뒤 마지막에 목을 치는 형벌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솜씨 좋은 사람일 경우 죽이지 않고 4,700점까지 떼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의 법도 중국의 대명률을 기본으로 하였지만 살점을 떼어내는 형벌이 너무 가혹하다고 하여 다섯 마리 말에 사지를 묶고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거열형(車裂刑)으로 대신하였다. 또 죄인이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을 경우에는 육시를 하였다. 육시는 시체를 여섯 토막으로 잘라 각 도(道)에 보내고 머리를 3일 동안 효수하는 형벌이었다. 비록 육체적 고통은 없었지만 사람의 몸을 귀하게 여겼던 조선시대에는 거열에 버금가는 치욕스런 형벌이었다. 죄인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이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참수하는 부관참시를 하였다. 세조의 책사로 살아서 천하를 호령했던 한명회도 죽어서는 부관참시를 면치 못했다. 이렇게 흉악한 욕이었기에 세상이 악하고 가슴 답답한 시대일수록 많이 통용되었다. 어쩌면 전라도 지방에서 욕이 일상화 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 많은 것도 탐관오리와 지배층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벌과 관련된 욕 말고도 질병이나 모욕을 주는 욕들도 많았다. ‘염병할 놈’, ‘씨발놈’, ‘후레자식’ 같은 욕이 대표적이다. 씨발놈이 ‘너희 어미는 행실이 좋지 못하여 다른 남자와 동침하여 너를 낳았지?’ 또는 ‘너희 엄마는 창녀지?’라는 모욕적인 욕이라면, 후레자식은 ‘아비가 없어 배워 먹지 못한 놈’이라는 다분히 유교적인 욕이다. 반면 ‘염병할 놈’은 ‘염병에 걸려 땀도 흘리지 못하고 죽은 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보다 심한 ‘역병에 걸려 피똥 싸고 죽을 놈’이라는 욕도 있었다. 요즘에야 별 볼일 없지만 근대 이전만 해도 염병은 호열자와 함께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이 병은 1~2주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데, 고열, 두통, 설사, 장출혈로 이어져 보릿고개에 잘 먹지도 못했던 백성들은 걸리기만 하면 7~8할이 사망하였다. 그래서 나온 욕이 ‘염병(染病)할 놈’, ‘지랄 염병하네’ 였다. 호열자는 콜레라를 의미한다.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은 역신(疫神)이 가져다 준 병이라고 해서 ‘역병’(疫病)이라고도 하였다. 예전 비디오테이프에는 ‘옛날 어린이에게는 호환, 마마가 무서웠다면…’이라는 경고성 멘트가 나왔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호환이 호열자다. 이 병이 호열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한 번 걸리기만 하면 ‘호랑이가 살점을 뜯어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호열자는 무서운 전염력으로 병에 걸리기만 하면 열에 여덟, 아홉은 죽었다. 1821년(순조 21) 평양부에서 호열자가 돌아 고관대작 10여 명을 포함하여 약 10만 여 명이 사망하였다는 기록은 이 병의 무서움을 말해준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염병이나 호열자 같은 전염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전염병은 보릿고개와 여름철에 만연하여서 굶주림에 면역력이 약해진 백성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매년 음력 10월이나 정월이면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제를 올렸고, 예외적으로 전염병에 걸린 시체는 함께 모았다가 불에 태우기도 하였다.

2. 현대의 흑사병, 신종인플루엔자
조류인플루엔자는 닭, 오리 등 조류에게나 전염되었던 바이러스다. 몇 년 전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였던 사스도 박쥐에게서 비롯된 바이러스라고 한다. 최근 조류를 포함한 동물에게나 전염되었던 바이러스의 변종들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의 발생은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상생(相生)의 질서가 붕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카트리나, 동남아와 인도양 일대를 재앙에 빠뜨린 쓰나미, 지난 해 충남 보령의 작은 무인도를 덮쳤던 해일도 환경파괴가 가져온 재앙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종플루
_ 어린이들이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비해 마스크를 올바르게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출처:한겨레)

최근 신종인플루엔자가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인기 아이돌그룹 SS501의 멤버이고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였던 김현중도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종플루의 진원지는 수원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수원과 불과 30분 거리에 있다. 수원의 일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던 우리 지역에서도 세 주 전부터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신종플루의 공격에 개학을 앞둔 학교에서는 혼란에 빠졌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을에 계획하였던 축제나 문화행사를 취소하거나 연기하였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수학여행이나 운동회, 학예회를 대부분 취소하였다. 우리학교와 이웃에 있는 중학교에서는 신종플루 환자가 한 명 발생하자마자 1주일 동안 휴교 조처를 하였다. 모 초등학교에서는 보건소에서 입수한 정보라며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신종플루 환자가 여섯 명이나 발생했다는 괴소문을 퍼뜨린 학부모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 학생은 일주일 동안 등교를 정지당하였고, 모 학생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이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이유로 열흘간 등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는 학부모들이 나서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체온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 화장실에 물비누를 비치하고 교무실에 손세정제를 비치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자주 이용하는 대형마트 약국에서는 손세정제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정보에 병원은 너도나도 폐렴예방주사를 맞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폐렴예방주사는 의료보험도 되지 않아서 어른은 4만원, 아홉 살 이하의 아이들은 10만원이나 하는데도 공급이 모자라서 많은 사람들이 병원 문턱에서 발을 돌리는 실정이다. 신종플루 징후가 나타나도 확진을 받기 전까지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서민들은 어려움을 겪는다. 백신이 모자라서 확진이 되어도 치료가 어려운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신종플루가 급속도로 번지면서 사회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접촉을 통하여 소통되었던 일들도 뜸해지고 있다. 손님들이 없어 식당들이 입는 타격도 크다. 뒤숭숭한 사회분위기와 소통단절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학교에서도 신종플루 학생들을 가장 먼저 돌보는 보건교사는 죽을상을 쓴다. 병원에서도 신종플루환자라면 의사도, 간호사도 꺼린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흑사병
_ 1348년 이탈리아의 참혹한 광경.

흑사병은 중세 말 유렵을 휩쓸었던 전염병이다. 최초 환자가 발생한 1347년 10월부터 1352년까지 5년 동안 유럽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천 5백만 명이 흑사병으로 생명을 잃었다. 흑사병은 환경파괴가 가져온 재앙이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던 타라바간쥐가 환경파괴로 서식지가 붕괴하자 인간들의 거주지로 옮겨오면서 쥐벼룩이 페스트균을 퍼트린 것이다. 흑사병이 창궐하자 유럽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종교도, 인간의 도덕성도, 창궐하는 전염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병든 아버지와 자녀, 아내를 내다 버리는 일도 흔히 발생하였다. 질병의 원인이 인간의 죄 때문이라며 집단적으로 모여 회개하는 운동이 벌어지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흑사병의 원인을 잘 모르고 허둥대다가 나병환자들이 퍼트렸다는 소문을 듣고는 마을 근처의 나병환자들을 몰살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나중에는 유태인들이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흑사병의 공포가 가져온 집단의 광기 앞에 사회적 약자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흑사병이 만연하던 유럽사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본 존 켈리는『흑사병시대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썼다. 미시사라는 연구방법이 그렇듯이 이 책은 소설처럼 잘 읽힌다. 저자는 흑사병의 원인이 중세 말 도시의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가져온 상생질서의 파괴가 집단적 공포와 사망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흑사병시대와 물질문명에 병들어 가는 현대사회를 비교한다. 물질문명에 젖어가던 중세 말의 상황이 현대사회와 닮아있다고 한다. 인류가 희망의 미래를 가꿔가려면 탐욕의 덫에서 벋어나 신이 부여한 상생의 질서를 회복해야한다고 호소한다. 환경재앙과 신종플루의 공포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한다.
알라딘 링크
2009/09/16 10:53 2009/09/16 10:53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746

  1. Subject: 김현중 신종플루 완쾌^^ 수척한 모습 역력하지만..

    Tracked from 2009/09/16 16:47  삭제

    오늘(16일) 2시 반 경 김포공항에 SS501 김현중 군이 신종플루 완치 판정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 입국 모습을 보니 많이 야위고 창백한 얼굴이네요, 그 간 심신 고생이 보이는 것 같아요. 김포공항 측에서는 비공개 통로로 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지만 기다린 팬들을 위해 인사를 하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구요.^^ 사진출처:좌-bnt news, 우: 실제로 이 날 입국장에는 신종플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약 200여 명의 취재진과 일본 팬들이 몰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