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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노래가! 반가움에 깜짝 놀랐다가 금방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시 이 노래가 공중파에라도 나온 건 아니겠죠? 노래 제목이 앨범의 제목으로도 쓰였던데, 아니 이분들은 대체 무슨 깡으로 이렇게 좌빨혁명적인 노래를 만들었을까요? 혹시 잡혀가지 않을까요? 벌써 잡혀간 건 아닐까요? 아, 걱정입니다.

앨범이 발매되었단 소식을 듣자마자 냉큼 산 다음에 한 곡이 끝나면 저절로 다음 곡의 전주를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많이 들은 앨범이었습니다. 헌데 노랫말을 깊이 새겨듣진 않았습니다. 제목부터가 '별일' 없는데 뭐 그닥 신경이나 쓰였겠습니까. 그저 좋구나, 그랬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은 후에 이 노래의 가사를 보곤 정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어이쿠, 이 노래에 이런 뜻이 있었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물론 제 맘대로 노랫말을 독해한 거라 노래를 만든 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만든 이의 손을 떠난 작품인 것을.

그럼 이제부터 「별일 없이 산다」 이 노래가 얼마나 급진적인 노래인지, 어떻게 인민의 혁명을 부추기는 노래인지 설명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하실 겁니다.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하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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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니'가 누굴까요? 저는 그냥 헤어진 애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나보다 잘난 어떤 친구이거나.
그런데 만약 저 '니'가 '국가'라면요? 애국심이라고 할 때 그 국가 말입니다.
국가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얘기를 들려주겠다니 이거 시작부터 상당히 불순합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 국가에서 잡아가던 시절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죠. 아, 과거형으로 쓰면 안 되겠네요. 지금도 막 잡아가니까. ㅡㅡ;;; 생각해 보면 굉장히 쪼잔하긴 합니다. 국가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체가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 몇 마디 했다고 개인을 잡아서 족친다는 것이 말이죠. 좀 대범하게 그냥 냅두면 안 되나요? 기왕에 국가에 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그 정도의 대범함은 갖춘 국가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이건 뭐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후진 국가에서 개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어쨌든 국가를 기분 나쁘게, 깜짝 놀라게 만들 얘기란 게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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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꼴랑 별다른 걱정과 고민 없이 산다는 소리?
근데, 근데 말이죠, 가만 생각해 보면 절대로 '꼴랑'이 아닙니다. 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서 혹시 깊게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최근에 국가란 게 뭔지를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서 따로 생각을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국가 없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그렇겠지요. 마치 물이나 공기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하는 꼬라지를 잘 살펴보면 '저게 대체 왜 존재하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임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것들로 '군대', '세금', '관료제'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국가라는 것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죠. 모두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그냥 잘 살겠다는데 군대가 필요할 리가 없고, 우리끼리 모여사는 동네에 관료들이나 세금이 필요할 리도 없으니까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얘기하며 국가의 정당성을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일종의 추측일 뿐이죠. 국가가 없었던 원시시대가 '호혜와 평등'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연구의 성과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국가가 없이 더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죠. 그런데 국가 없이 사는 상태, 다른 말로 하면 그게 바로 별일 없이 사는 상태가 아닐까요? 별다른 걱정도 없고 이렇다 할 고민도 없는.

그래서 국가는 인민들이 늘 별일 있으며 살게 만듭니다. 매일 걱정과 고민에 둘러싸여 살게 만듭니다. 옆 나라가 침략해 올지 모른다며 인민들을 협박하고, 지배의 효율을 위한 질서를 인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질서라고 속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인민들의 자율적인 삶에 끊임없이 개입합니다. 국가가 정해준 삶의 방식대로 살라고 끝없이 강요합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한 줌밖에 안 되는 지배자들이 더 풍요로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듭니다.

우리가 별일 없이 살 수 있다는 건 국가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인민들이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별일 없이 살아 본 적이 없잖아요. 쉽지가 않습니다. 별일 없이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내버려 두질 않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별일 없이, 고민과 걱정 없이 살게 된다면 그게 바로 혁명이죠. 또 혁명 이후의 세계인 것이죠. 지배자가 아니라 인민이 풍요로울 수 있는 세상, 가능하지도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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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또 누구에게 하는 얘기일까요? 누구에게 불쾌하면서도 두다리 쭉 뻗고 잠들지 못할 정도로 살벌한 얘기를 하려는 걸까요?
'자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와 자본은 쌍으로 존재하죠. 어쩌면 지금은 국가보다는 자본이 인민을 훨씬 더 억압하는 시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자본의 손아귀를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의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을 읽어 줄 독자 중의 하나로 '광고산업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는 소비자(특히 주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본보다는 이렇게 '소비'라고 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들면 좀더 현실적으로 와닿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화폐를 통한 소비에 얼마나 중독되어 있는지를 보려면 우리가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집에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동네 공터에 모여서 함께 노래하며 춤추고 놀면서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 즐기는 여가 생활에 등장하는 '지름'이나 '기변' 같은 단어들이 빠지질 않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카메라가 필요한 것인데 정작 사진을 찍기보다는 새로운 기종의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사람의 카메라 종류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통해 어떻게 도시 생활을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가보다는 자전거 프레임의 무게나 기어의 종류나 브레이크의 성능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행위들은 합리적인 소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합니다. 기왕에 하는 거니까 더 좋은 조건을 만들려고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친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각종 쇼핑 정보 사이트에서 보내는 시간을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고작 몇천 원을 더 싸게 구입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평가가 더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게 되실 겁니다. 소비 행위를 하기 위한 과정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정작 소비 행위 자체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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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 보면 빈곤의 4가지 종류가 나옵니다. 조금 줄여서 옮겨 적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빈곤은 전통적인 빈곤입니다. 자급자족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전통사회(아직도 그 형태가 남아있는 원시부족)의 빈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바깥에서는 가난하게 보더라도 자급자족 사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본 빈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절대빈곤'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약이 모자라고, 입을 옷이 없어서 영양실조라든가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든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그런 빈곤입니다. 이것은 첫번째의 전통적인 빈곤, 즉 자급자족과는 전혀 다른 상태의 빈곤입니다.
세번째는 부자가 전제되어 있는 빈곤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라고 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빈곤이므로 '절대빈곤'의 상태와는 많이 다릅니다. 배가 고프거나 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기보다는 부자에게 바보 취급을 당해야만 하는 사회관계가 가장 괴로움을 주는 빈곤입니다.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도 반항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이 이 빈곤의 특징입니다.
네번째는 이반 일리히의 말을 빌리자면 '근원적 독점'에서 생기는 빈곤입니다. 이 빈곤은 기술발달에 따른 새로운 필요에 의해서 탄생하는 빈곤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적이 없는 상품이 처음에는 사치품으로 등장합니다. 살 수 없는 사람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일로 속이 상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사회가 변하면 그 상품이 어느새 '있으면 좋은 것'에서 '없으면 곤란한 것'으로 변해 가며 살 수 없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자동차가 그 좋은 예의 하나입니다. 자동차 사회는 "자동차를 사면 어떻겠냐?"라고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없으면 가난뱅이다. 그대는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사람을 위협하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우 유명한 일입니다만 1920년대까지 로스앤젤레스는 세계에서도 유수한 통근전차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것을 자동차 회사가 사들였습니다. 그들은 차츰 전차를 줄여가며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다가 마침내 적자라며 전차운행을 모두 중지했습니다. 이 빈곤의 특징은 경제발전이나 기술발전에 따라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빈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위에서 말한 네번째 빈곤 때문에 끝없이 소비 행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면서 그 행위가 자유롭고 합리적인 행위라고 위안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자유로운 인간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은 사회에 여가, 자유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의논을 하고 합의를 하고 정치에 참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한 틈이 없으면 정치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들이 모여서 자유로운 공공영역, 즉 아고라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노예제가 필요하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예란 여가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하고 물어보게 됩니다. 근무시간 이외에 거의 틈이 없는 상태가 일상이 되어 있다면, 가끔 생기는 일상의 시간마저 자본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허비하고 있다면 우리가 과연 자유로운 시민일 수 있을까요? 혹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노예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이 노래는 자본이 제공해 주는 시스템 없이도 별일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며 두번째 혁명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 모두가 주인이 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혁명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자본에 복종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국가에 대한 혁명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인민들인 동시에 '소비'를 멈춘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본을 가진 지배자들이 두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까요?
돈 없이도 별일 없이 한번 살아볼 만한 것 같습니다. 제법 즐거울 것도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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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국가와 자본에 이어 드디어 우리들 자신에게 비수를 날립니다. 우리가 절대로 믿고 싶지 않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머리말을 보면 저자가 처음에 '21세기의 커먼센스를 위해서'라고 이책의 제목을 붙여볼까 생각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식의 대전환, 즉 대다수 사람들이 '비상식'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사고방식이 주류의 상식이 되는, 새로운 상식을 위한 대변혁 직전의 단계에 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상식'과 '비상식'은 무엇일까요? 환경문제를 예로 들면 이런 것입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태울 수 있는 쓰레기, 병이나 캔을 분리하는 것 정도의 것은 이미 정착해서, 모두 그것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 경쟁적으로 파괴적인 소비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면, 그건 '비상식'이라고 말하는 상황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주의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 낭만주의자, 상아탑 속의 사람이라고 불려지고, 현상을 그대로 계속할 것을 말하는 사람의 '현실주의자'가 되고 '상식'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이런 상식과 비상식의 전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 '성장'이나 '발전'의 개념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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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나 발전하지 않고도 매일매일 신나고 하루하루 즐겁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이죠. 역시 선동가요답습니다.
국가나 자본이 말하는 성장의 개념을 살펴보면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어떤 나라나 기업도 자연의 무한한 희생을 통한 발전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나 '녹색성장'과 같은 말을 통해서 성장의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과연 무엇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발전일까요? 인민의 행복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발전을 말하는 걸까요? 지구의 환경을 지속가능하게 보장하는 발전을 말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발전 그 자체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발전을 말하는 겁니다. 부자나 지배자들의 기득권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발전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녹색성장'도 마찬가지이죠. 진짜로 '녹색'을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녹색'이라는 껍데기가 필요하다는 것뿐입니다.

우리 인민들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잠시 잃어버린 능력을 복원하면 됩니다. 물론 국가가 방해하고 자본이 훼방을 놓겠지만 충분히 우리끼리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상식'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말하는 '대항발전'이라는 개념 역시 굉장히 비상식적인 것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발전'의 의미, 곧 경제성장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발전해야 할 것은 경제가 아니라 거꾸로 인간사회 속에서 경제라는 요소를 조금씩 줄여가는 과정을 발전의 의미로 삼자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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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상식과 상식의 전환이 일어난다고 해서 단번에 살기 좋은 세상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망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회의 모습은 잘해야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 모두 상호부조보다는 경쟁에 너무 길들여져 버렸습니다. 장밋빛 유토피아의 가능성은 20세기에 이미 깨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그 희망이란 바로 문화와 자연의 양쪽이 가진 힘찬 복원능력에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별일 없이 살기 위해 열심히 애써야 하겠습니다. 국가에 대해, 자본에 대해, 우리의 일상생활에 대해 계속 혁명을 시도합시다. 혁명이래 봤자 별거 없잖아요. 그냥 별일 없이 사는 거, 즐겁고 신나게 사는 거. 다만 혼자 그렇게 사는 거 말고 끼리끼리 모여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별일 없이 사는 사회를 얼른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행복하게 살아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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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하고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얘기라고 해놓고 이렇게 희망적으로 끝낼 순 없죠. ㅡㅡ;;;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에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전제가 붙어 있습니다.
"만약 늦지 않았다면"

- 마케팅부장 이경훈

+ 이 글은 gBlog 2호의 '책으로 세상읽기: 별일 없이 세상살기' 에 수록된 글입니다. 국가는 아웃 오브 안중, 고정관념은 세이 굿바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칼럼이죠. 별일 많은 세상에 혼자서 별일없이 사는 장기하로 유쾌한 세상을 읽었다면,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또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 보세요. 어떻게 만날 수 있냐구요? gBlog 2호를 받아보세요. ^^*
☆ 신청만 하시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는 gBlog 2호! 매주 금요일 발송해 드립니다. 신청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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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러멜대장 2009/10/06 13:29

    'ㅂ'/ gBlog로 이 글 봤어요. 상당히 괜찮게 봤었다는!! 다시 봐도 반갑군요.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요 책도 사서 읽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해요 ♡

    • 그린비 2009/10/06 13:47

      캐러멜대장님, 반갑습니다~
      더없이 기분좋은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2. 얼레 2009/10/07 23:16

    이건 장기하와 얼굴들이군요....;;; 노래는 나온지 상당히 지났습니다.
    내 알기로 장기하의 음악은 루져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하더군요.
    대뷔곡인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가 그렇지요
    하지만 장기하 본인은 자취를 해본적도 없으며 모든건 상상해서 쓴곡이라고
    하더군요. 곡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신거 같습니다. 장기하가 상당한씽어송라이터인것은
    맞지만 그렇게 혁명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p.s : 저노래 음악프로에 몇번 나왔어요.

    • 그린비 2009/10/08 09:50

      얼레님, 안녕하세요.
      본문의 구절로 답을 대신할까 합니다..
      "물론 제 맘대로 노랫말을 독해한 거라 노래를 만든 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만든 이의 손을 떠난 작품인 것을."

  3. zxcsadf 2009/10/11 11:44

    의도확대의 오류

    • 그린비 2009/10/12 10:07

      텍스트는 열려 있는 것이니까요. ^^

  4. 허허허 2009/10/26 14:52

    장기하씨에 큰 관심은 없는 사람이구요. 그냥 노래 하나 찾아보려다가 위글 읽어봤습니다. 대체 논리적인 연관성이 '전혀'없는 해석처럼 느껴지는군요. [별일없이산다]에서 어떻게 '무정부주의'가 연관될 수 있는지; 순간 편집증의 사례를 올려두신건가 의심해볼 정도였답니다. 텍스트의 해석이 자유로운건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모든 주장들인 인정받는 것은 아니거든요... 가령 고전연구의 방법론을 보면, 어떤 작가의 텍스트를 분석할 땐 작품 여러개를 동시분석을 합니다. 여러 작품 속에서 일관적인 작가의 의중이 나타날 때야 조심스럽게 그의 사고나 사상을 추리하는게 일반적인 연구법이거든요. 만약 장기하씨의 여러 노래 속에 일관적인 혁명의 의지가 드러났더라면 몰라도... 이런식은 좀... 글쎄요 장기하씨가 이글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요?

  5. 허허허 2009/10/26 14:56

    그리고 혁명이라는 단어사용도 검토를 해보셔야 하는데. 혁명이란 사전적으로 어떤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을 의미하거든요. 실제로 학문적으로도 저렇게 쓰일 뿐입니다. 만약 "이 사회가 불만족스럽다, 고치자!" 라는 의도가 배어있다면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장기하씨의 가사처럼 "우린 즐겁다, 별일 없이 그냥 살거다"라고 말한다면, 이건 현실 체제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해를 입던, 쪼들리게 살던, 우리는 즐겁다, 상관없다, 이런 식인 거거든요. 이건 달리 말하면 현실 조직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하지 '혁명'을 시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6. 허허허 2009/10/26 15:06

    혹시라도 상식에 대한 비상식의 '혁명'이다, 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용어의 개념적 의미를 분명히 갈라야 합니다. 글의 서두에 언급하신 '좌빨혁명'에서의 혁명은 정치적인 혁명을 의미하는 겁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국가와 같은 사회 조직들이 여기에 개입됩니다. 반면 상식과 비상식에서의 '혁명'은 의식차원의 혁명입니다. 이 때 혁명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적용됩니다. 실제로 있는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류적 사고 방식에 대한 '거부'정도만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 두가지 개념을 글쓴이께서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계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글의 두서가 없게 느껴지고, 논리적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것이지요. 이상 지나가던 행인의 오지랖이었습니다. 그냥 모난 인간이 말참견 했구나, 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 이경훈 2009/10/26 15:39

      네.

  7. ㅇ.ㅇ 2009/12/18 23:48

    가사나 시는 해석하기 나름이라지만 대단하네요.

    위엣분 처럼 음악 검색하다 이 글을 보게되었는데요

    제가 듣기론 잘났지만 정신없이 사는 친구를 비꼬는 가사 같던데..

    음악을 들을 때 의도가 없이 그냥 즐기는 건 어떨까요?

    아무생각없이 기분좋게 들으면 더 좋은게 음악입니다.

    마치 아무 관련없는 인터넷 기사에 지역감정이나 정치적 색깔 운운하는 사람들과

    다른바 없는 것 같아서 댓글하나 남깁니다.

  8. ㅇ.ㅇ 2009/12/18 23:55

    이 가사는 이러한 의도로 만들어졌을꺼야! 이렇게 가정하면서

    그에 맞춰가며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듯한 인상이 진하군요.

    말끝 마다 "역시 선동가요답습니다."라는건 이 글의 의도가 단 하나라는 반증인가요? ㅋ

    아뭏튼 쉽게 접하기 힘든 글 잘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12/21 09:59

      녜..;

  9. 해피엔드 2009/12/22 10:58

    어익후...
    댓글 읽는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ㅁ-

    저는 이 글을 쓰신 분이
    적극적으로 <별일 없이 산다>를 해석하셨다기보다
    가사를 차용해서 국가와 자본의 비상식적 횡포에 대해
    '풍자'를 하셨다고 생각했거든요 .

    심지어 만약 국가와 자본이 '-라면요 ?' 라고 '가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
    가사에 등장하는 '니'를 '-무엇이다'라고 확정을 내리고 있지 않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심각하게 노래 가사를 학술적으로 해석한 글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고요 .
    혁명에 대한 정의도 , 사전적 의미로서의 '혁명'보다는
    <그냥 별일 없이 사는 거, 즐겁고 신나게 사는 거.
    다만 혼자 그렇게 사는 거 말고 끼리끼리 모여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별일 없이 사는 거>라고 정의하고 있으므로
    위에 댓글 다신 분들의 원론적인 해석은
    다소 억지를 쓰신 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드는데요.....-ㅁ-;

    일천한 지식으로나마
    이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사람으로서
    댓글 다신 분들께 어설프게 한마디를 남겼네요 .
    그리고 장기하 음악의 팬으로서,
    평소 장기하 씨의 애티튜드로 보아
    이 글에 많은 신경을 쓰실 것 같진 않은데요 ?
    그의 창법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넘기실 듯 .
    "어 뭐, 그냥 뭐... 그렇죠 뭐." 이렇게요 ㅋㅋ
    그러니 위에 댓글 다신 분들 너무 걱정하시 않으셔도 될 듯 ㅋㅋ

    • 그린비 2009/12/22 11:26

      어 뭐, 그냥 뭐... 감사합니다.^^ㅎㅎ

  10. 흠흠 2009/12/27 09:47

    장기하씨 팬은 아니지만
    글 첫줄부터 '이거 뭐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쓴이 분께서 다른 글들은 어떻게 쓰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상당히 장기하씨나 팬들에게 불쾌할 것 같네요.

    읽다보니 장기하씨를 욕하는게 아니라 그 가사에 대한 글쓴이만의 특이한 해석과 현실에 대한 비판 이라고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한구석에는 계속 '장기하는 좌빨' 이라는 생각이 석연치 않게 드네요.

    이미 많은 분들도 '말도 안되는 해석' 이라든지 '단어 선택의 부적절' 등을 꼬집어주셨는데

    저 또한 말도 안되는 해석이라 생각하지만서도 그냥 글쓴이가 남들과는 다른 시선에서 가사를 읊으셨다 애써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의 표현을 했다지만 그것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장기하씨)에게 폐를 끼치는 거 같아 매우 안좋아보입니다.

    정말 장기하씨 당사자가 이 글을 보시더라도 '그냥 웃기는 글이구나' 생각만 하실까요.

    장기하씨 팬들이 보시더라도 그냥 웃고 넘기실까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시려면 먼저 이 부분부터 중요하게 생각하셔야 할 거 같네요.

    • 그린비 2009/12/28 10:51

      네... 말씀 감사합니다.

  11. ㅂㄱㅎ 2009/12/28 18:41

    우앙 블로그 방문자수 쩌네용

  12. dd 2009/12/28 18:46

    미쳐도 한참 미쳤네요; 좌빨이니 우익이니 뭐니 나라를 나누는 꼴도 우습지만 그런 관계는 다 떠나서 어떻게 저렇게 간단한 노래 가사를 과대해석해도 저렇게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단 한구절도 증거따윈 없고 글쓴이 자신의 추측과 '~이럴것이다. 이럴것 같다' 는 식의 해석이 난무한데 이걸 어떻게 함부러 올리죠? 장기하측에서는 명예회손으로 신고할 수도 있을 글입니다. 대체 뭐하자는 건지. 장기하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이런 머리와 지식으로 나라 양분하는데 쓰지말고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게 좀 써주세요 한심한 작자야

    • bb 2009/12/28 23:39

      님도 좀... 댓글 달 시간에 화합 발전에 좀 써주세요. 그 손가락..

  13. 2010/01/27 17:37

    해석 졸 유치하네

    • 그린비 2010/01/27 18:12

      님 댓글이 더 유치해염 :<

  14. 광인(狂人) 2010/02/07 12:50

    이 좁디 좁은 나라에 안 그래도 지역 감정도 있는데 자기와 사상이 다르다고 좌빨 우익 나누면서 춘추 전국 시대로 이끌려는건지 모르겠습니다.(이런식으로 나라를 또 나눌려고 북한에서 보낸 간첩임디까?)

    • 그린비 2010/02/07 18:37

      지역 감정에서 춘추 전국 시대로.. 간첩활동까지..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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