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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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_ 점 하나하나가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인연들이 아닐까요?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수많은 '인'과 '연'들이 만나 생성된 저 점같은 순간들이 쌓이고 또 서로 의존하며 새로운 만남과 사건을 필연적으로 일으킬 것입니다.

“만남의 결과는 필연적이지만 만남 자체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우발적이다.”
“현재의 순간은 언제나 생성의 순간이다.”
(진은영,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130쪽)

불교에서 만남 혹은 사건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런 필연적 만남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하죠. 삶이 이처럼 결정되어 있고 우리는 다만 그 필연들을 따라 살 뿐이라면, 우리에게 그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것이 이미 결정되어진 숙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삶이 모든 인연의 필연적 사건이되 결정된 것이 아니라 해탈의 의지를 통해서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사건”이며, “수많은 인因과 연緣들이 교차”하며 현재의 순간순간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즉, “찰나의 만남(사건) 속에 수많은 것들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운명運命은 정해진 것, 결코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이 아니라, 매순간 움직이는 것, 스스로 운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현재의 인과 연을 어떻게 직조하느냐에 따라 다가올 지금의 인연(필연적 만남 혹은 사건)도 새롭게 변화할 수 있겠지요? 삶을 능동적으로 조직하면서도 동시에 또 그 삶에 순응하며 사는 태도, 그것이 불교적으로, 혹은 니체적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 마케팅팀 서현아

2009/09/28 17:08 2009/09/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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