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를 끼치면서, 비로소, 살고 싶다: 홈리스 마을 '가마가사키' 에서
― 일본에서 마을 만들기 4


신지영 (연구공간 수유+너머)

* 메이와쿠(迷惑:'폐'라는 뜻의 일본어)라는 사이렌
도쿄로 집을 옮긴 뒤의 일이다. 혼자 집에 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방인인 나도 이 낯선 도시의 일부분인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빗소리는 경계선을 지우고 모든 것이 우주의 한 부분인 듯이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 집 안과 집 밖의,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그때였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펴지기 시작했다. 호우경보/주의보 사이렌이었다. 모든 소리를 지우고 자신의 소리만을 남기는 날카롭고 강력한 사이렌. 일순 나는 욕구불만과 고립감에 휩싸였다. 일본 전국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다소 폭우가 내릴라손 치면 사이렌이 울려댄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나는 이곳에 오고부터는 빗소리를 편안히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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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라 作 <비오는 날>
_ 비는 경계를 지우고 이질적인 것들을 동화시킨다.

위험을 알려 사람들을 구해내는 소리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내 생존을 위해 국가장치가 '발령'하는 '지령'인 사이렌이, 이 고마워야 할 삶의 안전벨트가 달갑지 않다. 폭우의 위험을 '경고'하는 사이렌을 듣고 있자면 "고멘나사이, 스미마셍, 결정적으로 "메이와쿠카케루나!" 따위의 일본어가 들리는 듯하다. 이것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폐 끼치지 마'에 해당하는 일본어들이며,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너무 가까워 너무 가까워!, 그건 민폐야 그건 민폐야!" 경계경보를 울려대는 말들. 관계들에서 상처를 받거나 민감해진 결과, 이질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거부하게 되는 것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단지 일본에서는 그러한 과민반응이 정서상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는 듯하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정서이다. 이 서민적 윤리를 형성하는 은근한 정서는 국가장치의 관리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 다치가와 삐라투입 사건: 우편함은 국가의 것?
<다치가와 삐라투입(立川ビラ投函)> 사건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이 사건은 반전/반기지 운동을 하는 단체인 다치가와 자위대 감시텐트마을(立川自衛隊監視テント村)이 일본 자위대 파병을 반대하는 삐라를 우편함에 넣었던 것이 빌미가 되어 일어났다. 이 단체는 자신들이 발간하는 월간신문을 메일로 보내거나 우편함에 넣는 식으로 활동을 해왔다. 2003년 12월에도 그들은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삐라를 인근 자위대 숙소인 아파트 우편함에 넣는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위대 가족 여러분에게.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반대! 함께 생각하고 반대의 소리를 냅시다". 이를 발견한 입주자는 상부의 지시대로 경찰에게 신고했고 삐라배포를 저지당한다. 삐라를 배포했던 사람들은 "폐를 끼치려는 생각은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들의 행위는 불법 주거침입으로 간주되어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후 이 사건은 여러 번의 재판을 거치지만 결국 2008년 <최고재판소 판례>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다시 한번 이슈화되고, 일본 내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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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가와 삐라투입 사건
_ 유죄판결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단체 사람들.

그러나 이 사건을 좀 더 들여다보면, 언론자유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보통 우체통에 광고지를 넣었다고 해서 불법침입자가 되진 않는다. 삐라배포를 불법침입과 연관시키는 엄청난 비약은 대체 어떤 정서를 기반으로 가능했던 것일까? 그것은 '폐를 끼치지 말라'라는 정서가 아닐까? 자신의 의견을 우편을 통해 알리는 것이 '폐'가 되고 심지어 '죄'가 되는 사회. 그러나 우편이나 메일, 삐라나 선전물, 책 등의 인쇄매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알리는 방법이 이른바 '폐'라고 한다면, 대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뜻을 같이하는 친구와 만날 수 있을까? 사이렌을 울리며 빗소리를 없애듯이, 경찰차 경보음을 울리며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발언공간을 없애버리는 것.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격언 속에서는 정치적 공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정서가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 가마가사키의 주민등록 말소사건: 사회에 폐를 끼치는 국가  
그러나 일본은 점점 폐를 끼치지 않고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가는 듯하다. 『홈리스 중학생』(ホームレス中学生 ; 중학생 홈리스의 이야기를 다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이란 책의 유행이 증명하듯, 일본에서는 날로 홈리스가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부터 늙은 세대까지 홈리스는 일본에서 전국가적 상태다. 국가적 입장에서 보자면, 이른바 "폐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이야말로 '폐의 집합체'이다. 공원, 거리와 같은 "국가적 공공재"를 멋대로 차지하면서도, 거리에서 폭동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무법자들, 공동체 내부에 있는 한편 공동체 외부에 있어서, 국가적 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불평분자들. 그러나 '공공'을 위한 장소인 공원, 거리 등을 맘껏 활용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아니, 살기 위해서 끼치는 폐라면 그게 왜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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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의 홈리스 마을로 여겨지는 곳은 오사카의 가마가사키(釜ヶ崎)이다. 도쿄, 요코하마, 나고야, 고베, 등 일본 전국에 일용노동자, 홈리스 들이 있는 곳은 많지만, 가마가사키처럼 홈리스들이 많으면서도 하나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는 곳은 드물다. 이곳은 1960년대부터 국가가 전략적으로 형성한 거대한 독신남성 일용노동지대였고, 버블이 무너지고 더 이상 일용노동자가 필요치 않게 된 이후, 거대한 홈리스 마을이 되었다. 가마가사키에는 숙박시설, 의료시설지원, 직업 안정을 해주는 NPO들이 밀집해 있으며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티브이를 보는 공원이 있고 축제도 열린다. 주택지에 자리잡은 도쿄의 산야(山谷)에 비해 일거리를 찾아 이동하기 편리한 지리적 조건도 이 마을의 활기에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홈리스 마을에서도 홈리스들은 환영받는 듯하진 않다. 홈리스 마을 중심에 있는 오사카 시립 소학교(大阪市立萩之茶屋小学校)의 경우, 홈리스들이 학교 담벼락에서 기대 자지 못하도록 학교 담벼락에 물이 떨어지는 관을 설치했던 적이 있듯이.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홈리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 학교야말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엄청난 폐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의 사건은 홈리스들을 '폐'를 끼치는 존재로 만들어낸 '국가장치'가 오히려 홈리스들에게 얼마나 폐를 끼쳤는가를 잘 보여준다. 가마가사키의 홈리스나 일용노동자들은 가마가사키해방회관(釜ヶ崎解放会館)등에 주민등록을 해야 한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으면,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없으며 일을 얻기도 어렵고 참정권도 부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야 하기 때문에 가마가사키에만 머물 수는 없다. 특히 파견노동이나 알루미늄 줍기 등은 한곳에 밀집해 있으면 일을 따내거나 돈벌기가 어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단지 가마가사키에 지원시설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므로 일자리에 대한 소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잠을 청할 뿐이다. 따라서 이곳의 홈리스를 도우려고 했던 주민등록은 이동해야 살 수 있는 그들의 발을 묶어둘 뿐이다. 더구나 한동안 가마가사키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조사해 주민등록을 말소해 왔음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항의운동이 일어난다. 이른바 '폐를 끼치는 존재'로 규정된 이들에겐 국가 그 자체가 바로 '민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다'는 행동을 통해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폐를 끼치는 국가 외부존재‘인 그들에게 국가의 보호는 그다지 소용이 없다.

* 폐를 끼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관계성
‘폐를 끼친다’고 할 때 이 '폐'라는 일본어 단어에는 또 한 가지 숨겨진 의미가 있다. 그것은 ‘불편함, 괴로움’이란 뜻이다. 일본에서는 스팸메일을 "메이와쿠 메일(폐 메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메이와쿠 메일이란 한국의 스팸메일처럼 상품광고와 같은 상업성 메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소 관계의 선을 넘거나 그다지 필요치 않은 메일을 보내거나 받거나 하면 그것을 메이와쿠 메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요한 '내 땅'에 갑자기 날라들어 신경 쓰이게 하는 '불순물'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에 반대하는 불순물을 우체국에 넣으면 불법침입이 되며, 공원에서 자는 것이 누군가의 공공에 폐를 끼치는 것이 되며, 주민등록을 하고선 신고도 없이 이동하는 것은 주민으로서의 자격을 잃는 것이 된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살기 위해서, 공공공간을, 거리를,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 장소를 이동하는 권리를 갖는 것이 왜 폐이고 죄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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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메이와쿠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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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어린이교육 제1장이 '타닌니 메이와쿠오 카케루나(他人に迷惑をかけるな)' 즉,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과연 누구를 불편하게 한 것일까? 내가 ‘폐를 끼치지 말라’는 정서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훨씬 더 깊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라기보다, 일본으로 이주해 와서 오랜 시간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폐'라는 말을 통해서, 신참 이방인과 거리를 두는 한편, 일본인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통해 고참 일본인(이방인)이 되어간다. 이런 특성은 ‘폐를 끼친다’는 말이 지닌 역설적 상황과 관련된다. 그 말은 공동체의 내부인으로부터 공동체에 막 들어온 외부인을 향해 발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저 외부인인 채 공동체의 규율 밖에 있으면 폐를 끼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더 이상 외부인일 수 없을 때, 즉 하나의 공동체 내부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폐를 끼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독특성을 통해서 그 공동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폐를 끼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만남'과 '변화'가 일어났다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성이나 마을이 형성중이라는 증거인 것이다.

* 폐를 끼치더라도 '-'싶다!
올해 일본 메이데이의 구호는 "폐를 끼치더라도 살고 싶다"였다. '폐'를 끼쳤던 여러 가지 경험을 듣던 중 어떤 장애인 분의 이야기가 인상에 남았다. "나는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내 존재 자체가 민폐였다. 그러나 나는 폐를 끼치더라도 살고 싶다." 사람들은 더 잘 살고 싶기 때문에 폐를 끼친다. 아니 폐를 끼치면서 비로소, '살고' 싶어지고, 더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진다. 관계성이라는 것은 나와 너를 가르는 선을 넘거나 지우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이날 메이데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본 최고의 번화가 시부야를 지나가면서 엄청난 폐 끼치기를 몸소 실천했다. 클럽음악을 크게 틀어대고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면서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히키코모리, 홈리스, 동성애자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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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메이데이
_ '폐'를 끼치며 거리를 활보하는 민폐적 존재들(?)의 용기와 활기!

우리는 폐를 끼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아니, 우리는 서로에게 폐를 끼치는 용기를 갖는 한에서만, 각각이 들어가 있는 방의 문지방을 넘는 한에서만, 너와 나라는 관계성을, 너와 나의 동시적인 변화를, 또 하나의 새로운 마을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아랫집 꼬마는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다녀올게요!" "다녀왔어요!" 그 소리는 우리집 문지방을 넘어 내 방에 도착한다. 나에겐 얼굴도 모르는 그 꼬마의 인사만큼 활기를 주는 '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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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10:41 2009/09/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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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물녹차 2009/09/30 13:55

    우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09/30 14:28

      첫물녹차님, 감사합니다. ^^*

  2. 낙타 2009/09/30 23:56

    감사합니다. 첫물녹차님. 첫물녹차를 마신 것처럼 힘이 납니다. 이 글은 실상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

  3. 히엔느 2009/10/01 01:40

    아-아 그린비 분들은 성실하고 참말 좋군요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10/06 09:34

      히엔느님, 감사합니다. (..*)

  4. 라도리 2009/10/04 23:07

    앜!
    이거였어요 ㅠㅠㅠㅠ 제가 한때 고민했던것!
    폐를 끼쳐도 살고싶다ㅜㅜ...
    저도 폐를 끼쳐야 살수있다!고 외치고 싶네요^.^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 그린비 2009/10/06 09:37

      저는 반대로, 이 글의 일본인들처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덜 끼칠까, 혹은 폐를 덜 받을까 하는 것들이 몸에 배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답니다.
      라도리님, 우리 폐를 끼치며 살아 보아요. ^^;

  5. 낙타 2009/10/06 01:07

    히엔느님,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린비 덕분에 생각을 써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라도리님! 감사해요. 글을 써서 누군가와 함께 느낀다는 건 기쁜 일이네요. 잊고 있었는데, 정말 기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외치세요. ^^ "폐를 끼쳐야 살 수 있다"라고. 또 다른 라도리님의 언어로.

    • 그린비 2009/10/06 09:39

      선생님 덕분에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 분들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요로코롬 댓글도 달아주시고 감사합니다. ^^*

  6. 이경 2009/10/07 01:36

    와! 잘 읽었어요. 신지영님 감사합니다~
    가끔씩 일본에 갈 때 마다 느끼는 묘한 감정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네요.
    폐를 끼치지만 웃고, 어울려 사는 곳이 되어야 할텐데..
    이 글 http://manhanging.springnote.com에 담아갈게요 ^^;

    • 그린비 2009/10/07 09:51

      이경님, 반갑습니다.
      좋은 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