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과 풀리지 않는 대답
―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를 걷다

이안지영 (평화바닥)


“어디서 왔니?”

어떤 장소가 여행지에서 삶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듣던, “어디서 왔니(where are you from/người nước nào)?”라는 말을 매일매일 눈을 마주치는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듣지 않게 되는 순간. 아침마다 들르는 카페에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당연히 “Cafe đá?(아이스 커피)”를 내미는 아주머니의 웃음과 만나는 순간. 여행객에게 1000동이라도 더 받으려고 협상하던 자판의 상인들이 제값에 물건을 건네는 그 순간. 그럴 때 내가 사는 공간이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사는 삶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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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 목바이 국경

여행지가 삶의 공간으로 바뀌면서 점점 더 “어디서 왔니?”라는 말에 대답하는 게 어려워졌다. 얼마 전 캄보디아 프놈펜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베트남 목바이에서 육지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한 후 더욱 그렇게 되었다. 육지로 된 국경을 넘으면서, 자연스레 연결되어 있는 땅에 땅따먹기하듯 금을 긋고 여기는 캄보디아 저기는 베트남으로 나눈 인간의 자의적 구분이 우습게 느껴졌다. 흐르는 시간을 우리 임의대로 1년 365일로 나누고 월화수목금토일로 구분하듯, 이어져 있는 지구의 땅을 인간의 개념으로 구분하고 쪼개 놓고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는 사실이 갑자기 목에 걸린 가시처럼 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나누는 그 목바이 국경에서 양쪽으로 100m 떨어져 사는 캄보디아 사람과 베트남 사람이 가까운 존재일까, 아니면 비행기로도 두 시간 남짓 걸릴 만큼 멀리 떨어진 호치민에 사는 사람과 하노이에 사는 사람들이 더 가까운 관계일까? 새삼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하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국민 개념이 현실 속으로 흡수되는 기분이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 사고 속에서 연결되어 실제 만나본 적은 없지만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느끼는 그 누군가의 존재를 삶 속에서 직접적으로 호흡하고 살아가는 사람만큼이나 너무나 당연히 인정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존재성은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결정된다.
 
국적, 그 풀리지 않는 물음들

얼마 전 한 베트남 신문에는 코투(Co Tu)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중부 산간 지역에 전기와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고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자녀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유행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신문에는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첫사랑」 때문에 자녀 이름을 극중 배우 이름인 찬우, 찬혁을 따서 포 룽 찬 우(Po Loong Chan Woo)와 포 룽 찬 혁(Po Loong Chan Hyuk)으로 지은 부부의 이야기와 장나라 이름을 따 아랑 티 나 라(Alang Thi Na Ra)라고 자녀의 이름을 붙인 한 베트남 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곳 호치민에서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 김치 너무 좋아해요”, “한국에 너무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베트남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언젠가 우연히 만났던,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호치민의 한 대학교 한국학과에서 강의하는 한 베트남 여성은 “한국은 제게 제2의 국가예요. 저도 한국 사람이랑 똑같아요. 누가 한국에 대해 욕하면 막 화내고 그래요”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때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흐흐흐’하며 웃음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르는 소리를 내게 된다. 마음속으로 난 누가 한국을 욕할 때 사실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데 일조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그렇게 대답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전체로 뭉뚱그려져 이야기되는 ‘한국’에서 온 ‘나’를 이곳 호치민에서 마주할 때 나는 다시 한 번 한 개인에게 국가는 무엇이며, 그 국가의 국민임을 인정하고 그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에서 벗어나 한 사회에서 구성원이자 동시에 이방인이라는 역설적 존재로서 살고 싶은 나의 욕망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고민들은 한편으로 각 국가에서 발행하는 여권이 절대 평등할 수 없는, 위계화된 세계 질서를 받아들이면서 대한민국 이름으로 발행된 여권의 특혜를 가지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를 비자 걱정 없이 다니고 싶은 나의 욕심과 마주한다.

이런 질문들과 욕망 그리고 욕심에 마주하면서, 나는 석사논문을 쓰면서 한국에서 만났던 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 그중에서도 출신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서 영주권을 취득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국적을 왜 포기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내가 만난 여성들은 “난 베트남 사람이니까”, “중국 사람이니까”, “러시아 사람이니까”라고 답했었다. 한국을 벗어난 낯선 공간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듯이, 내가 만난 여성들도 한국이라는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늘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대답해야 하는 상황들에 직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편으로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를 절감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하지만 여전히 나는 결국 내 논문에서도 풀지 못했듯이 한 개인의 국가에 대한 애착과 그에 소속되고자 하는 열망에 대한 대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정답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존의 체제와 한 개인이 각자의 삶 속에서 맺는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대답을 찾는 여정

이 글의 끝을 다시 고민하고 있는 무렵, 내가 살고 있는 부이 비엔(Bui Vien) 거리의 건물에 도둑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방과 네팔 여성 두 명이 머물고 있던 윗방에 있는 물건들을 도둑맞았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모두 돈과 사진기 등 값이 나가는 것을 다 잃어 버렸음에도 여권을 분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안도했다는 점이다. 나는 베트남 비자 만기가 이틀밖에 남지 않아 비자 연장을 신청하지 못하면 미등록이 될 뻔한 처지였고, 그 네팔 여성들의 경우에는 베트남에 네팔 대사관이 없어 만약 문제가 생기면 태국 방콕에 있는 대사관에 연락하여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돈만 빼가고 옆 건물에 버려진 가방 안에 여권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에 그 네팔 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금 국민국가의 경계와 그 속에 소속된 국민이라는, 공식문서 속의 내 존재를 다시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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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 비엔 거리와 대한민국 여권 사이

이 글을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부이 비엔 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거리의 사람으로 조금씩 인정받아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난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님을 그들의 눈빛과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여전히 각 개인에게 여권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보증이 아직은 너무나 큰 존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자동적으로 한국인이 되고,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 그 질서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나의 욕망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그저 내가 살고 있는 호치민의 한 거리에서 나라는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 이 거리의 사람으로서 이웃들과 호흡하고 살고 싶은 나의 희망 역시 아직은 현실 속에서 먼 길이다. 하지만 잠시 육지를 타고 건너갔던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끊임없이 받은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난 내 국적과 상관없이 베트남 호치민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아직은 이 풀리지 않는 대답을 찾는 여정을 계속할 수 있다.

+ 글쓴이 이안지영은 지난 7월부터 베트남 호치민에서 결혼 이주 여성을 위한 '출국 전 정보 프로그램'에 활동가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9/10/07 11:33 2009/10/0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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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구독자 2009/10/07 14:16

    전 엄마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 그린비 2009/10/07 15:22

      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