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에키 후미히코, 『근대 일본과 불교』"


1.

근대 일본에서 불교는 단지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종교이면서 또한 정치였다. 당시 불교도는 여전히 출세간을 말했지만 오히려 현실 속에서 분주하게 자신의 역할을 찾아 헤맸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 전장의 언저리를 배회했다. 죽은 자를 애써 위령(慰靈)했지만 그 행위는 마치 새로운 죽음을 부르는 진군가인 듯 했다. 그들이 행한 종교의례는 붓다가 그토록 반대한 브라만교의 희생제의처럼 시신을 쌓아놓고 거기서 숭고를 찾았다. 그곳에선 슬픔보다는 영광이 앞섰고, 생이 아니라 죽음을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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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나가시
_ 하와이 호놀룰루의 일본인 불교신자들이 등불을 물에 띄워 흘려보내는 '토로나가시' 행사를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사망한 선인들의 넋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호놀룰루로이터연합뉴스)

『근대 일본과 불교』는 바로 ‘근대’라는 특수한 시기에 일본 불교가 감당한 독특한 역할을 소개하고 분석한다. 저자 스에키 후미히코는 일본을 대표하는 불교학자다. 일본 고대불교와 중세불교를 전공하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고, 동아시아불교나 근대불교까지 연구 영역을 확대했다. 자칫 문헌학적인 연구로 매몰되기 쉬운 일본 불교학 분위기에서 그는 사상사적인 관점에서 불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거꾸로 불교를 매개로 일본사상사를 연구한다고 할 수도 있다. 본서와 자매서인 저자의 『메이지사상가론』(明治思想家論, 東京, トランスビュー, 2004)이 바로 그런 예다. 그의 불교 연구는 불교에 갇히지 않고 일본 사상사, 혹은 지성사에 놓이게 된다.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인의 경우, 근대 일본의 잘못을 분명히 알기에 불교뿐만 아니라 근대 일본 전체를 간단히 부정한다. ‘옳지 않아.’ 이렇게 단 한마디로 거절할 수는 있다. 이런 식으로는 근대 일본이 던진 문제를 파묻을 수는 있어도 해결할 수는 없다. 언젠가 땅 속에서 검은 손이 불쑥 솟아오를지도 모른다. 저자는 근대의 과오 때문에 그것을 파기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격세사관(隔世史觀)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빼고 할아버지와 나를 직접 연결시켜 나의 가계(家系)를 이해하려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일종의 억지다.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근대를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영광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찾으려는 이유에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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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에키 후미히코, 『근대 일본과 불교』
저자 스에키는 일본의 근대는 “전근대와 근대와 포스트 근대가 병존하여, 근대화를 말할 때 동시에 전근대의 잔존을 인정하면서 또한 포스트 근대를 말해야 하는 삼중성을 떠맡으며 사상이 변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런 특징을 ‘개체의 확립’과 ‘개체의 초월’이라는 근대 일본의 과제에서 찾는다. 메이지 철학자들이 그렇게도 떠들어댄 ‘주객이원론의 극복’ 같은 논의도 여기에 닿아 있다. 근대 일본 사상은 ‘근대=개체의 확립=서구화’라는 등식에 대항해 ‘포스트 근대(전근대)=개체를 초월한 존재=일본(동양)’이라는 등식을 구성하려 했다. 이런 논의는 니시다 키타로가 발동한 교토학파에서 철학적으로 완성된다.

저자에 따르면 개체초월이라는 ‘절대자나 신에 대한 추구’는 서구에서는 오히려 전근대의 것이다. 이것은 현대 일본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일본은 대단히 서구화된 것 같으면서도 이른바 전통에 대한 고수가 또한 엄청나다. 이것은 두 사람의 상반된 행위가 아니라 한 사람의 두 경향이다. 저자는 불교가 근대 일본사상의 삼중성 혹은 세 가지 과제를 담당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말한다. 불교는 “전통적이면서 그 전통의 직접적 연장과 단절됨으로써 그 사상은 이념화하고 자각적인 재구성을 허용하게 된다.” 실로 불교만이 담당할 수 있었던 역할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근대 일본에서 이런 불교의 역할은 다양하게 변주됐다. 저자는 사상사와 학술사 두 방면에서 불교의 굴절과 타협을 추적한다. 사상사 면에서 보면,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郞)는 독특한 원시불교론을 제출하여 원시불교가 현실을 주관적인 고(苦)로 바라본 게 아니라 현실 자체를 객관 사실로 긍정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불교를 현실이나 세속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와쓰지의 현실 긍정의 경향은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공(空)에 대해서 “헤겔이 역설한 ‘차별즉무차별’은 모든 인륜적 조직의 구조임과 함께 또 그 절대성에서 공(空)에 다름 아니”라고 말하고, 결국 공이나 무아에 근거해서 “불교에 있어서 보편적 도덕의 실현이 그 최대의 스케일에서 다만 국민으로서 전체성에 있어서만 실현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저자 스에키는 절대성과 현실을 겹쳐놓은 와쓰지의 이런 해석이 근대 일본의 불교해석이 빠진 함정이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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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마사오
_ 마루야마 마사오(1914~96)는 일본에서 '학계의 덴노우(천황)'로 군림한 인물이다.
저자는 전후 일본 사상계를 진두지휘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불교론에 대해서 다루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마루야마의 책이 여러 권 소개됐지만 그의 불교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 스에키는 『마루야마 마사오 강의록』을 통해서 마루야마가 평가한 일본 사상사에서 불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루야마는 현대의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원형=고층’론을 제시한다. 일본적 특수성을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실체론의 위험 속에서도 이 개념을 동원해서 일본 사상사를 쓰려고 했다. 그는 일본의 고대불교에 대해 “‘원형’적인 세상을 철저히 돌파하여 완전히 새로운 정신적 차원을 고대 일본인에 개시하는 것은 세계종교로서 불교였다”고 말한다.

마루야마는 일본적인 원형을 돌파하는 힘을 지닌 불교가 가마쿠라시대 이후 ‘굴절과 타협’을 거치면서 근대까지 진행된다고 말한다. 마루야마가 보기에 불교는 그가 말하는 ‘원형’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을 굴절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런 굴절의 이론적 근거나 배경으로 몇 가지를 지적한다. 이때 마루야마의 번뜩이는 통찰력이 드러난다. 그는 불교는 “일체상즉(一切相卽)의 이치에 의해, 현실에는 진제(진리세계)·속제(현실세계)의 간격을 매우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 스에키는 여기서 “공(空) 개념으로부터 전개한 ‘즉’(卽)은 세속에 대한 무한한 타협을 이론적으로 보강했다”고 해석한다.

3.

앞서 근대 일본불교가 하나의 정치라고 했다. 저자는 ‘불교연구’ 영역에서 어떻게 근대적 특수성을 형성했는지 분석한다. 동양적, 혹은 일본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선불교이다. 일본 근대가 서구 근대를 이른바 ‘초극’하려는 과정에서 그것은 강화된다. 유명한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에 의해 일본문화와 선은 단단하게 결합한다. 기독교 신비주의와 결합한 스즈키의 선학(禪學)은 서구에서 각광받았고,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일본적인 것이 된다. 그의 선학을 기독선(基督禪)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근대 일본사상사의 거대한 산인 교토학파에서도 선(禪)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니시다 기타로가 제시한 ‘주객미분의 순수경험’이나 ‘절대모순적 자기 동일’ 같은 개념도 선(禪)과 관련된다. 근대 일본에서 선과 선학은 수행이나 철학적 사유를 훨씬 벗어난다. 근대 일본이 수행한 침략전쟁에서 고매한 선승들이 취한 태도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얼른 보면 그들은 사무라이 정신과 불교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다. 저자 스에키는 이와 관련하여 브라이언 빅토리아의 『선과 전쟁』Zen at War을 소개한다. 선승들이 어떻게 일본의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황도불교(皇道佛敎)를 구성하는지 보여준다.

적극적으로 전쟁을 찬미하는 황도불교나 사무라이불교는 태평양전쟁 시기 식민지조선불교계에도 만연했다. 이름만 대면 일반인도 알 법한 고승이 전쟁을 찬미하고, 심지어는 승려들의 지원병 참여를 독려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분들이 해방 이후에도 불교계의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선에서 말하는 주객초월의 절대 경지나 절대 체험은 때론 일상의 윤리를 소각하고, 전장의 포화 속에서 오히려 고요함이나 평화를 만끽하게 한다. 거기서는 죽음도 없고, 생도 없다. 단지 미학적 승화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 태도도 결국 전쟁이라는 적나라한 세속의 가치를 옹호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뭐 대단히 잘난 척했지만 결국 칼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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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조선불교계
_ 국방자재로 헌납하기 위해 모은 사찰 범종(좌)과 일본에 헌납한 전투기 '조선불교호'(우). '탁발보국'이라는 명목으로 군수품과 국방 헌금 등을 헌납했으며, 1943년 학도병을 징집하자 '제 발로 걸어 나가 죽는 것이 조선 청년 승려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출처: 법보신문)

저자 스에키는 근대 일본불교의 한 단면을 아카데미즘 불교학에서 찾는다. 대학 캠퍼스가 현실 정치나 이데올로기와 멀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저자는 그가 속한 도쿄대학에서 불교학이 개설되고 근대적인 불교연구가 정착하는 과정을 통해서 곧바로 근대 일본불교의 한 특징을 부각시킨다. 중국이나 한국 불교연구자들에게 근대 일본의 불교학 정립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근대 동아시아 불교학은 일본에서 발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학)는 붓다보다는 근대 일본 불교학자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라는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불교 연구자들은 불교와 일본을 강하게 결합시키려고 했다. 근대 일본 불교학의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인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는 불교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했고, 불교 발전의 정점을 일본불교로 간주했다. 중국불교가 줄기에 해당한다면 일본불교는 꽃에 해당한다는 발상은 다소 어이없지만 그가 불교학을 행하는 방법론은 대단히 근대적이었다. 이렇게 근대적인 것과 비근대(전근대)적인 것이 착종된 채 일본의 근대 불교학 연구는 진행됐다. 이런 것은 아마도 저자가 말한 삼중근대에 포괄될 것이다.

국내에서 지금까지 진행된 동아시아 근대 연구나 아니면 근대사상사 연구에서 불교는 늘 빠져 있었다. 연구자들이 근대 연구에서 불교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유는 그것에 접근하기 참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니시다 철학이나 교토학파에서 볼 수 있듯 난해한 불교이론과 철학이론은 거의 난공불락이다. 이 책은 비록 대략적이기는 하지만 근대 일본불교의 핵심을 사상사와 학술사 맥락에서 다룬다. 저자 스에키 후미히코는 탁월한 분석력으로 근대 일본불교의 결정적인 지점을 짚어준다. 또한 그것이 어떻게 근대 일본으로 뻗어나가는지 귀띔한다. 아마도 한국 근대 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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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8 11:20 2009/10/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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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반 2009/10/09 00:35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만 마루야마 마사오 잘 생겼네요

    • 그린비 2009/10/09 10:50

      후후. 천황으로 군림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건가요..ㅋ

  2. narasimha 2009/12/07 00:41

    흔히들 중국인이 가장 세속적이라고들 하는데 일본인들은 중국인뜰 싸다구를 왕복 30차례는 칠수있을 정도네요. 이쯤 되면 고려말 강력한 억불정책을 펼친 이성계가 오히려 고마워 지는군요. 불교의 근본적인 타락을 막을수 있었으니..

    • 그린비 2009/12/07 09:47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