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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요, 아버지는 백정왕(白淨王)이며, 나의 이름은 (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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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와 선덕여왕의 상관관계?

괄호 안에 들어갈 사람은 누구일까요? 요즘 드라마 좀 보셨으면 아마 '선덕여왕'이라고 대답하시겠죠? 아, 선덕여왕 아부지는 진평왕 아니냐고염? 백정은 진평왕의 휘(諱)입니다. 어찌 되었건 괄호 안의 양반은 고타마 싯다르타, 석가모니입니다. 자, 우리 종횡무진 한국사 상권 202쪽을 펴 볼까요? 법흥왕 대에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죠. 그 다음 왕인 진흥왕은 불교를 '진흥'시키고 그 손자인 진평왕은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부처의 아버지 이름을 따 백정이라 하고 자기 와이프를 마야부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들 부부에게 아들이 태어났다면 요런 공식에 따라 이름이 '실달다'(悉達多, 석가모니)가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났고 이름은 덕만이 됐죠. 그런데 덕만이란 이름도 실은 '덕만우바이’(德曼優婆夷)의 준말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자의 몸을 빌려 태어난 보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선덕여왕 집안 = 석가모니 집안, 고로 신라 왕족은 곧 석가파. 이렇게 (말은 안 되는 것 같지만) 석가족과 왕실을 연결시키는 것을 왕즉불 사상이라고 합니다. 왕이 곧 부처이므로 왕의 권위는 자연 높아지게 되고, 이를 통해 왕권강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죠. 다시 말해 불교는 일찌감치 순수한 종교로만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변용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이렇게 종교적 기능뿐 아닌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간 『근대 일본과 불교』는 불교의 그러한 점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2000년이 넘도록 아직도 불교가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서는 그 근거를 가까운 근대에서 찾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가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한 것이 불교라는 것이죠. 메이지 시대에는 서구에 맞서 일본을 지켜낼 만한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사상, 그러면서도 세계로 통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일청, 일러전쟁기 이후에는 천황제 파시즘에 부딪쳐 진보운동이 좌절된 사회 분위기와 전쟁으로 인한 개인의 실존적 불안을 달래 줄 수 있는 종교 사상으로서, 전후에는 '일본적인 것(원형)'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학문으로서 불교는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물론 불교가 당시마다 주어진 새로운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지는 못합니다. 메이지 시대에는 천황제 국가주의에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종교의 자유에 만족했고, 침략전쟁기에는 개인의 내면에 매몰된 나머지 너무나 쉽게 국가주의에 종속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불교가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근대 일본과 불교』에서는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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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_ 막장의 시대, 현대의 불안을 잠재우는 불교.

이제 역사책 속 근대도 끝나고 당시 불교가 담당하던 역할도 끝났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국가주의의 함정이, 사회 혼란으로 인한 개개인의 불안이 오늘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국가는 점점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고(요즘에는 그렇지도 않기는 하지만... 김제동을 퇴출시키다니요! 그렇게 티나게...) 개인들은 이제 전쟁 같은 큰일보다는 사소한 일로 더 불안해합니다. 또 다른 막장의 시대라는 점에서 현대의 불안은 근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불교식 영성 수련법이 인기를 얻고, 주말이나 휴가철에 템플스테이가 성황을 이루는 것도 불교를 통해 불안을 잠재우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에게 불교가 절실한 이유는 불교는 “자기 자신과 과거에 무자각인 채로, 지니고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는 우리들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우리의 내면과 우리와 연기(緣起)되어 있는 사물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통해 번번이 좌절하게 만드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를 버텨내게 합니다. 그 새로운 가능성을『근대 일본과 불교』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 편집부 김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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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11:20 2009/10/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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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8/07 03:1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10/08/08 00:50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