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낡고 버려진 '진리'들은 거의 언제나 교과서에서 제거되어 대중으로부터 감춰지며, 말끔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논증의 경로만이 남게 된다. 그 결과, 다음 번에 과학자가 대중을 상대로 남자들은 강간 유전자를 가졌다거나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은 유전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다거나 하는 발견을 공표하면, 그 보고는 즉각 통용되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거나 말거나 한 후, 얼마 안 가 우리의 진리로부터 모습을 감추는 일이 반복된다. 과학은 그보다는 더 흥미로운 일이다.
(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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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얼마 전 ‘인문’출판사 그린비(^^;)에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학교 다닐 적에 과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던 저라 사실 읽을 엄두도 못 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화학을 전공했다가 생물학으로 옮겨간 ‘유전학자’, 존 벡위드의 자전적 에세이라니! (수학은 좋아했으나 과학이 싫어 인문계를 선택한 데다가 과학 중에서도 생물이 가장 싫었던 걸요ㅠㅠ)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책의 역자 선생님과 인터뷰도 해야 했고, 또 꼭 읽어보라는 주간님의 말씀도 있었고, 기타 등등 ^^;;)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습니다.

책을 펼쳐 목차를 보니 1장의 제목이 「메추라기 농부와 과학자」이고, 마지막장인 13장은 「과학자와 메추라기 농부」입니다. 존 벡위드는 ‘메추라기 농부와 과학자, 혹은 과학자와 메추라기 농부’처럼 전혀 상관성 없어 보이는, 별개의 것으로만 존재할 법한 과학과 사회, 그 둘 사이를 넘나들며 사유하고 또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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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벡위드(Jon Beckwith)
_ ‘민중을 위한 과학’을 꿈꾼 과학자이자 사회운동가, 존 벡위드.
메추라기 농부는 존 벡위드의 대학시절 친구입니다. 대학시절, 존 벡위드가 보기에 그 친구는 온전히 과학에만 몰두하는 것 같았죠. 그에 반해 존 벡위드는 과학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앞으로 계속 과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벡위드는 결국 과학자가 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만나게 된 그 친구는 메추라기 농부가 되어 있었죠. 이 놀라운 변화는 더 놀랍게도,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말이죠. 과학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친구는 과학을 버리고 메추라기 농부로서 한 마을을, 그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존 벡위드는 어떤 계기로 분리되어있던 과학연구와 사회운동을 통합시키려 노력하게 되죠. 과학은 결코 사회와 별개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며, 과학자 또한 세상과 담을 쌓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삶 전체를 통틀어 증명합니다. 그는 13장 「과학자와 메추라기 농부」 말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했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성공했건 그렇지 못했건 간에 말이다. 나는 과학에 남기로 했던 내 선택에 만족한다. 내가 에너지의 일부를 내가 속한 분야 내에서 사회적·정치적 행동주의에 쏟지 않았다면 과학을 계속할 수 있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같은 책, 286~287쪽)

나는 우리 과학자들이 하는 일을 사랑하며 이 점에서 과학이 뭔가 줄 것이 있다고 믿지만, 과학의 힘에 대해서는 덜 오만한 태도를 선호한다. 우리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좀더 겸손해야 하며, 과학의 객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과학을 사회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같은 책, 290쪽)

책을 읽고, 존 벡위드가 활동했던 <민중을 위한 과학> 단체와 같은 <시민과학센터> 활동하고 있는 김명진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학교 공부로서의) 과학이라면 질색팔색을 하고 (연구 학문으로서의 과학이라면) 우리 사회를 더 흉악하게 만들 뿐이라고 회의했던, 사실은 애초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메추라기 농부도 되지 못한 일반 대중인 저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앞에 앉아있던 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달까요? 과학이 우리 삶에 많은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에 무지하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연구와 사회적 책무를 연결하려는 과학자들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사실, 이 두 사실은 필연적 인과관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의 처음에 인용했던 구절에서 등장하는 대중-단지 과학 연구를 일개 뉴스거리로 소비하고 단순 정보로 습득할 뿐인-으로 남지 않고, ‘과학’과 접속하는 ‘시민’이 될 때, ‘노벨상 수상을 꿈꾸는 과학자’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과학을 꿈꾸는 진보적 지식인’이 많아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 존 벡위드의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책 소개 보러 가기 >> | 저자 소개 보러 가기 >>
++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역자 인터뷰는 이번 주 목요일, 포스팅 예정입니다. ^^*

- 마케팅팀 서현아
2009/10/19 16:07 2009/10/1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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