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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양립 불가능했던, 그에게는 분리 불가능했던… 두 가지 길과 하나의 인생"


우리가 보통 갖고 있는 과학자의 이미지란 실험실에 처박혀 흰 가운을 입고 냉정한 눈빛으로 실험 그 자체에만 빠져 있다거나, 아니면 만화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박사’처럼 과학기술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마의 화신이거나 하는 양 극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전자는 과학 자체는 사회와 분리된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룬다는 관념에, 후자는 근대 이전의 연금술사(가치 없는 쇳덩이를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마법과 현대 과학의 중간쯤 되는 자연철학자들)을 죄악시한 서구의 편견에 기대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과학자가 되려면 착한 과학자가 되어야지, 노벨상쯤은 목표로 두고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살아야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우리에게 주입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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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벡위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원서
그런데 여기, 다른 종류의 과학자가 있습니다.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의 저자 존 벡위드지요. 그는 세계 최초로 살아 있는 유기체(대장균)의 세포로부터 순수한 유전자를 분리해 낸 세계 최정상급 유전학자이자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급진적인 시민과학운동에 평생을 바쳐 온 특이한 과학자입니다. 이 책의 원제 Making Genes, Making Waves(직역하면 “유전자 만들기, 운동 만들기”)는 그의 이런 이중생활을 표현한 제목이지요.

그런데 영어로 하면, 각운도 맞고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이 제목을 한국어로 옮기자니 추상적인 느낌이 들어 독자 여러분이 책의 내용을 바로 알아보실까 하는 걱정이 약간 들었습니다. 그래서 20여 개의 제목안을 만들어 편집부&마케팅팀과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다시 옮긴이들과 의논을 거친 끝에 책 내용을 직접적으로 압축해서 표현한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라는 제목을 지었답니다. 과학이나 사회운동은 여러분 모두 아시는 것이고, 이 제목에서, 아니 이 책에서, 아니 이 저자의 삶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바로 “사이에서”이지요. 사건이 생기는 건 언제나 ‘사이’에서거든요(여기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보고 싶으시면 그린비에서 올해 초 출간한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을 강추합니다^^). 이 글에서는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살아온 벡위드의 삶이 왜 그리 멋진지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요즘엔 가수가 연기를 하고, 배우가 음반을 내는 세상이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하나만 잘하라고 윽박질렀지요?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인 1960년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과학자에겐 그보다 훨씬 심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 이미 ‘그해 최고의 젊은 생물학자상’(일라이릴리 상)을 받은 벡위드였지만, 과학 내부의 오류와 과학만능주의에 대해 직접 시민들에게 고발할 줄 아는 용기 있는 과학자라는 이유로 미국 과학계에선 과학계의 배신자, 반역자, 심지어 ‘빨갱이’ 소리를 듣고, 하버드 대학 교수자리마저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꿋꿋이 평생 연구도, 사회운동도 멈추지 않았지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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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벡위드와 그의 학생들
_ 사진 가운데 선글라스를 끼고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바로 벡위드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의 힘은 어쩌면 이런 젊음(?!)에서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는 노조 탄압, 매카시즘(반공주의) 열풍 등을 통해 급격히 보수화되었답니다. 전쟁을 겪은 어른 세대의 불안과 공포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젊은이들은 달랐습니다(어른과 달라야 젊은이지, 같으면 어디 되겠습니까?). 꿈을 꾸고 싶었고, 인간다운 삶을 찾고 싶었고,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비트 문학과 재즈가 대학가에 번성했고, 1960년대에는 반전운동과 포크 음악에 심취한 히피 세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70대의 할아버지 과학자지만, 그때는 대학생(그리고 대학원생)이었던 벡위드도 딱딱한 과학에 갖히기보다는 문학에 심취하고 친구들과 밤새 술 마시면서 재즈를 듣던 젊은이였죠. 그런 문화적이고 인문학적인 경험,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 삶에서 ‘주인됨’(자기 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흑인도, 여자도, 못 배운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공산주의 국가 사람도, 쿠바 사람도, 비정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말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과학”(민중을 위한 과학)을 꿈꾸게 되었던 게지요. 즉 벡위드는 애초부터 자신이 연구하고 생산한 과학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도 없는, 또는 과학이 어떻게 명성과 돈을 가져다줄지만 생각하는 과학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버드대 교수로서 부동산 업자와 결탁한 하버드 대학이 주변 빈민촌을 철거해 병원을 짓고, 빈민들을 쫓아내려 할 때 직접 개입한 것도, 하버드 의대에 흑인 입학 정원제를 도입한 것도, 나치즘의 한 뿌리가 되었던 우생학 운동의 어두운 역사를 밝혀내서,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소리 높여 알리고자 한 것도 그 자신이 ‘전형적인 과학자’나 ‘전형적인 사회운동가’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어떻게 해서 ‘참다운 과학자’가 될 수 있을지,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을 더 사랑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 온 결과인 것입니다. 이 책을 편집하면서 저도 제가 열심히 만드는 책이 저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런 감동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 편집2팀장 박재은
+ 오늘 포스팅하기로 했던 역자 인터뷰는 다음주에 포스팅됩니다.
2009/10/22 16:57 2009/10/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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