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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말입니다. 유토피아가 가상의 이상향이라면, 디스토피아는 비참하고 살벌해진 가상의 세계를 말하지요. 조지 오웰의 『1984』나 영화 『매트릭스』 같은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작품들을 보아도 더할 수 없이 비인간적인 사회의 모습은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유토피아의 뜻을 새겨 본다면, 디스토피아는 ‘가상의’ 암흑세계라는 일반적인 의미보다는 더 의미심장한 의미로 변신합니다.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장소’, 따라서 바로 지금 이곳에도 존재하는 장소, ‘디스-토피아’(this-topia)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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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재’를 반영하지 않는 디스토피아 작품은 존재할 수도 없고, 매력적이지도 않겠지요. 그런 면에서 지금 소개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지나치게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1932년 발표된 소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치밀하면서도 ‘가능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황우석 사태와 신자유주의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는, ‘기술력’만 받쳐준다면 소설 속 ‘멋진 신세계’를 이룩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  멋진 신세계 속으로

먼저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한 소개가 필요하겠지요?
간단한 브리핑 먼저 쏘겠습니다.

계급구조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모두 인공적으로 배양됩니다. 병속의 배양액에서 자라는 태아는 각각, 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 엡실론(ε) 계급으로 나뉘어지고, 여러가지 ‘처리’를 통해 계급에 맞는 신체와 지능과 적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특히 멋진 신세계에서 알파와 베타 계급을 제외한 태아는 모두 ‘보카노프스키법’으로 처리됩니다. 보카노프스키법이란 태아에 강력한 엑스선을 쏘아 비정상적으로 증식 분열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하나의 수정란에서 최대 96명의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입니다. “아흔여섯 명의 일란성 쌍생아들이 아흔여섯 개의 동일한 기계를 조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보카노프스키법의 ‘로망’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계급에 맞게 태아를 표준 이하로 만들기 위해서 낮은 계급의 태아에게 더 적은 양의 산소만을 공급합니다. 엡실론 계급쯤 되면, 극도의 산소 부족으로 단순한 일을 처리할 지능과 신체밖에는 남지 않게 됩니다. 열대에서 일할 사람은 더운 날씨를 좋아하도록, 우주선 수선공은 몸이 거꾸로 된 상태를 좋아하도록 미리 조건반사 훈련도 시키구요. 태어난 후에도 낮은 계급들이 지식이나 아름다움을 싫어하도록 책이나 꽃을 만지게 하고 전기충격을 주는 등 가혹한 조건반사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멋진 신세계에서 태어나는 이들은 모두(세계총통에서부터 하수구청소부까지) 자신의 직업과 계급에 맞는 신체와 상태로 태어나고, 철저한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자신의 계급과 직업, 그리고 이 조화로운 신세계에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희

멋진 신세계에는 ‘소마’라는 환각제가 있어 사람들의 모든 불만을 해소합니다. 소마는 과거 알코올음료나 마약이 가졌던 부작용을 완벽하게 없앤 새로운 환각제로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고통, 고민, 고독에도 소마를 삼킵니다. 가벼운 고통에는 반 그램짜리 한 알, 정말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일 그램짜리 세 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낮은 계급들은 공장일이 끝날 때 소마를 배급받는데, 주말을 환각 속에서 보내도록 주말에는 더 많은 소마를 배급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유로운 성희(性戱)는 의무 사항이며, 임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한 사람과 오랜 관계를 맺는 것도 비정상적인 일로 인식하도록 조건반사 훈련이 이루어집니다.
그밖에 상층 계급은 헬기로 ‘드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전자골프나 에스컬레이터식 테니스를 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회

세계는 열 명의 세계총통에 의해, ‘공유, 균등, 안정’을 모토로 다스려집니다. 또한 ‘수선보다는 버릴 것을 권장하고’, 대량생산체제를 주창한 포드가 신으로 섬겨지는 등 자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서 포드신의 상징은 십자가의 윗부분을 쳐낸 T자입니다(포드가 최초로 대량생산한 자동자가 T형 포드였지요).

야만인 보호구역

문명화된 멋진 신세계 밖에는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공간에서 어떤 전복의 가능성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문명세계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마음도 갖지 못합니다. 종종 허가받은 알파 계급의 사람들이 연구나 경험의 목적으로 야만인 보호구역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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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보다 더한 세계


브리핑을 열심히 읽었다면 아시겠지만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보다 훨씬 강고합니다. 사실 『1984』의 전체주의는 멋진 신세계에 비하면 허술한 면이 있습니다. 『1984』에서는 집집마다, 거리 곳곳마다 감시의 눈이 뻗어 있지만, 애당초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합니다(결국 고문과 세뇌로 무기력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생필품도 열악하고, 사람들은 끊임없는 전쟁과 감시의 공포 속에서 ‘대형’에 대한 충성심을 과장합니다. 물론 이런 세계도 끔찍합니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는 사람들이 애당초 체제에 반하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사고 능력을 갖고 태어나도록 허용된 알파와 베타 계급도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하도록, 그리고 다른 계급이 그렇게 노동으로 자신들을 떠받드는 것이 전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따라서 다른 계급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인식하도록 수만 번의 조건반사 훈련을 받습니다. 결국 어떤 계급의 사람도 체제를 가로지를 수 있는 사고를 할 수 없는 체계인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디스토피아 작품이 그렇듯, 이 강고한 세계에도 클리나멘(Clinamen)의 요소는 끼어듭니다. 「매트릭스」에서는 네오를 위시한 매트릭스 밖의 사람들이, 『1984』에서는 역사를 조작하는 당국에 의문을 품는 윈스턴이,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체제 안으로 우연히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바로 이 클리나멘의 요소지요. 멋진 신세계에서는 우연히 베타계급의 여인 하나가 야만인 보호구역에 남겨지면서 낳게 된 존이라는 ‘야만인’이 그 역할을 맞습니다.

하지만 야만인 존은 다른 작품들의 히어로들처럼 체제를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는 아무런 제재 없이 멋진 신세계의 문명인들 사이로 파고들지만, 그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온통 인공적인 음악과,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여가활동이 넘쳐나는 ‘문명’세계에서 야만인이 읊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책의 제목 ‘멋진 신세계’도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들은 공허할 뿐입니다. 결국, 이 체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세계인지를 인식한 야만인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만의 ‘야만’의 생활을 시작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몰려든 구경꾼들과 언론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존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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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멋진 우리의 세계!!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비극은 이 책의 세계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멋진 신세계’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에도 몇 명 있을 겁니다. 하층 계급은 누구든 태어난 계급에 따라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세상. 일하다가 짤리는 일이 있어도, ‘전체를 위한 희생’이라며 술이나 퍼마시고 잠자코 죽어주는 노동자들이 공장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세상. 혐오스러운 다른 계급과 섞이지 않고 골프 치고 테니스 치고, 마음껏 성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세상. 그러면서도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세상. 그 뻔뻔스러운 양반들이 이런 세상을 마다할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 그 분들뿐이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세상을 만들고저 불철주야 애쓰는 분들이 계신 것을... 일찌기 황우석 박사께서는 ‘보카노프스키법’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신 바 있고,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어떤 분께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멋진 신세계’의 초석을 놓으려 막판까지 애쓰고 계십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앉게 될 어떤 분은 뭐 이야기할 거리나 있나요?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더 비참한 것은 그 세계가 부서지지 않는 세계라는 겁니다. 체제를 가로지르고자 하는 야만인의 노력은 조건반사훈련으로 다져진 문명인들의 선입관을 뚫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 가치관이 만연한 오늘의 세계, 아니 세계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그 파국적인 가치관이 만연해 있는 한국에서도 멋진 신세계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싶습니다. 자신도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불안과 부조리를 철폐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억울하면 공부나 더 할 것이지”, “억울하면 돈이나 잘 벌 것이지”라며 냉소를 날리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감마나 엡실론 계급의 가치관이 들어차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가치관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나갈 ‘멋진 신세계’가 이미 저만큼 앞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모르고 말초적인 유혹에나 시달리며 하루하루 그저 ‘만족’하며 살아가고들 있는 것은 아닌지...

- 편집부 박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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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은이), 이덕형 (옮긴이) | 문예출판사

출간일 : 1998-10-20 | ISBN(13) : 9788931003581
332쪽 | 210*148mm (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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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1 11:04 2007/11/0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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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디스토피아? This 토피아?!

    Tracked from 香花의 얼음성 2007/11/01 11:36  삭제

    <a href="http://greenbee.co.kr/blog/81">This 토피아</a>위의 글을 보면서 느낀점1. 세계는 결국 완전한 통제로의 지향을 꿈꾸고 있다.2. 또한 통제는 유기적인 구조론의 유연성만 확립하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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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샹화 2007/11/01 11:19

    잘보았어요.
    저도 SF를 좋아해서 이런 주제로 나가니 이해가 더 잘되네요
    제 이글루스로 트랙백 겁니다~

    • 그린비 2007/11/01 11:48

      샹화님 반갑습니다.
      책을 통해서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니 너무 좋네요. ^^*

  2. 소샬걸 2007/11/02 16:47

    얼 글 좡난 아닌데요~~완전 멋지잖아!!
    옆에 계신 분의 글을 읽을 때마다 깜딱 놀란당께롱~~!! 더 멋진 글 기대해요!!

    • 그린비 2007/11/02 17:16

      아, 옆에 계신 분이시로군요! 이런 반가워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