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야콥 타우베스" the unknown Jacob Taubes

조효원 (문학평론가)

혹시 여러분은 이 문장을 기억하시는지?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흐만, 『삼십세』
성서 속 기적을 행하는 예수를 상기시키는 이 문장을 들어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이것이 1973년 로마에서 죽어간 오스트리아 시인의 산문 「삼십세」의 마지막 문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 것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작가의 죽음(미셸 푸코)에서 출발하여 문학의 죽음(가라타니 고진)을 거쳐 문자의 죽음(프리드리히 키틀러)까지 운위되는 최첨단의 오늘, 수십 년 전 불타는 이국의 방에서 끔찍한 화상을 입은 채 죽어간 외국 시인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적잖이 시대착오적인 일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때 「삼십세」의 작가는 유명했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서른 살’을 지날 무렵의 쓸쓸하고 비루하며 고민 많은 모든 인생들에게 그 이름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른 살’의 대명사, 그녀의 이름은 잉에보르크 바흐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타우베스, 『서구 종말론』
한편, 오늘날 사상의 세계에서 지금껏 거의 알려진 적이 없었던 이름 하나가 흔들바람을 타고 퍼져나가고 있다. 과학과 구조, 해방과 탈주의 거인들이 차례차례 20세기의 세계를 휩쓰는 동안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때가 찰 것’을 기다리던 이름. 너무나 진지해서 오히려 시대착오적이었던 사유의 거인. 1947년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 『서구 종말론』(Abendländische Eschatologie)을 통해 일약 학계의 총아로 등장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뒤 그곳에서 만난 당대 최고의 철학자 게르숌 숄렘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으며—숄렘은 그를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으로 초청한다—, 이후 파리 시절에는 만년의 칼 슈미트로부터 전화를 받고—칼 슈미트가 ‘전화’라는 문명을 이용하는 일은 그전에는 결코 없었고, 따라서 칼 슈미트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깜짝 놀랄 만한 이슈였다!—슈미트의 고향인 플라텐베르크로 달려가 바울의 「로마서」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던 20세기의 위대한 지성. 그가 존경했던 벤야민처럼 사후에야 발견되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이 철학자의 사유는 오늘날 사악한 이 세계를 향한 강력한 도전이 되고 있다. 종말론의 대가, 그의 이름은 야콥 타우베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감벤, 『남겨진 시간』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조르조 아감벤은 바울의 신학에 관한 연구서인『남겨진 시간』이란 책을 통해 타우베스에 대한 추모를 행한 바 있다. “우리의 이 강의는 타우베스가 하이델베르크에서 행했던 강의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메시아적 시간을 역사적 시간의 패러다임으로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우베스에 대한 짧은 추모의 말을 남기지 않고서는 시작될 수 없는 것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타우베스는 신비와 수수께끼로 점철된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사유를 메시아주의의 주창자이자 헬레니즘 시대의 세계 철학자인 사도 바울과 연결하여 사유할 것을 요청한 최초의 인물이다. 파국의 세계인 현대에 가장 절박한 사유로서 바울의 정치 신학을 부활시키고자 한 타우베스는 벤야민을 연구하는 자신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들어보게, 자네는 일요 성경학교에 나가서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다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잊혀진 바흐만과 알려지지 않은 타우베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의 철학자가 한때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잊혀진 작가 바흐만과 깊은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5년 타우베스의 사후에 발간된 서간집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바흐만과 타우베스는 오랜 기간 비밀스러운 연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하이데거를 전공한 철학 박사 출신의 천재 시인과 박사 학위 논문을 통해 서구 종말론의 역사를 새롭게 정립한 천재 철학자의 밀월 관계. 이 밀월 관계를 염두에 두고 보면, 바흐만의 다음과 같은 문장은 마치 타우베스를 향해 쓴 일기의 한 문장처럼 읽힌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바울과 벤야민을 따라 진정한 메시아니즘을 고민하며, 철학과에서 헤겔 강독보다는 오히려 성경 읽기 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던 희귀하고 기묘한 철학자 야콥 타우베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자신의 연인에게 응답하였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아이온의 시간 너머에 있는 참된 초월적 신, 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신(deus alienus)으로부터 온다.” 잊혀진 바흐만과 알려지지 않은 타우베스. 이 비밀스런 연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수수께끼—바흐만의 시와 산문들, 타우베스의 강의록들—를 풀어보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바로 이러한 시대착오(anachronism)야말로 그들이 미래의 인간들에게 가장 염원했던 것임에 분명하다. 하므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알라딘 링크
알라딘 링크
2009/11/13 09:54 2009/11/13 09:54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81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