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을 넘어서는 '호모 파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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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타나 作 <공간개념>
_ 폰타나는 2차원의 회화 표면에 구멍을 뚫음으로써 화면 위에 바깥을 도입한다. 3차원을 '재현'하는 대신 3차원을 '생산'하는 구멍. 새로운 사건은 언제나 '바깥'에서 들이닥친다.

재현은 ‘주어진 것’에서 출발한다. 주어진 행복, 주어진 사랑, 주어진 삶. ‘주어진 것’을 재생하고 반복하는 것, ‘주어진 것’을 향해 매진하는 것이 선善이고, ‘주어진 것’을 부정하는 모든 것은 악이라는 게 재현의 논리다. 하지만 동사로서의 삶은 매번 ‘주어진 것’을 넘어 예기치 못한 것을 생산한다. 재현은 뭘 상상하든 상상 가능한 것 안에 머무르려고 하지만, 삶은 뭘 상상하든 언제나 상상을 초월해서 펼쳐진다. 그것은 삶이 ‘산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재현이라는 개념은 결정적으로 삶에 대해 적대적이다.
(채운, 『재현이란 무엇인가』, 44쪽)

얼마 전 그린비 블로그 이벤트(이벤트 바로가기)를 통해 ‘재현’ 개념이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개념어라기보다 일상어에 가까운 이 ‘재현’은 ‘완벽’, ‘성공’, ‘신화’ 같은 단어와 곧잘 어울렸었죠. 완벽 재현, 신화 재현, 재현 성공… 그러고 보니, 위의 문장이 더 깊이 와 닿습니다. 주어진 행복을 좇아 주어진 삶의 모델을 완벽히 재현했을 때 우리는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죠. 이렇게, 완벽한 사랑을 갈구하고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지금-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사랑, 살고 있는 삶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재현’의 숙명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바로 이 재현적 삶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명품 옷·명품 가방 하나쯤 걸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에, 돈은 10억 쯤 기본으로(응?), 집은 최소 몇 평 이상의 (주상복합!) 아파트, 그리고 잘 나가는 차 한 대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헥헥, 더 있을 것 같지만…)’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아닌가요? ^^;). 상상 가능한 것, 그 안의 삶일 뿐인 이 틀에서 이탈하면 우리는 인생의 ‘루저’(loser ^^;)가 되어 버리고 말죠.

하지만, 채운 선생님은 오히려 이 재현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틀 바깥에서 또 다른 삶을, 또 다른 자신을 창안하는 (새로운) ‘호모 파베르’가 되라고 말이죠. ^^

"재현의 사유는, 바깥을 통해 그리고 그 자신이 바깥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생명과 신체를 배반한다. 정신에게 생명의 역동성을 되돌려 주기, 바깥의 바람을 불게 하기! 이것이 재현이 만들어 놓은 일체의 초월적 망령과 싸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같은 책, 97쪽)

- 마케팅팀 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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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2 11:59 2009/11/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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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러멜대장 2009/11/12 16:34

    아, 생명체도 자기복제라는 '재현'을 하지만, 돌연변이나 기타 환경에 의해 있는 '그대로의 재현'에서 가끔 벗어나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은, 다양한 구성으로 풍요로워지고요. 큭, 인간 세상도, 주어진 틀에서 벗어난 가치관, 사유 등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 그린비 2009/11/12 20:47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재현될 수 없는 차이를 생성하면서 그 틀을 조금씩 깨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