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전자 속 다문화에 대한 단상

최현모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처장)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에 대한 논의는, 80년대 말 시작된 이래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는 한국으로의 노동 이주와, 최근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는 결혼 이주, 그리고 이들 결혼 가정의 자녀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응하려는 일련의 사회적 움직임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다문화가정, 다문화교육, 다문화강사, 다문화사업, 다문화강좌, 다문화축제, 다문화마을, 다문화감성, 다문화센터, 다문화현상, 다문화사회, 다문화정책, 다문화주의…”

얼마 전 한 평화인권단체의 시민교육 프로그램에서 ‘다문화사회와 이주노동자 인권’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이주노동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에 몸을 담아 왔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언급이 많아진 ‘다문화’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했던 탓에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 ‘다문화’ 혹은 ‘다문화사회’에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찾아 정리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사회에 ‘다문화’라는 말로 시작되는 신조어가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었고, 더불어 ‘다문화주의’로 대변되는 다문화사회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지향이 가진 의의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인식을 넓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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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로젠 作 <quilted multi-ethnic group>
_ 다양한 민족, 인종, 문화로 구성된 '다문화사회'

‘다문화’란 말은 문자 그대로 다양한 문화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문화현상 혹은 다문화경향’이란 비교적 단일하고 동질적인 문화로부터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가 혼재하거나 혹은 변화해가는 현실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다. 반면 ‘다문화주의’라는 말은 다인종·다민족 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다루는 정책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된 것으로서 사회 내에 복수의 문화가 공존함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차이에 대한 똘레랑스(관용)를 중시하며, 주류문화와 하부문화 사이의 서열과 경계를 없애 감으로써, 문화 간 소통이 활발해지고 보편적 공감대를 가진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는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다소 규범적인 개념이다. 여기서 ‘다문화사회’란 민족, 인종, 종교, 언어, 이념의 벽을 넘어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회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리며, 존중과 소통을 통해 공생·공존하는 ‘더불어 사는 열린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오늘 한국사회에는 전체 인구의 2%를 넘는 116만여 명의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국제결혼 비율도 전체 결혼의 평균 12%, 농촌지역의 경우는 40%에 이르고 있는 가운데 그 증가세가 향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실제 최근 정부기관의 통계자료들은 하나같이 세계 최저 출산율과 초고속의 고령화를 보이고 있는 한국사회가 머지않은 미래에 급격한 인구감소와 더불어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것임을 경고하면서 그 공백을 메울 이주민 유입의 필연성을 시사하고 있다. 관련 통계조사를 실시한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0년 후에는 인구 20명당 1명, 그리고 40년 후인 2050년이면 인구 10명당 최소 1명은 외국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단일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온 한국사회가 바야흐로 다인종·다민족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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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作 <사투르노>
_ '우리'는 '우리' 아닌 것들을 배척하려 하거나 혹은, '우리'라는 동일성으로 환원시키려 합니다. '다문화사회'로의 지향은, 다른 것을 같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팎의 다름과 부딪히며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예측에 부응하여 거의 모든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너나 할 것 없이 대대적인 ‘다문화’ 관련 정책을 앞 다투어 시행하고 있고, 한국사회 역시 ‘다문화’를 부여안고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대와 사회변화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이런 현상을 그리 곱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양적으로만 쏟아지는 ‘다문화정책’이라는 허울 속엔 일방적인 동화의 강요만 있을 뿐, 상호 존중과 소통을 통해 질적으로 나아지는 열린사회로서의 ‘다문화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접했던 자료 중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픈 책이 있다.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박기현, 2007, 역사의 아침)이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늘 삶과 죽음, 고통과 행복, 기쁨과 슬픔에 대해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고대로부터 근대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구(流求), 인도, 베트남, 몽골, 여진, 위구르, 거란, 흉노, 몽골, 중국, 일본, 유럽 등으로부터 온 이방인들의 발자취를 다양한 역사자료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은 대표적인 귀화 이방인 9명의 삶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들을 조명하면서 개인적 선호, 정치적 망명, 집단적 유민 등 다양한 경로와 이유로 이 땅에 들어와 함께 살아온 귀화인들의 모습과 시대별 흐름을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하나하나 짚어내고 있다. 역사 속 귀화 이방인들의 모습은 다른 문화와 문물을 전함으로써 우리사회 각 분야의 발전과 풍요에 기여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았던 역사 속의 시대상은 배타와 차별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더불어 사는 열린사회’였다.

2001년 인구조사(통계청)를 보면 긴 역사 속에서 함께하며 ‘우리’가 된 이방인이 생각보다 많다. 이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민의 26% 가량이 귀화혈통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래 성씨(285개)보다 새로 만들어진 귀화 성씨(442개)가 훨씬 많다고 한다. 또한 전래 성씨도 그 유래를 보면 40% 가량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이 땅에 정착한 이방인들을 그 조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줄곧 다양한 이방인들과 더불어 살아 온 셈이다. 우리가 ‘우리’라고 규정하고 있는 ‘우리’ 안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가 아닌 ‘우리’가 함께 해왔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요구된다고 한다. 21세기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며, 마치 역사상 초유의 사회 격변이 눈앞에 닥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긴긴 역사의 흐름을 거쳐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하는 “다문화 유전자”에 대해 되새기며 조상들의 ‘다문화성’을 배우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노래 구절로 우리를 규정하는 한, 진정한 ‘다문화사회’로의 발전은 요원할 뿐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동안 ‘다문화’를 말하는 자리에 설 때면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라는 책 속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2009/11/18 11:40 2009/11/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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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9/11/22 01:17

    다문화는 이제 이 시대에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가합니다. 아직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미비하여 그 정책상 효과가 없지만 단기간에 소통과 융합이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문화를 인정하고 일관된 정책만을 강요하는 것은 현지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역차별적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린비 2009/11/23 09:44

      음.. 무슨 말씀이신지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습니다만.. 의견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