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새로 출간된『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는 아시아와 제3세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 유재현이, 6개월간 캄보디아에 머물면서 훈센 독재와 그 체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여러분과 함께 읽었으면 하는 꼭지를 몇개 뽑아서 그린비 블로그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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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가운데에서 피를 뽑던 아이는 뜻밖의 불청객이
나타나자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아이의 시선을 피했다.
     잔인하군. 잔인하군.
     나는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서 있는 논에서 두 시간 떨어진 프놈펜에는 거실의 금고에 백만 달러를 현금으로 가진 인간들이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금고를 모두 털고 외국에 숨겨둔 돈을 모두 찾아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린다면, 아니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이라도 그들의 손에서  되찾아온다면, 아이는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서 크메르 문자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세상은,
     아이를 논바닥에 붙박아두고, 코를 박게 하고, 흙투성이 문맹으로 만들고 있다.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있는지 나는 알고 싶다.
     나는 기억한다.
     선글라스를 낀 군인이 지배하던 어느 혹한의 겨울날,
     70년대 초 서울 동쪽 변두리의 한 골목에서 김이 피어 오르던 수챗구멍을 뒤져 멸치대가리를 찾아 입에 넣고 있었던 내 또래 아이의 시선을.
     나는 정말 무능하지만.
     나는 정말 비겁하지만.
     그 시선을 내 기억에서 지워버릴 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
     인간으로서,
     나는 증오해야 할 것을 증오한다.
     내 기억 속의 그 시선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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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 지음|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문학에세이, 사회과학에세이

발행일 : 2007년 10월 30일 | ISBN : 978-89-7682-100-3
신국판 변형(152×218mm)|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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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30 17:51 2007/10/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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