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CAL’ 담론의 현장, 미국-멕시코 국경
 
박정원 (University of Northern Colorado 교수)

올해 멕시코의 ‘죽은자들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샌디에고-티후아나 국경에서는 한 인권단체가 기획한 작은 행사가 열렸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1994년 이래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 생사를 달리한 오천 명이 넘는 ‘불법’이민자들을 위해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의 담에 십자가 오천 개를 걸어 이들의 죽음을 추모함과 동시에, 세계화가 빚어낸 슬픈 아이러니를 증언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필자가 미국-멕시코 국경의 문학과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세계 최대의 국경도시 티후아나에 일년여 간 현장연구를 다녀온 이유도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이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삶에 미친 영향의 역설과 아이러니를 ‘국경’을 통해 체험해보고 싶어서였다. 

마누 차우(Manu Chau), 「웰컴 투 티후아나(Welcome to Tijuana)」

스페인어 ‘frontera’, 영어로 ‘border’는 ‘경계’ 혹은 ‘국경’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계’라는 용어는 거의 사회 전 분야를 막론하고 세계화의 패러다임이나 현상, 그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어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멕시코 국경은 실제로 ‘경계’라는 담론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모델 중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80년대 말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새로운 시대적 상징이 된 이 ‘국경’이 주목받게 된 배경은 경제적인 세계화와 함께 새로운 시대적 이론과 담론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이론과 탈국가 논의는 이분법의 해체와 기존의 국가중심의 사고와 틀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오히려 이산, 이주 그리고 그로 인한 경계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문화와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하였고, 영미 탈식민주의 이론이 제기한 ‘혼종성 이론’은 경계 연구라는 지역연구의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시해 주면서 다양한 문화가 가로지는 공간‘성’에 주목하게 된다. 따라서, 경계의 해체, 국가 담론의 종말, 그리고 그 새로운 징후를 읽기 위해 아르헨티나 출신 문화 이론가 가르시아 깡끌리니는 민족의 이산과 문화의 이동이라는 문제의식을 그의 책 『혼종 문화』에서 20세기 말 멕시코 문화와 세계 최대의 국경 도시이자 미국-멕시코 접경 도시, 티후아나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1950년대에 겨우 6만 명이었다가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 인구 200만이 넘는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된 이 도시는, 가르시아 깡끌리니가 보기에 뉴욕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실험실이다. 이주를 통해 한 곳에 모인 서로 다른 문화들은 교류하고 뒤섞이며 이로 인해 이제 순수한 문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향후 라틴아메리카의 미래를 이 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왜냐하면 티후아나는 두 국가의 접경을 넘나드는 탈국가, 탈영토화의 노마드적 이민자들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미국-멕시코 국경에 관심의 집중을 가져온 경제적, 문화적, 이론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결국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존재론적 기대와 인식론적 대응으로 집약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고 느낀 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가 어떤 이론적 배경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번영에의 기대만큼이나 세계화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상대적인 발전과 경제적 활성화에도 불구, 불평등과 도시 빈곤의 확대,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라는 쉽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며, 날로 커져가는 폭력과 마약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프랑스 가수 마누 차우(Manu Chau)가 부른 「웰컴 투 티후아나(Welcome to Tijuana)」는 이른바 1세계와 3세계를 잇는 통로로서의 이 도시의 비공식적 산업(밀수와 음주, 환락)을 노래하면서, 세계적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상품의 이동이 가져온 모순들의 집합소로서 티후아나를 아이러니하게 묘사하였다. 역설과 모순은 세계화와 배치되는 국경의 강화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90년대 이후, 미국 내 이민의 폭발적인 재증가와 그 결과로서, 이제는 최대 소수인종으로 성장한 라티노에 대한 ‘반이민정서’는 최근에 들어 격렬한 사회적 갈등과 논쟁을 야기했으며, 이는 국경을 강력히 통제하고 두 나라 사이의 ‘담’을 보다 공고히 함으로써 더 큰 위협을 내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인종주의와 차별을 넘어, ‘세계화’ 담론에 묻혀 있던 ‘주권’과 ‘국가’ 개념의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국경 지역은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흐름과 그것들을 불법 이민과 마약 범죄조직으로 규정하면서 혹은 동일시하면서 통제하려는 권력 사이에서 긴장과 갈등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멕시코 국경(경계)

중심과 주변의 해체, 문화 민주주의의 도래를 예견하는 ‘혼종성’의 장소로서의 미국-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가 현실에서는 세계화의 심화와 함께 글로컬(glocal)의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된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기대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불평등과 폭력의 구조로 인해 이제는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로 바뀌었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의 하나로 여러 지역에서 민족의 담론이 다시 생산되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멕시코 국경은 세계화의 가속화와 그 정치학으로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또 다른 측면에서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전의 산물로서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이념의 국경을 가진 우리에게, 미국-멕시코 국경은 지구화 시대로의 진입이 보여주는 또다른 극단적인 경험을 보여준다. 실제로 티후아나에 사는 동안, 오히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분단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 소중한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계화 시대의 국경과 경계의 의미를 되묻곤 했다. 일자리를 찾아 남쪽에서 올라온 ‘불법’이민의 물결과 아메리칸 드림, 마약과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 공공 서비스의 부재와 불안한 생활 조건. 자료 수집과 현장 연구를 목적으로 간 일년 간의 경험, 언제나 머릿속에는 이론과 현실의 적합성 여부를 묻는 질문들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 담론들과 현실이 만들어내는 불일치 혹은 이론을 압도해버리는 극단적인 삶과 현실의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세계화라는 담론 자체가 극단성과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세계화의 양가성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 역설이 낳은 이 지역의 현실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행위 주체들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 이러한 과제들이 현재의 미국-멕시코 국경 연구가 담보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경계의 영역을 조심스럽게 확장하면서 다른 종류의 다양한 ‘국경’과 ‘경계’를 비교 연구하는 것, 이것이 지역 연구로서, 비판 이론으로서, 문화 연구의 한 갈래로서 ‘국경(경계)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2009/11/20 10:52 2009/11/20 10:52
RSS를 구독하시면 더욱 편하게 그린비의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 ]

trackback url :: http://greenbee.co.kr/blog/trackback/833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