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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공포, 검열의 공포

이미 시간이 좀 지났지만 올해는 톈안먼 사건(1989년 6월 4일)이 일어난 지 20년 되는 해입니다. 80년대 중국을 다룬 책이니 이 날짜에 맞춰 출간했다면 좀더 독자분들이 주목하지 않을까 싶지만, 분량 압박(840쪽)의 이 책을 서둘러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어사무사(편집 시작한 지 반 년은 넘은 것 같네요^^;) 책이 나왔네요.

이 책이 중국에서 나온 시점은 2006년 5월. 당시 이 책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이 워낙 뜨거웠던지라 옮긴이 샘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저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물론 80년대 중국이라는 주제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고요). 마침 한국에도 『저 낮은 중국』이라는 인터뷰집이 나오면서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저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 그래서 시작된 번역(2007년 초입니다). 그런데 옮긴이 샘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있었으니, 첫째는 인터뷰인 만큼 현장 분위기와 말투를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하느냐, 둘째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각종 문화현상에 대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쏟아내고 있으니 (촘촘한 논리로 얘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행간이 널찍하여 맥락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섭섭잖게 있고 또 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확인 또 확인하고, 지인들께 읽혀 가며 고생고생한 결과, 드뎌 1년 반 만에 번역을 완료하셨습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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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국과의 대화(八十年代 訪談録) _ 왼쪽부터 대륙판, 홍콩판, 한국판 표지

그러나 기쁨도 잠시, 뒤늦게 출간된 홍콩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거이 왜 문제가 되는고 하면, 본문의 ‘머리말’에도 잘 나와 있듯이 이 책의 원서(대륙판)는 출판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들이 있습니다. 삭제된 부분이 얼마나 많았으면, 류펀더우(劉奮鬪)라는 영화감독의 인터뷰는 결국 완전히 빠져 버릴 정도였죠. 그런데 홍콩판에서는 류펀더우 편을 포함하여 이 삭제된 부분들을 모두 복원하여 출간한 것입니다. 부랴부랴 홍콩판을 입수한 옮긴이 샘, 처음부터 대조 들어가셨습니다-_-;; 이미 번역을 마쳤다고 생각한 걸 다시 일일이 대조를 해가며 누락된 부분을 찾아내고 글의 맥락을 다시 연결하며 재번역의 시간을 보내신 거죠(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럼 삭제된 부분들이 어떤 내용이냐? 주로 마오쩌둥 관련된 얘기와 톈안먼 사건 관련 얘기입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마오쩌둥이 량수밍(梁漱溟)을 손봤을 때 일찌감치 제3의 세력 쪽 사람들은 조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오쩌둥과 마주앉아 천하를 논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오가 애시당초 그들을 어떻게든 처리해 버리려고 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거죠. 마오가 좀 조급하긴 했죠.”(본문 71쪽)

“나중에 저는 현대예술전을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 전시회와 톈안먼 사건은 정말 비슷하다, 모두 일종의 이상주의, 문화열에 휩싸인 이상주의였다, 서양의 현대문화로 중국을 구원하길 희망했다, 톈안먼 사건 또한 서양의 민주로 중국의 정부구조를 대체하기를 희망했다, 최후에 마주한 결과 또한 동일하다, 최초의 의도와 최후의 결과가 동일하다, 현대예술전은 작은 범위에서 상연한 그것의 예고편이었다.”(604쪽)

마오쩌둥톈안먼
마오쩌둥(좌), 톈안먼 사건(우)
_ 중국판에서 검열의 대상이 된 '마오쩌둥'과 '톈안먼 사건' 관련 이야기들. 80년대의 문제를 지금까지도 차단하고 있는 사회, 비단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대륙에서 나온 시점은 마오쩌둥의 시대가 끝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마오쩌둥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위기가 농후합니다. 톈안먼 사건의 경우, 80년대와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기에 더더군다나 양이 많아 삭제하기 힘들었을 테니 “89년” 내지는 “6․4”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방법도 동원하면서 최대한 독자들이 인지하지 못하도록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부분, 중국을 비하하는 발언을 철저히 검토하고 삭제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저는 타이완의 문화 정치가 어떤지 잘 모르는데, 느낌상으론 타이완의 좌파가 대륙의 좌파보다 단순한 것 같아요. 조금 더 교조적이고 진지하며, 소박하기까지 하여 별로 닳고 닳은 느낌은 없습니다.”(32쪽)

“얼마 전에 미술계에 있는 미국 여성을 만났는데 요즘 베이징의 새로운 건축들에 굉장히 반감을 보이더군요. 너무 보기 싫다고 말입니다. 먹다 남긴 요리 같답디다. 그 말을 듣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더군요.”(76쪽)

어떻게 보면 대단할 것도 없는 이런 이야기들이 출판 과정에서 삭제되었다는 사실에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언론 통제가 심한 건지, 출판사의 자기검열이 심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공포와 불안’이 우리에게도 닥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한곳에선 자본을 필두로 한 자유가 만개하고 있지만, 한곳에선 모든 발언이 차단되는 사회, 80년대 중국 문제를 오늘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는 이 책은 저에게 또 다른 오늘의 문제를 상기시켜 줬습니다.

2009/12/01 11:09 2009/12/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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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looky

    Tracked from looky 2014/08/24 01:10  삭제

    If my background image was labeled for commercial reuse can I claim copyright on all other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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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2/01 14:3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그린비 2009/12/01 15:06

      네, 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논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