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어느 날, 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라캉을 읽으면 네가 떠올라.’ 니체(의 철학)처럼 살고 싶은 저에게(관련글) 라캉이라니! 라캉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것이죠. 그 말은즉슨, 넌 주체적이지 못해, 혹은 다른 사람 눈을 너무 의식해, 혹은 다른 사람에게 너무 잘 보이려 애써, 다른 말로 하면, 넌 너무 가식적이야?!!!(충격이 커서 비약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얼마 전까지 독자 분들과 함께 했던 철학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야 '쿵푸스아이돌' 1기였는데요.(인터뷰 보기) 그 유명한 이진경 선생님의 철굴(『철학과 굴뚝청소부』)을 가지고 근대 철학자들을 한명한명 읽어 나갔습니다. 라캉 부분을 살짝 보면, “(프로이트 이론의)무의식은 타자의 욕망”(335쪽)이고 “각자는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갖고자 하며, 타자의 욕망의 대상임을 인정받고자 합니다. 즉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341쪽)이라고 말합니다. 쿵푸스아이돌 1기 분들도 다들 기분 나쁜 이론이라며(^^;) 한 마디씩 했던 바로 그 라캉, 하지만 저는 동생의 그 ‘너는 참 라캉처럼 살아’라는 그 말에 딱히 부정할 수도 기분 나빠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 정말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는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쓰고 일을 할 때는 ‘회사에서 바라는 답은 어떤 걸까’ 먼저 생각하는 사람, ‘주체적으로’ 내지는 ‘능동적으로’와는 거리가 먼 사람, 바로 저였습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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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제가 유일하게 주체적(!)일 때는 바로 쇼핑할 때입니다. ^^; 예쁜 것, 좋은 것들을 사서 입고 걸치고 꾸미는 것. 제 욕망이라 믿었던 이것들조차 사실은 타자의 욕망으로서 무의식의 결과물이었습니다.(이미지: 『gBlog No.2』, 「필로아트」)

“‘나’ 혹은 ‘자아’라는 주체는 어떤 중심성도 통일성도 갖지 않으며, 오히려 타자의 담론, 타자의 욕망으로서 무의식의 결과물입니다.”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346쪽)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라캉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심지어 ‘주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조차 좀더 내밀히 들여다 보면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인양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체적으로 십억 만들기에 매진하는 사람, 능동적으로 능력있는 배우자를 찾는 사람… 이들은 이상적인 나라는 주체를 세워놓고 그런 나에 맞는 것들을 욕망하며 삽니다. 하지만, 그 이상적 주체를 세우는 순간, 타자의 욕망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이론이 유쾌하지 않은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 누구도 타자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 누구도 이 구조를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것!

히스테리 환자의 문제는 어떻게 그, 그녀(의 진정한 욕망)인 바와 타인들이 보고 욕망하는 바를 구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를 라캉의 또 다른 공식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로 데려다 준다. 라캉에게 인간 욕망의 근본 장벽은 그것이 주어 속격이든 목적어 속격이든 타자의 욕망이라는 점이다. 타자를 위한 욕망, 타자가 원하는 욕망 그리고 특히 타자가 원하는 것을 위한 욕망.
(지젝, 『How to Read 라캉』, 58쪽)

우린 진정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걸까요? 라캉의 세계 속에서는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욕망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라캉에게 욕망은 결핍에 다름 아니죠. 그렇다면, 욕망은 결핍이다라는 라캉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개념이 바로 자신의 삶을,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니까요.(개념어총서 WHAT 관련글) 철학 세미나를 하면서 다들 호감을 표했던(^^) 스피노자와 들뢰즈를 떠올려 봅니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은 코나투스(각 사물은 자기 존재 역량에 따라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이고, 들뢰즈에게 욕망은 오히려 생산해야 할 것이었죠. 그들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며 산다면, ‘넌 참 라캉처럼 살아’라는 말과도 결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연?^^;)

- 마케팅팀 지우(구.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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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11:13 2009/12/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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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9/12/08 11:59

    공감하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운 하루 되세요.

    • 그린비 2009/12/08 12:16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미예님도 좋은 하루되세요. ^^

  2. 봉봉봉 2009/12/08 15:00

    구. 현아님 동생, 때려주고 싶다ㅡ,.ㅡ

    • 그린비 2009/12/08 15:43

      후흣, 봉봉봉님, 감사합니다_*
      제 동생 연락처라도 알려드릴.....^^;

  3. 쉬잇(구.현아동생) 2009/12/08 16:25

    사실 그런 말을 했던 저도 충분히 라캉의 말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제 멋대로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막상 제 멋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입니다.
    꿈을 좇아 상경을 했으나, 그 꿈조차 다른 사람들의 의식한 제 꿈 아닌 제 꿈이었기에 또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러나 상경을 접고 귀향하는 거조차 순수하게 제 의지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과연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이 확고히 구별되는 사람이 가능한 건지, 그리고 정말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 건지 늘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저 타자의 욕망대로 살 수밖에 없어. 그게 사는 거야. 라고 말하기보단,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조화를 이뤄 살아가기 위해서 이에 깨어있고 성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글쓴이 지우
    타자의 욕망 99%/ 자신의 욕망 1%로 자라온 사람이기에.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타자의 욕망 1%/자신의 욕망 99%로처럼 보이지만
    타자의 욕망 70%/자신의 욕망 30%로 살아온
    - 민진이 되고 싶지 않은 진아-

    • 그린비 2009/12/08 16:34

      네, 말씀 감사합니다. ^^;

  4. 이재욱 2010/04/14 14:28

    라깡의 욕망과 결핍에 대한 쉬운 설명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10/04/14 16:17

      아고, 쉬운 설명이라니, 라캉이 쓴 개념이나 사유의 결들을 십분 살리지 못하고 그저 제가 받아들인 방식으로 풀어냈을 뿐입니다.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