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골목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엄상미 (막달레나공동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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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2가동 신흥4길
_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다. (…) 그런 골목길이 점점사라져간다. 모두 대기표를 손에 들고 철거 순서를 기다린다. (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
며칠 전 삼양동과 정릉동 일대를 간 적이 있다. 생각 없이 차를 운전해 갔다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길치’인 나는 으레 그렇듯 고분고분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데로 착하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대를 지나 주소지가 산 몇 번지 어쩌구 하는 정릉의 어디쯤을 지나칠 때쯤, 이 눔의 내비게이션이 명령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어느 샌가 길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외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게 하질 않나, 오마나, 이건 아예 차에게 하늘로 올라가란다. 드디어, 내비게이션이 미쳤나.

그러다가는 결국 차가 다닐 수 없는 ‘쌩골목길’에 이르렀고, 이제와 내비게이션의 명령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아슬아슬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는 물어물어, 걸어걸어, 올라올라 목적지를 찾아야만했다. 어쩌랴. 서울 지리에 약한 나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 상대방은 한참을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같은 골목을 몇 번이고 뱅뱅 돌아야만 했다.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감들이 달려 있고, 골목을 휘감아주는 담벼락에는 담쟁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로 변한 빈집이 더러 눈에 띄었다. 곳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볕 좋은 곳에서 고양이가 낮잠을 잤다. 이 모든 풍경을 지나치니 비로소 목적지에 닿았다.

한데, 나는 정말 몰랐다. 서울에 아직도 이렇게 골목길이 있을 줄은. 고향이 서울인 아니고, 현재 사는 곳도 서울이 아닌 나에게 이런 서울의 골목길은 영 낯설다. 여기 서울 맞냐고요~. 서울에 살지 않는 내가 아는 골목길이라고는 사진을 배운답시고 껍죽거리고 다니던 시절의 ‘난곡’과 ‘북촌’, 폐쇄를 앞두고 있는 용산 성매매집결지의 뒷골목(주로 나이 많은 언니들이 영업을 하는), 막달레나의집이 있는 청파동의 능안길 골목, 이태원의 소방서길의 ‘후커힐’ 골목이 전부이다.

2.
오래 전, 온통 골목길로만 이뤄진 난곡은 꽤나 유명한 출사 장소였다. 지금은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싹 쓸려 없어진 동네. ‘하늘아래 첫 동네’라 불릴 만큼 산동네에 위치한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재개발이 이뤄졌기에 사진을 취미로 하는 이들의 관심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어리버리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동네 곳곳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카메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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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 곧 볼 수 없는 곳 (2002)
_ 골목골목, 삶의 흔적들. 그리고 버려진 마을, 버려진 하늘. (블로그: 해의눈물, 고양이가되자)

철거가 한창이던 그곳의 현실은 참혹했다. 옷가지며 부엌살림 도구들, 한 가족의 추억이 담긴 앨범이나 액자 따위가 예사로 나뒹굴었고, 어느 집 담벼락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요! 제발 부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기도 했다. 동네는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아직까지 동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보상을 받지도, 임대아파트 입주권한도 얻지 못한 그야말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금방이라도 어느 집 담벼락을 부술 기세로 대기 중인 포크레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병색이 완연한 한 할머니가 보조기에 의지하여 한 발 한 발을 힘겹게 내딛으며 집 밖으로 나오고 계셨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드문드문 보이던 카메라를 맨 사람들이 일순간에 모여들며 할머니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다쓰러져 가는 동네에 늙고 병든 할머니의 등장이라니, 절묘한 장면일 법도 하다. 할머니는 가쁜 숨을 색색 몰아쉬며 사진 찍는 이들을 저항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빈 골목길에는 셔터소리만이 철커덕철커덕 울려댔다.

3.
골목길이란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다. 건축학자 임석재는 ‘아늑한 휴먼 스케일을 유지하며, 차가 다니지 않아야 하고’, ‘서민들이 사는 공간이며, 일상성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동네’로 골목길을 규정한다. 한국전쟁 이후 독재 개발기 때 농촌이 붕괴되면서 대도시로 내몰린 사람들이 능선을 중심으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골목길은 ‘별의별 불규칙한 공간의 종합선물세트’이며, ‘귀납적 축적의 산물’로 존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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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골목길 5형제
_ 80년대 골목길에는 웃음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대한 애정으로 사진을 찍은 김기찬 작가, 그런 그를 자신들의 삶 속으로 받아들인 골목길 사람들. (김기찬, 『골목안 풍경』)

골목길에 대한 애정 하나로 온 평생을 서울의 골목길만 누비고 다닌 작가가 있다. 내가 전몽각(1931-2006)의 『윤미네집』과 함께 천금을 준대도 내어줄 수 없는 김기찬(1938-2005)의 『골목안 풍경』들. 그는 30여 년 간 서울의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골목들을 찍었다. 그의 사진에는 누군가를  화면 가득 채우는 선명하고 강렬한 사진이 좀체 없다. 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코앞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런 일은 잘 못하겠어요. 설사 몇 장 그렇게 찍었다 해도 그건 내 사진이 아닌 것 같아서 고르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진에 사진가와 피사체간에 거리감이나 경계 따위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골목안 풍경』 속의 다섯 살 골목대장 재국이는 청년이 되었고, 골목 안에서 공개적으로 연애하던 처녀총각은 어느덧 아이를 낳았으며, 길가에 앉아 해바라기로 소일하던 공덕동 할머니는 영정 속에만 남으셨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작가는 ‘사진 아저씨’에서 ‘사진 할아버지’가 되었고, 한 평생 자신의 주제라고 다짐했던 골목길이 어느덧 자기보다 먼저 사라져갔다. ‘골목길이 불량주택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골목길, 골목 안 사람들은 모두 ‘개선의 대상’이었고, 개선이 안 되면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4.
그 오래전 난곡의 골목길에서, 소심의 극치였던 나는 다 부서진 빈집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것이 고작이었다. ‘브이’자를 그어 보이며 해맑게 웃고 있는 누군가의 사진이 꼽혀 있는 앨범과 책과 필통이 담겨 있는 아이들의 책가방, 8시 35분에 멈춰 있는 벽시계, 아직도 된장냄새 풍기는 장독대의 항아리 따위들. 한결같이 생명 없는 사물들이니 그들이 할머니를 찍어대던 불편함과 달리 나의 마음이 안도될 법도 한데, 어째서 마음은 계속 쿵쾅쿵쾅 뛰었던 걸까? 선생님은 내가 봐도 마땅찮은 내 사진들은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무 지엽적이에요. 거시적으로 찍으세요, 거시적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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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1동 장수3길
_ 골목길은 생활소품의 의미가 가장 잘 살아나는 공간이다. (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

서울에는 아직 마흔 곳 정도의 골목길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오늘 날 골목길은 하루빨리 재개발해야 할 ‘불량주택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모두들 ‘대기표를 손에 들고 철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듯 골목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밀어버리고 초고층 아파트를 세워서 재산을 불릴 대상’으로 인식된다. 물론 일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저 난곡에 모여든 ‘사진쟁이’들처럼 ‘작품의 대상’이거나 ‘아련한 추억의 대상’,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 정도’로 인식된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골목을 밀어내고 재개발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다고 향수나 추억 따위를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골목길은 참으로 많은 일상과 역사를 거치며 필요에 따라, 삶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곳곳에 삶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통로가 놓였으며 또한 그렇게 삶의 관계망이 되었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골목길이 그토록 수많은 켜와 갈래로 뻗어나 존재해 온 데에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그처럼 많은 이유와 일상의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발전계획’에 따라 ‘제대로’ 만들어진 오늘 날의 그것들이 어떻게 그 숱한 삶의 역사들보다 우선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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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11:20 2009/12/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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