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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진실을 여는 방식 중에 하나는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틈새 혹은 간격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쉽게 지나치거나, 쉽게 해석되고 잊히는 순간 속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을 포착하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의 편집 과정에서 처음에는 들어갔다가 나중에 빠지게 된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앙코르와트로 여행을 온 백인 남녀에게 허름한 차림을 한 어린 캄보디아 아이가 물건을 팔려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 실제로 그곳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면 귀찮아하거나, 안타까워하며 뭐라도 사주거나, 기껏해야 캄보디아의 빈곤에 대해서 생각하는 정도에서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진에 담기는 순간, 현실에서는 눈치 채지 못했을 어떤 것이 흔적처럼 드러납니다. 희미하지만 아릿한 고통의 흔적. 어쩌면 이 책은 그 흔적이 말하고 있는 바를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캄보디아의 정치사, 훈센 정권의 개발독재, 자국의 이권을 위해 캄보디아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나라들과 그 일원인 한국, 훈센의 얼굴에서 발견되는 박정희의 얼굴과 이명박의 얼굴과 노무현의 얼굴, 그리고 그 속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모습들. 이 모든 설명들은 그 흔적이 가질 수 있는 한 의미를 드러내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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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흔적은 희미하기 때문에 수많은 얼굴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인도주의적 얼굴을 드러낼 수도, 냉혹한 국제적 정치ㆍ경제 관계에 대한 고찰의 얼굴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자 유재현이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결국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얼굴,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국제적 차원의 이야기에서부터 일상의 이야기까지 많은 것들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다다르고자 한 지점은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이렇게 고통 받고 있다가 아닐까 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얼굴들에서 오늘날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그 드러냄은 고통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흐릿한 고통을 명료하고 날카로운 고통으로 마주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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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론 그 노력마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린비 블로그에도 이미 올라온 ‘시선’이란 꼭지를 보면 한 소녀가 논 가운데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통, 분노, 슬픔 따위의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그 속에 있었습니다. 저자도 그것을 느꼈는지 책의 어떤 꼭지에서보다 격렬하고 감동적인 글을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이 전달하고 있는 강렬함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사진과 다르게 너무나 거대해서 하나의 얼굴을 지닐 수조차 없는 느낌이랄까요.

『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를 편집하면서 독자들에게 첫 번째로 전달되었으면 했던 것은 물론 캄보디아의 현실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아가 저자의 사진과 글을 통해 전달하는 진심들과 예민한 시선들, 명확한 얼굴을 부여 받지 못한 사진 속에 존재하는 흔적들과 그에 대해 이름을 불러주기 위한 노력들, 사진에 담겨진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순간들을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고자 했던 인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 편집부 홍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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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뿌리 앞에서』- 캄보디아에서 박정희를 보다
유재현 지음|도서출판 그린비 | 갈래 : 문학에세이, 사회과학에세이

발행일 : 2007년 10월 30일 | ISBN : 978-89-7682-100-3
신국판 변형(152×218mm)|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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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2 11:02 2007/11/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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