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가난의 풍요로움

김해규 (한광중학교 교사, 평택지역사연구가)

1.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성경말씀에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라는 구절이 있다. 탐욕은 불행의 시작이다. 탐욕스런 삶으로 희망의 끈을 삼는다면 썩은 동아줄을 잡은 것과 진배없다. 올 연말은 번잡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고 있다. 이사람 저사람, 이 모임 저모임 걸리지 않는 것이 없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만남이 향기로운 것은 추억이 아름답거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꿈꾸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추억,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는 사람은 언제 만나도 향기롭다. 며칠 전에는 20년 전부터 인연을 이어오는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슬럼화 되어 가는 구도심 뒷골목의 어린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공부방운동을 함께 하였던 사람들이다. 2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던 그들은 지금도 ‘희망’을 나눠주며 살아가려 애쓴다. 그 자리에는 화가이며 동화작가인 이동진 선생님도 함께 하였다. 국민동요 ‘노을’의 작사가이기도 한 선생님은 그림과 글로 세상에 희망을 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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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맑고 향기롭게』
이십여 년 전 우리가 함께 할 때는 아이들이 좋은 동시와 동화를 많이 읽어야 정서가 맑아지고 생각이 자란다며 손수 쓰신 동시를 프린트하여 거리에서 나눠주기도 하였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었다. 다시 잠자리에 누워 몸을 뒤척이다가 전등을 켜고 책을 빼들었다. 두어 해 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법정의 산문집 『맑고 향기롭게』다. 출가 50년을 맞아 그동안 쓴 글에서 가려 뽑아 만든 책이다. 지금은 평가가 엇갈리지만 법정의 산문은 1980년대에 즐겨 읽었던 글이다. 잘 알려진 ‘무소유’도 대학시절에 읽었다. 고등학교 때 안병욱과 김형석의 산문에서 얻은 감동이 1980년대에는 법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법정의 산문에서는 김형석이나 안병욱과는 다른 궁행(躬行)의 도(道)라는 게 있다. 치열한 이념논쟁이 난무하였던 1980년대 대학시절에도 법정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유다. 오랜만에 펴든 책갈피 속에서 가슴을 울리는 주옥같은 글들이 쏟아진다.

2. 선택한 가난은 풍요롭다
오랫동안 ‘선택한 가난의 풍요로움’이라는 말을 화두(話頭)로 삼았던 적이 있다. 아마 ‘무소유’가 주는 자유로움도 화두였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자신을 비웠을 때 참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경도되어 삶 속에 덕지덕지 묻은 탐욕의 찌꺼기들을 버리려고 몸부림쳤었다. 맑스의 이론과 무소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있었던 시절이었다. ‘무소유’에 경도되어 가진 것을 모두 나눴다가 얼마 못가서 후회하기를 반복했던 시절, 법정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위로자가 되었다. 책갈피에서 ‘사막의 교부들’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막의 교부들은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의 오아시스로 피신하였던 초기 기독교공동체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삶 자체가 수행이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철저히 신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궁행이었다. 교부들의 사유 속에는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종교의 딜레마들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안토니오라는 교부가 하나님께 여쭈었다. 주여, 어떤 사람은 늙도록 살고 어떤 이는 젊어서 죽습니까? 어떤 사람은 좋은 것을 넘치도록 소유하면서 어떤 이는 가난합니까? 악한 자들은 부자로 살고 착한 사람은 가난합니까? 그러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안토니오야 네 일이나 잘해라. 그것은 신들이 할 일이니 네가 그것을 이해한다고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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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제정구 선생
_ 그는 '가난의 희망'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꿈꾸며 실천했다.
한참을 웃다가 생각하다가 다시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이 한 성녀에게 ‘가난이 선행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성녀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할 줄 아는 삶은 훌륭한 선행입니다. 굳센 영혼은 자발적 가난에 의해 점점 평화로워지고 강해집니다.” 글을 읽다보니 소천하신 빈민운동가 제정구 선생의 일화가 떠오른다. 빈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평생을 바친 제정구 선생이 시흥의 복음자리 마을에 입주했을 때의 일이다. 작지만 새 집에 입주하게 된 부인이 어느 날 큰 컵을 여러 개 사오셨다고 한다. 물컵도 하고 음식도 담아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것을 본 제정구 선생은 애써 사온 컵을 이웃에게 주어 버렸다. 작은 것이지만 컵을 소유하게 되면 진열장을 갈망하게 되고, 진열장을 구입하면 빈 공간을 채우려 노력할 것이기에 일찌감치 탐욕의 싹을 잘라 버리기 위해서였다. 기득권을 버리고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그를 자유롭게 하였다. 철저한 무소유적 삶을 살았기에 그의 나눔은 항상 풍성하였다. 세상의 희망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욕망을 채우기보다는 가난한 마음으로 나눔과 봉사에 힘을 썼다. 죽은 지 십 몇 년이 지났어도 우리에게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3. 즉시현금(卽時現金) 갱무시절(更無時節)
앞서 소개한 모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20년을 한결같이 만날 수 있는 것은 나눔의 삶을 공유했다는 추억 때문이다. 하지만 추억만 가지고는 좋은 만남을 지속할 수는 없다. 이동진 선생님 말마따나 가는 길이 다르면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들은 20년 전처럼 지금도 나누기 위해 애쓴다. 자본주의에 무지한 그들은 돈과 명예보다 어두운 뒷골목에 작은 등불을 밝혀두기를 좋아한다. 좋은 만남은 현재진행형일 때 지속성이 있다. 386세대들의 동창회처럼 과거의 흐릿한 추억을 벗 삼아 이뤄지는 만남은 생명력이 없고 허망하다. 법정은 젊은 시절 임제선사의 ‘卽時現金 更無時節’이라는 말을 화두삼아 수행하였다고 한다. ‘바로 지금 뿐 다시 시절은 없다’라는 말. 과거를 되씹거나 오지 않은 미래에 기대를 걸지 말고 바로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실천하라는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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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作 <청산에 눕다>
_ 한미 FTA, 4대강 사업, 재개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탐욕의 결과다.

우리는 무한정한 탐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시대의 꿈과 이상은 탐욕(貪慾)이다. 인간다운 삶, 모두가 행복한 삶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야만의 정글은 오직 생존만을 위해 앞으로 내달리기를 강요한다. 인간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탐욕만이 가득한 정권에서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도, 노무현 정권의 값진 결과물들을 뒤엎으려는 것도 기실 따지고 보면 탐욕 때문이다. 현 정권에게는 재벌의 이익, 가진 자들의 이익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국가예산이 4대강 사업에 쏠리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움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복지예산에서 장애우들이 실질적으로 수혜 받았던 부분이 삭감되면서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복지예산은 나은 편이다. 만만한 문화예술분야의 예산은 전액 또는 30%씩 삭감을 당하고 있다. 복지예산은 눈에 쉽게 뜨이는 데다 반발이 심할 것 같으니까 끗발 없는 문화예술예산만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는 올해 큰 호평을 받았던 평택시립도서관의 ‘인문학 강좌’와 ‘한 책 읽기운동’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였다. 도서구입비도 절반 이상이 깎였다고 한다. 평택문화원이나 예총(藝總) 예산도 30% 이상 삭감이 불가피하다. 더더욱 비상이 걸린 것은 미군기지이전사업의 반대급부로 추진되었던 고덕국제신도시사업의 존폐문제다. 변죽만 울리다가 중단되어도 큰일인데, 구체적으로 사업자가 선정되고 보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단되어 버리면 해당지역 주민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미아가 되어 버린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평택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국민들의 반응은 매우 건조하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열띤 토론과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극히 미미하다. 비난하고 좌절만 하였지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살아가는 일이 빠듯해서인지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인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더디기만 하다.

새해가 가까웠다. 내년은 올해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이 새해를 맞는다. 오히려 내년이 더욱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어쩌면 빈익빈 부익부가 고착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절망이라는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는 연말 오후, 필자는 다시 한번 ‘즉시현금 갱무시절’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새해에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현인(賢人)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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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11:21 2009/12/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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