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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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편집후기라는 것은 마감의 쓰나미나 보도자료 작성의 폭풍에 비하면 별 거 아니어야 쓰는 누이 좋고, 읽는 매부 좋은 법이라고 생각해 왔고, 또 실제로 앞선 편집후기들도 비교적 부담 없이 썼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제가 이 책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편집후기를 붙들고는 여섯번째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회사 화장실 변기 위에 시크하게 걸터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뭐야, 이 책 이거 왜 이렇게 쓰기가 힘든 거지? 도대체 뭣 때문에?

‘힘주어’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두 가지 요인을 집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첫째, 이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벤야민이라는 인물의 면면이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그것들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말하려다 아무것도 말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 ‘어정쩡해서 더 소중한’ 그의 위치, 독특한 방법론, 날카로운 시선, 내밀한 감수성, 객관성과 당파성의 결합, 그럼에도 잃지 않는 낙관적 태도 등등.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쓸지 모르니 글이 안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둘째, “틀에 맞춰진 글쓰기만으로는 새로운 종류의 사유를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에게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창안하는 문제, 즉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는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된다”(본문 91쪽)라는 말이 남겨 준 임팩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벤야민의 ‘색다름’에 부응하고 싶었습니다. 어딘지 뻔한 편집후기보다는 색다른 형식(예컨대 소설, 인터뷰, 패러디 등등)의 편집후기로 색다르게 여러분과 교감하면서 “야민이 형, 나 잘했어?”를 외쳐 보고 싶었습니다, 마는 무엇에 대해 말할지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말할까만 생각하니 글이 안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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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을 진단하니 대강 길이 보입니다. ‘모든 것을 다 너에게 주고 싶어!’와 같은 신파는 책을 읽으실 독자 여러분들의 몫으로 돌려놓고, “거대한 인용과 메모의 더미”인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에 주목해 보는 거죠. 사실 벤야민의 글들은 쉽지가 않습니다. 권용선 선생님도 그러셨고, 같이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도 동감했으며, 벤야민 얘기가 잠깐 나왔던 또 다른 강의의 선생님께서도 순순히 인정하시는 바이니 제 무지에서 나온 감상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 어려우신 분이 친절하게 조곤조곤 얘기해 줘도 시원찮을 판에 필생의 역작이라고 들고 오신 게 — 물론 미완성이라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요 — 이렇게도 불친절하니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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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예전에 벤야민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우라’와 서가 데코레이션의 욕망에 눈이 멀어 대형서점에서 그 두꺼운 두 권짜리 한국어판(2005년판)을 만지작거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두근두근하면서 펼쳐서는 몇 페이지 읽어 보고, “이거 뭔 책이 이렇...” 하면서 조용히 제자리에 꽂아 두었지요. 서사적 세계에 익숙한 사람에게, 더구나 벤야민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던 사람에게 느껴지는 간극은 꽤 컸습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발터 벤야민. 이번에는 그런 난해함과 이질감을 극복하기에 아주 좋은 가이드가 함께했습니다. 바로 이 책,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말입니다. 이 책에서 발견한 벤야민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자기 시대를 ‘구축’해 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쥐어 짜내서” 그러모은 자료들로 세계와 역사의 거대한 상(像)을 그립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그것이 결코 ‘총체성에 대한 열망’의 산물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지요(그 자신이 파시즘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겠지요). 이 인용과 메모들 사이에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분들을 그릴 수 있습니다. 도시가 건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누비는 길들을 포함하듯이, 별자리가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선분들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잇고 이야기를 만든 것이듯이 말입니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되, 그 의미를 뛰어넘는 빈 공간을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단순한 비평가 혹은 철학자를 넘어 최고의 ‘코디네이터’가 아닐까 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남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조금 낯설지는 몰라도, 보면 볼수록 장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펼쳐 봅니다.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를 읽기 전에는 순전히 ‘파편’으로만 보였던 항목들 사이에 보이지 않았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항목과 항목 사이에 놓인 한 줄의 공백들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어디로든 튀어가도 상관없는 ‘자유’와 ‘각성’의 공간인 것만 같습니다. 쓰고 보니 편집후기라기보다는 독후감 같습니다만, 어쨌거나 이 책을 편집한 후기로 “벤야민과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라는 말만큼 더 적절한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자,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제가 차마 다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쏠쏠하다는 것쯤은 눈치 채셨겠지요?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안에 그 많은 이야기들로 가는 또 하나의 별자리가 있다는 사실도요.

- 편집부 태하
+ 저자 인터뷰 보러가기 >>
2009/12/28 10:45 2009/12/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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