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총서를 시작하며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프리즘 총서의 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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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총서는 총서가 수행할 수 있고 또 수행해야 하는 이러한 역할에 대한 자각에 더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학계 및 출판계의 동향에 대한 비판적 반성 위에서 출발한다. 프리즘 총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신자유주의라는 “유일사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단일한 백색의 빛을 뿜어대는 그 유일사상을 분해하고 그 빛에 감춰진 다양한 사고 및 실천의 잠재력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가 전개되기 시작한 이후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시장 원리의 확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국가 구조 및 사회적 관계에서부터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전면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총체적인 지배 원리로 군림해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난이나 고발, 심지어 저주의 목소리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이론과 정책 및 제도적 실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서유럽에서는 좌파 정당들마저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를 대부분 수용하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일부 좌파 지식인들이나 단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급진적인 반(反)자본주의적 전망을 제시하지만, 입장의 선명함에 비해 설득력 있는 분석과 논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신자유주의가 유일사상이며 총체적인 지배 원리로 군림해왔다고 해서 그것이 단일한 중심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푸코가 말했듯이 권력은 항상 다양하며 긍정적으로 작동하며, 그것이 총체적인 지배 효과를 산출한다고 해도 그것은 다양한 층위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구축되고 재구축되고 변화하고 수렴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단일한 권력, 단일한 지배 원리로 간주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유일한 중심이나 단일한 메커니즘으로 환원하지 않고서도 그것이 발휘하는 총체적인 지배효과를 분석하고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오늘날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의 근본 과제라고 믿는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구체적이고 다면적인 분석이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가 산출하는 총체적인 지배 효과에는 사회 구조의 재편성과 더불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익 추구자로서의 개인, 유일한 조직 원리로서의 시장 원리)의 이데올로기적 관철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 및 미래의 전망에 대한 획일화도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근대성의 형성 과정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고 현재의 사회적 지평을 넘어서기 위한 풍부한 정치적 상상력의 개발도 요구된다. 또한 근대 문명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던 제국주의/반제국주의, 식민화/반식민주의의 첨예한 대립이 남긴 유산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더불어 그것을 지양하는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은 그 자체로 철학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심미적 감수성의 도야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처럼 역사와 사회, 인간에 대한 포괄적인 전망에 기초하여 신자유주의의 총체적인 지배 효과들을 해체하고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사고하고 모색하는 것이 프리즘 총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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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作 <베토벤 프리즈>
_ 신자유주의라는 유일사상이 지배하는 시대, 그리고 사상가들에 대한 물신숭배로 팽배한 인문사회과학계의 경향. 우리는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한다.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난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상가들에 대한 물신숭배 경향이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거대한 변혁의 사상과 조직 체계가 와해된 이후 그 빈 자리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을 비롯하여 각종 현대 사상가들 및 이론가들의 이름들로 채워져 왔다. 데리다, 라캉, 푸코, 들뢰즈, 가타리, 보드리야르, 하버마스, 호네트, 라클라우/무페, 지젝, 아감벤, 랑시에르, 고진 등과 같은 현대 이론의 스타들의 이름과 그들의 주요 개념들이 마치 유명 연예인이나 패션 브랜드처럼 회자되어 왔고 또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사상이 한국 사회의 문제들과 현상들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얼마나 기여해왔는지, 새로운 사유와 문제의식을 개발하고 고무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그들의 숱한 저작들은 값비싼 로얄티를 물어가며 끊임없이 번역ㆍ출판되고(하지만 많은 경우 심각한 오역의 문제점을 내포한 가운데) 팔려왔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읽히고 응용되고 비판받고 변용되어 왔는지 역시 의심스럽다. 오히려 그 사상가들은, 그들의 저작들은, 마치 조금 갖고 놀면 싫증나는 장난감처럼, 한 계절 입고 나면 금방 촌스러워 보이는 패션 상품처럼 그렇게 판매와 구매의 좁은 회로 안에서만 유통되었던 것은 아닌가?

프리즘 총서가 지향하는 또 다른 목표 중 하나는 이러한 불모의 사상가 물신숭배에서 벗어나 문제를 개발하고 분석을 고무하고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다. 하나의 위대한 사상, 위대한 텍스트는 항상 자신이 속한 컨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숙고의 결과로 생겨나며, 그러한 천착 덕분에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좁은 컨텍스트를 넘어 광범위한 영역에서 반향을 미치고 새로운 사고와 실천을 촉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상에 고유한 소비와 전유의 방식은 이름을 소비하고 숭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컨텍스트 속으로 그것을 끌어들이고 그 속에서 그것의 적합성과 효용성을 시험해보는 데 있다.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개념, 새로운 문제들은 그러한 시험 과정 속에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 프리즘 총서의 구성 >


프리즘 총서는 7개의 프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프리즘은 전체 프리즘의 지향을 구현하면서도 고유한 분야에서 제 각각 독특한 색채를 발산하게 될 것이다.

▲ 신자유주의의 프리즘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사상, 신자유주의의 다층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이 프리즘에서는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사상, 유일한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의 해체를 추구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유일사상이라는 것은 그것이 단일한 이데올로기와 조직, 실천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또한 신자유주의가 절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유지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내적 모순이나 간극, 공백을 포함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프리즘”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제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를 좀더 면밀하고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신자유주의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것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위력과 정치ㆍ경제ㆍ문화적 뿌리들을 드러내는 것은 세심하면서도 끈기 있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프리즘”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보여주는 저작들을 계속 출간할 것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를 단순한 이데올로기나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지배적 합리성의 구성 과정으로 이해하는 크리스티앙 라발ㆍ피에르 다르도의 『새로운 세계 이성』과 세계화 시대에 출현하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을 분석하는 메리 칼도어의 『새로운 전쟁과 낡은 전쟁』 등이 그 사례들이다.

▲ 탈-근대성의 프리즘 근대 세계를 형성한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주기, 또 다른 장래의 가능성들을 열어놓기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쟁의 의미는,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근대성의 종언에 대한 선언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독서 방식들 사이의 갈등에 있다. 만약 근대성의 종언과 탈근대성의 도래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대성(들)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될 것이다. “탈-근대성의 프리즘”은 이러한 의미에서 근대성(들)을 읽는 새로운 방식, 근대성을 형성하고 근대의 출구로 이끄는 다양한 길들의 가능성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교조적인 근대의 정통으로 복귀하지 않으면서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독단에 맞서서 탈-근대의 새로운 전망들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 탈-근대성의 프리즘의 목표다. 이를 위해 탈-근대성의 프리즘에서는 주로 근대성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저작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가 재출간될 것이며, 사회사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적 시민권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치밀하게 분석한 로베르 카스텔의 대작 『사회 문제의 변모』, 제라르 누아리엘의 『국가, 국민, 이민』, 정신분석의 사회 문화사에 관한 탁월한 저작인 엘리 자레츠키의 『영혼의 비밀』등이 우선 소개될 것이다.

▲ 생명권력의 프리즘 생명 그 자체를 좌우하게 된 권력의 지도를 그리기

생명에 대한 인식과 기술, 권력의 발전은 20세기 후반 이후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은 두 가지 대립적인 이데올로기 속에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틀을 가두는 경향이 있다. 그 한쪽 편에 기술 유토피아가 섣부른 열광을 자극한다면, 다른 쪽 편에는 생명의 종말에 관한 묵시록적 경고가 맹목적인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정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미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된, 생명에 대한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권력의 메커니즘과 그것에 내재한 위험과 잠재력을 경험적이면서 개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생명권력의 프리즘”이 추구하는 바다. 이를 위해 생명권력의 프리즘은 생명 그 자체는 처음부터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인공적인 것이었으며, 권력은 지배이면서 자유의 조건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생명권력의 프리즘을 통해 출간될 저작으로는, 영미권 통치성 학파의 대표자인 니컬러스 로즈의 『생명 그 자체의 정치』와, 인류학적인 현장 조사와 마르크스주의 잉여가치론 및 포스트구조주의의 독창적인 결합을 통해 생명권력 분석의 새 지평을 제시한 카우시크 선더 라한의 『생명자본』 등이 있다.

▲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 또 다른 사회를 상상하는 정치적 사유의 모험에 참여하기

정치적 사유는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좁은 틈새에 갇혀 왔으며,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 두 가지 대립항들 사이에서 질식된 채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외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 정치이론의 발전을 감안해보면 이것은 크나큰 지체이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은 오늘날 외국에서 논의되는 가장 빼어나고 독창적인 정치적 사유의 면모들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 인민주권, 시민권, 대표, 입헌주의, 인민주의(populism), 인권, 노동, 혁명 같이 매우 익숙해 보이는 개념들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곧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적 사유의 가능성들을 모색해보기로 하자. 정치적인 것의 프리즘에서는,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클로드 르포르의 고전, 『정치적인 것에 관한 시론』, 시민권 및 공동체에 관한 독창적인 저작인 헤르만 판 휜스테렌의 『시민권 이론』, 포퓰리즘에 관한 혁신적인 저서인 벤자민 아르디티의 『자유주의 가장자리의 정치』 등이 소개될 예정이다.

▲ 예술의 프리즘 세계와 불화하는 감각의 움직임들을 탐색하기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종종 들리는 매혹적인 구호는, 사실은 오늘날 예술은 신(新)귀족들의 재테크 수단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자본 축적 회로의 말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포섭되었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한 철학자의 표현대로 하면 정치는 감각의 질서의 문제이고 감각의 질서가 함축하는 세계와의 불화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예술이라면, 예술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포섭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포섭의 사실 덕분에 처음부터 정치적인 저항의 출발점들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철학자의 표현을 빌릴 경우 예술은 탁월한 시빌리테(civilité)의 도구라면, 예술은 저항의 또 다른 방식을 실천하기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프리즘”은 그러한 실천들을 모색하기 위한 장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술의 프리즘에서는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 새 번역본장-뤽 낭시/필립 라쿠-라바르트의 『문학적 절대』, W.J.T. 미첼의 『그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외에 미술과 영화, 물질 문화 및 미학 일반에 관한 저작들이 출간될 것이다. 

▲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 명사로 정형화된 철학이 아닌, 동사로서의 철학적인 것을 실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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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철학은 다시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그것이 어떤 미래(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던 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철학의 형태와 실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새로운 전환기에 우리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철학사란 철학이 자신의 영역들을 하나하나씩 상실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재규정해온 역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마도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는 아무런 영역도 남지 않은 철학의 활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철학은 자신보다 더 철학적인 탈-분과학문들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포스트 철학의 시대로 의 진입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장래를 기약하는 한 가지 방법은 급진적인 유명론을 추구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미 유명무실해진 자신의 영토를 고수하려는 헛된 노력 대신, 활동으로서, 실천으로서의 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이미 유령화된 철학의 “경계 위에서의 삶”(sur-vie)의 방식일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의 이론적 내기다. 철학적인 것의 프리즘에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저작들로는 루이 알튀세르 등이 공동 저술한 『‘자본’을 읽자』 완역본과, 서양 유일신교의 역사를 혁신적으로 재조명하는 얀 아스만의 문제작 『이집트인 모세』(출간),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 베르나르 스티글레의 『기술과 시간』, 헤이든 화이트의 『형식의 내용. 서사 담론과 역사적 재현』 등이 있다.

▲ 탈식민주의의 프리즘 제국과 식민의 상처를 가로질러 새로운 세계 문명들의 가능성을 꿈꾸기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지난 반 세기 동안의 세계사는 탈식민주의 운동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대성의 역사가 동시에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 경쟁과 그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의 역사였다면, 지난 반 세기 동안의 세계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근대성의 시작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탈식민주의는 아마도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의 다른 명칭일 것이다. 그러한 전환이 평화와 공존의 장래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과 폭력의 장래를 가져다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따라서 필연적인 전개 과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동안 국내에서 탈식민주의는 미국에서 출세한 제3세계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로 치부되거나 ‘근대성=식민지 근대성’이라는 등식의 이론적 정당화의 토대 정도로 기능해왔다. “탈식민주의의 프리즘”은 탈식민주의가 본래 지니고 있는 광범위한 이론적ㆍ실천적 질문들을 소개하고,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그 질문들을 독자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총서에서는 서발턴 연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디페쉬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유럽을 지방화하기』(Provincializing Europe) 및 라틴 아메리카 해방 철학의 대가인 엔리케 두셀의 『정치에 관한 20개의 테제』 이외에 탈식민주의의 역사와 주요 쟁점을 다루는 저작들이 소개될 것이다.

+ 이 글은 그린비 <프리즘 총서> 기획위원이신 진태원 선생님께서 작성하신 총서 소개글 3편 중 마지막 편입니다.
 1편 <인문사회과학에서 총서 출판의 의미 1> 보러 가기 >>
 2편 <인문사회과학에서 총서의 의미 2> 보러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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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limbah domestik

    Tracked from limbah domestik 2015/06/14 18:09  삭제

    I want to start a blog and I am trying to find a blog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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