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문제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구?
이 언니를 만나다
2010/01/25 10:30
ㅡ 만화 <리틀 포레스트>로 보는 기억의 재구성
언젠가 실험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사실은 가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 학자가 ‘쇼핑몰 실험’을 제안했었죠. ‘가까운 사람에게 네가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라고 말해 주고선,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누군가 묘사해 주면(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 사실에 관해 들은 사람들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어 버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거짓기억에 관한 실험은 거식증, 우울증 같은 각종 mental disorder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그것이 어린 시절 성추행 경험 때문이라고 자꾸 연결고리를 만들던, 당시 심리상담가들을 비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다 어린 시절 때문이라는 등식은 미국에서만 이야기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요새 유행하는, 혹은 유행했었던 심리학 서적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말하죠. 작년에 충격적인 범죄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강호순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의 어린 시절에서 반사회성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차가운 엄마, 집 나간 아빠, 고르지 못했던 육아 방식, 방향은 다르지만 다들 우리의 뒤틀린 삶이 다 엄마 아빠 때문이라는 거죠.
_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런 인과관계를 단호히 끊어 버리는 만화입니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와 살았던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옛날 집에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고, 친구와 술을 마시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이치코는 자신이 경작한 농작물로 음식을 해먹고, 농사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집니다. 이 만화는 매번 그녀가 먹는 음식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거기에 사용된 재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각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그런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직 크리스마스 때만 케이크를 굽던 엄마의 모습, 산수유 열매를 혼자 딸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던 자신과, 그런 그녀에게 언제나 열매를 따주던, 같이 살던 남자의 모습, 어린 시절의 추억들. 하지만 이치코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버렸고, 산수유 열매를 따주던 남자는 더 이상 그녀가 만들어 주는 산수유 잼을 먹지 못하게 되죠.
분명 이런 상황이라면 그녀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이니 비뚤어져야 하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남자와 헤어졌으니 통곡할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엄마에 대한 원한도, 미움도 만화 안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떠난 엄마가 왜 갑작스럽게 떠났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이치코는 더 궁금해하죠.

우리가 항상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과거”는 이치코에게 별 일 아닌 듯 지나갑니다. 이치코의 엄마는 독자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치코의 회상 속에서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어떨 땐 맛있는 음식을 해주던 모습으로, 어떨 땐 남자친구가 올 때만 케이크를 굽던 다소 얄미운 모습으로. 이치코의 엄마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하나가 아니죠.
심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지금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는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이유는 어린 시절 차가운 엄마 밑에서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서 그렇고, 성과나 성적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빠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성적이나 상장이었기에 그렇다는 그 말들. 그런 이야기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지금 내 삶이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는 점에서 우선 위로가 되죠. 하지만 그 너머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러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그저 달라져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 이외에는 없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야기들은 부모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용서하라고 아주 쉽게 말하죠.
앞서 말씀드린 쇼핑몰 실험 안에는 사실 기억의 참/거짓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담겨 있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재구성된다는 거죠. 참/거짓을 확인하기 위해,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에 동의를 얻기 위해 타자의 승인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승인을 위해 기억을 말하는 동안에도 기억은 변형됩니다. 어떤 사람에겐 특정 맥락을 강조해 말하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땐, 삭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만화에서 한국 현대사까지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치코가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치코는 ‘내가 다시 코모리로 돌아온 게 다 엄마가 떠났기 때문이야. 엄마가 떠나서 내가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애정 표현도 못하는 성격으로 변해 버렸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녀는 필요하다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다정한 모습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어떨 땐 빵을 굽는 레시피도 안 가르쳐 주던 얄미운 모습으로 드러내기도 하면서, 기억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가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쪽이 더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녀의 기억은 부재하는 엄마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만들고 혼자 사는 삶이 더 풍요롭게 만드니까요.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기억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기억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기억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그 기억들을 어떻게 구성해 낼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겠죠. 그렇다면 더 이상 지금 내 삶의 근원을 찾기 위해 희미한 어린 시절(과거)과 부모를 추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기억을 지금의 삶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만 생각하겠죠. 원한과 증오 없이, 적절하게 망각까지 활용하면서 말이죠.
p.s :얼마 전 그린비에서 출간된 『이집트인 모세』 역시도 이런 기억들을 추적하는 책입니다. 사실이 어떻게 기억됐는지가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전해지고, 어떤 맥락에서 수용되었는지를 살피죠. 기억의 재구성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실험을 했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 사실은 가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 학자가 ‘쇼핑몰 실험’을 제안했었죠. ‘가까운 사람에게 네가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라고 말해 주고선,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누군가 묘사해 주면(진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 사실에 관해 들은 사람들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어 버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거짓기억에 관한 실험은 거식증, 우울증 같은 각종 mental disorder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그것이 어린 시절 성추행 경험 때문이라고 자꾸 연결고리를 만들던, 당시 심리상담가들을 비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다 어린 시절 때문이라는 등식은 미국에서만 이야기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요새 유행하는, 혹은 유행했었던 심리학 서적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말하죠. 작년에 충격적인 범죄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강호순에 대해서도 모두가 그의 어린 시절에서 반사회성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차가운 엄마, 집 나간 아빠, 고르지 못했던 육아 방식, 방향은 다르지만 다들 우리의 뒤틀린 삶이 다 엄마 아빠 때문이라는 거죠.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와 살았던 코모리로 돌아옵니다. 옛날 집에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고, 친구와 술을 마시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이치코는 자신이 경작한 농작물로 음식을 해먹고, 농사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집니다. 이 만화는 매번 그녀가 먹는 음식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거기에 사용된 재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각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그런 이야기 속에는 그녀의 기억들이 담겨 있습니다. 오직 크리스마스 때만 케이크를 굽던 엄마의 모습, 산수유 열매를 혼자 딸 수 있다고 고집을 피우던 자신과, 그런 그녀에게 언제나 열매를 따주던, 같이 살던 남자의 모습, 어린 시절의 추억들. 하지만 이치코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버렸고, 산수유 열매를 따주던 남자는 더 이상 그녀가 만들어 주는 산수유 잼을 먹지 못하게 되죠.

_ 엄마가 떠나고, 남자와 같이 살지도 않지만, 이치코는 담담할 뿐입니다.
분명 이런 상황이라면 그녀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이니 비뚤어져야 하고,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남자와 헤어졌으니 통곡할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엄마에 대한 원한도, 미움도 만화 안에선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떠난 엄마가 왜 갑작스럽게 떠났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이치코는 더 궁금해하죠.

우리가 항상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과거”는 이치코에게 별 일 아닌 듯 지나갑니다. 이치코의 엄마는 독자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치코의 회상 속에서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어떨 땐 맛있는 음식을 해주던 모습으로, 어떨 땐 남자친구가 올 때만 케이크를 굽던 다소 얄미운 모습으로. 이치코의 엄마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하나가 아니죠.
심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지금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는 제법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이유는 어린 시절 차가운 엄마 밑에서 감정 표현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서 그렇고, 성과나 성적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빠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성적이나 상장이었기에 그렇다는 그 말들. 그런 이야기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지금 내 삶이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는 점에서 우선 위로가 되죠. 하지만 그 너머를 말해 주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러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그저 달라져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 이외에는 없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야기들은 부모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용서하라고 아주 쉽게 말하죠.

_ 이치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기억을 구성하는 다른 전략을 보여 줍니다. 끈적한 모녀 관계, 자식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는 대신에 이치코는 그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죠. 엄마가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되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쇼핑몰 실험 안에는 사실 기억의 참/거짓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담겨 있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재구성된다는 거죠. 참/거짓을 확인하기 위해,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에 동의를 얻기 위해 타자의 승인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승인을 위해 기억을 말하는 동안에도 기억은 변형됩니다. 어떤 사람에겐 특정 맥락을 강조해 말하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땐, 삭제가 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영화 「낮은 목소리」 포스터
_ 어떤 기억을 선택하여 기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자들의 기억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헤게모니 투쟁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죠.
_ 어떤 기억을 선택하여 기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자들의 기억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헤게모니 투쟁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죠.
만화에서 한국 현대사까지 너무 멀리 와버렸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치코가 기억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이치코는 ‘내가 다시 코모리로 돌아온 게 다 엄마가 떠났기 때문이야. 엄마가 떠나서 내가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애정 표현도 못하는 성격으로 변해 버렸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녀는 필요하다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다정한 모습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어떨 땐 빵을 굽는 레시피도 안 가르쳐 주던 얄미운 모습으로 드러내기도 하면서, 기억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그렇다고 엄마가 가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쪽이 더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녀의 기억은 부재하는 엄마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만들고 혼자 사는 삶이 더 풍요롭게 만드니까요.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기억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기억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기억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그 기억들을 어떻게 구성해 낼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되겠죠. 그렇다면 더 이상 지금 내 삶의 근원을 찾기 위해 희미한 어린 시절(과거)과 부모를 추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기억을 지금의 삶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만 생각하겠죠. 원한과 증오 없이, 적절하게 망각까지 활용하면서 말이죠.
- 편집부 강혜진
p.s :얼마 전 그린비에서 출간된 『이집트인 모세』 역시도 이런 기억들을 추적하는 책입니다. 사실이 어떻게 기억됐는지가 아니라, 기억이 어떻게 전해지고, 어떤 맥락에서 수용되었는지를 살피죠. 기억의 재구성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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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기억은 슬픔을 치유한다
Tracked from 글감옥에서 온 편지 2010/02/07 01:45 삭제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아기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 김용택, 「그랬다지요」 전문 ‘삶’이란 걸 뭘까요? 어차피 한 발짝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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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출처 기재하고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아~ue님이 담아가신 공간도 살짝 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현듯!! 드네욤. ㅋㅋ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Ue」 유심히 잘 볼게요~*
'엄마가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되니까요..'
맞아요 어른인데도 어린시절 기억만을 떠올리며 '지금여기'를 탓을 하며 사는 건 안되겠어요. '다양한 변주'를 스스로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월요일부터 좋은글 읽고 힘이 나네요!!!!
(근데 리틀 포레스트를 안 읽어봐서 그런데요, 엄마가 떠난 건 어린 시절이 아니고 많이 큰 다음에 겪는 일이니까 이겨내고 기억을 스스로 꺼내어 변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무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아가 시절의 상처는 반드시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돈보스꼬 님이 지적하신 대로, 단순히 상처로 지칭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영역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이고, 자칫하면 피해자의 입을 막을 수도 있으니까요.
분명 부모도 사람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걸 마치 절대적인 잘못인 냥, 다루는 책들의 시선이 안타깝더라구요. 아무래도 제가 부모가 되다 보니~ㅋ.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기억을 구성할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책들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 문제, 내 삶을 회귀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를 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썼던 기사보다 훨씬 다채롭고 생각이 깊은 글이네요. (…) 「리틀 포레스트」가 단순한 음식 만화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이 글을 통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홀~ skyjet님이시군뇨~ㅋㅋ
아유 감사함따~. 블로그 종종 놀러가고 있습니다~.
"타인의 감수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내밀함을 공격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조심성은 쉽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잔인한 무관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아도르노의 지적도 떠오르네요.
ㅇㅇ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난 번에 제가 고통에 대해 썼던 글도, 아도르노 아저씨가 지적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죠.
하지만 잔인한 무관심으로 흐르는 조심성과 타인에 대한 윤리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글쓰기가 주는 효과를 예상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 제 글은 어쩌면 재촉이 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이렇게 사는데, 넌 왜 그렇게 못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여전히 고민하고 있고, 고민해야 할 주제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언젠가 포스팅해 봐야겠어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