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대학의 "요시다(吉田)" 자치 기숙사, 학생 공동체의 갈라파고스
ㅡ일본에서 마을 만들기7


신지영 (수유+너머)

* 학교, 작은 모임으로 이루어진 생태계
올해 2월이 지나면 나는 학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내게 학교란 작은 모임들로 기억되어 있다. 고등학교 때에는 신문반에, 대학교 때에는 걸개와 판화를 하는 동아리에, 대학원 때에는 학교 밖 연구 공동체에 들어갔다. 몸도 맘도 좀 센서티브한 편이라 늘 혼자이고 싶었음에도, 나는 참 이상하게 늘 작은 모임과 함께인 쪽을 택했다. 혼자인 것보다는 사람들과 함께인 편이 어찌됐든 좋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모임들을 통해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수만 가지 감정들과 대처법들을 엄청난 실수를 해대면서 배웠고, 지금도 집에 돌아와 머리를 쥐어뜯는 것은 여전하다. 일단 모임 안에 들어가면 원래 갖고 있었던 옳고 그름의 기준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복잡한 관계성과 감정의 폭풍만이 눈앞을 가득 채우게 되는데, 그 혼돈 속에서 나를 바꾸고 타인이 바뀌는 과정을 통해 취향과 감정과 감각을 형성해 간다. 그러나 이러한 감수성의 습득과 변화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면 삶의 존속이건 혁명이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학교 안에서 자생하는 작은 모임들은 우연으로 가득찬 삶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작고 분주한 생태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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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임금을 지불하라"
_ 대학에서 학생들은 많은 것을 생산한다. 공부를 하고, 문화/정치 활동을 하고… 이런 학생들의 생산이 대학을 유지하게 하는 것 아닌가.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작은 모임들이 풍부하게 유지되려면 충분한 시간, 빈번한 상호작용,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대학들은 생물학적 위기에 처한 듯이 보인다. 일본에서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대자보 하나 없이 깨끗한 대학이 대다수이며, 밤 10시나 11시가 되면 대학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것이었다. 이런 조건에서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자생적 모임이 생기기 어렵다. 일본 대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일년에 1000만원을 육박하는 등록금과 일본식 ‘장학금 제도’이다.+ 장학금이라고 불려질 뿐, 학생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졸업 후에 되돌려 받는 제도이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하면 크레디트 카드를 만들 수 없게 되거나 집을 얻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고가의 등록금과 장학금 제도를 비판하고 ‘무상교육’ 운동을 하고 있는 나카다와 구리하라는 이 제도에 대해서 “학생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블랙 리스트 모임 in 동경>(the association of blacklisted students of Tokyo)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이 장학금 제도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로 각각 6000만원 이상 빚을 지고 있다.
+ 「수유너머 r」의 웹진 「뷁수의 탄생」에 실린 「학자금 대출? 그냥 안 갚으면 안돼?- 나카다상과 쿠리하라상과의 인터뷰」(http://trans-r.tistory.com/28)를 참고.

기존의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 단지 등록금의 정도 차이를 문제 삼았던 것과 달리, 그들은 대학의 역할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들은 대학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활동이 이미 지식과 문화를 생산하고 있으므로 무상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것을 갚기 위해 취직을 준비하는 시간에 지식을 탐구하고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연애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 더 투자할 수 있다면, 대학은 훨씬 더 생산적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학자금 대출은 대학의 작은 모임들을 불가능하게 하고 학생들을 획일적인 노동자로 길러내는 예비장치인 셈이다.

* 리모델링을 거부하고 자치를 선택한다
일본 전체의 분위기에 비춰 볼 때 교토대학의 요시다 기숙사는 독특하다. 요시다 기숙사는 여러 가지 소문의 대상이자 온상이다. 더럽고, 벌레투성이고, 지진이나 화재에 약하다. 장판지를 청테이프로 몇겹씩 막아 놓아도 그것을 뚫고 바퀴벌레가 나온다거나, 음식을 내놓으면 벌레로 뒤덮인다거나, 프라이버시라곤 존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무척 싸고 외국학생들도 잘 받아주며, 학교의 간섭을 받지 않아 자유롭다고 한다. 그곳에 살던 친구 중 하나는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안 치워. 그리고 정말 지긋지긋하게 말도 많은 곳이야. 그런데 정말 싸.” 전기, 수도세, 자치회비는 별도이지만 숙박료는 월 400엔(한국돈 5000원 가량)으로 믿을 수 없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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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의 요시다 자치 기숙사

싼 숙박료와 학교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는 기숙사가 학생자치활동으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입주자 선발은 기숙사 자치회에서 하는데, 입주자격이 계속해서 확대되어 왔다. 1985년에 남자 학부 학생만을 받던 규정을 바꾸어 여학생의 입주를 허락한다. 1990년대부터는 유학생의 거주를 허락하며 1991년도부터 대학원생·청강생·연구생·의료 기술 단기 대학생을 포함한 모든 교토대생에게 주거자격이 주어진다. 1994년에는 학생이 아닐지라도 '교토대 학생과의 동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입주자격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신체장애자와 그를 개호(介護)하는 사람, 부모와 자식, 부부 등이 그들이다. 이에 따라 입주 희망자가 크게 증가해, 개인실로 운영되던 방을 공동으로 이용하게 되기도 했다.

요시다 기숙사는 1913년에 준공된 이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었으나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숙사이다. 이 긴 역사가 가능했던 것은 요시다 기숙사 자치회뿐 아니라 , 이 기숙사를 사랑하는 학생들 전체, 졸업생, 주민의 힘이다. 70년대 학생운동의 온상인 기숙사를 폐쇄하여 「기숙사의 정상화」를 기도하였을 때나 국립대학의 기숙사를 폐쇄하는 전국적 흐름 속에서도 요시다 기숙사는 학생들의 반대 운동을 통해 살아남았다. 예를 들어 1982년 12월에는 학교 평의회가 기숙사에 다시 거주할 수 있는 기한을 마음대로 단축해 버리자, 기숙사 자치회 및 졸업생이 힘을 합쳐 기숙사 폐지 반대운동을 벌인다. 그 결과 기숙사 거주 갱신 시기가 되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수의 기숙사생이 거주하게 된다. 1989년에는 교토대 당국과 요시다 학생 기숙사 자치회 사이에 합의가 성립하여, 기숙사가 존속하게 된다.

1995년에는 한신·아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이후 기숙사의 내구성, 내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06년 2월 요시다 기숙사 집행부는 전년의 내진 조사결과를 근거로 요시다 기숙사 식당의 보수를 신청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대학으로부터 기숙사의 리모델링 구상이 제기되지만 기숙사 자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작년 요시다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 자치회의 활동을 하는 친구로부터 요시다 기숙사의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학교는 단지 주거환경의 개선 차원에서 리모델링을 제안하고 있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면 기숙사를 자치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되고 학교의 통제와 관리 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기숙사가 리모델링되면, 입주자격에 돈과 학점이 영향을 끼치게 되며, 학생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방해를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리모델링을 거부하고 외국인과 가난한 학생, 장애인 가족까지 입주 대상자로 포괄하고 다양한 주거자들이 북적거리면서 발산하는 생명력을 유지하는 편을 택했다.  

* 요시다 기숙사, 자치적 공동체의 갈라파고스
요시다 기숙사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던 것은 작년 9월 말경이었다. 당시는 축제철로 기숙사 옆 노상에서 연극과 공연, 술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간 곳은 예전 기숙사 식당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이곳은 1996년 10월 31일 화재로 인해 서쪽이 불타버렸는데 그 이후 온전히 남아 있던 곳을 중심으로 각종 라이브, 연극 등의 이벤트가 열린다고 했다. 그곳에 들어가자 예전 교토에서 살던 당시 집회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교토대 축제의 한복판의 그 식당은 교토대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최근엔 학교 축제 행사에 학생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만들어 가고 있다고 했다. 요시다 기숙사는 교토대학 학생활동의 원동력이자, 마을 주민과의 교류공간이었다.

요시다 기숙사의 동력은 역사 속에서도 증명되었다. 197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퇴조기에 들어선다. 그러나 교토대학은 자치 기숙사, 학부 자치회를 거점으로 운동세력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교토대의 자치 기숙사는 “일본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렸다.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로부터 고립되어 그 곳에 고유한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이 일본 학생사회에서 중요한 생태학적 보고이자 새로운 활동의 전개가 잠재되어 있는 생태계라는 의미였다. 그 잠재성과 에너지는 기숙사의 공동생활을 통해 형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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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학의 요시다 자치 기숙사

식당을 나오니 뒤뜰 한 켠에는 공연용 야외 무대가 한창이었고, 그 한쪽 천막에는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한잔 하고픈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 입구에는 간이 우편함이 만들어져 있었고 신발이 어지럽게 벗어져 있었다. 축제 때였기 때문일테지만, 현관에서부터 장기를 두는 학생들과 마주쳤으며 복도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놀거나 하고 있어 활기가 느껴졌다. 이층으로 가니 긴 복도를 두고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설명을 듣자니 이곳은 대략 9명이 4개의 방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라고 했다. 한 사람이 한 방을 차지하는 게 기숙사의 일반적 모습일 텐데, 그곳은 각 방마다 용도를 나누어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층 침대가 놓여진 침실방, 디브이가 나뒹구는 영화방, 담소를 나누는 다용도 거실, 책상이 놓여진 공부방이 있었다. 각 방마다 방의 용도를 표현해주는 문 장식이 있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자치회의 학생은 이처럼 작은 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시다 기숙사 전체를 <수유+너머>처럼 바꾸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은근슬쩍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곳은 새로운 형태의 주거를 실험하고 있는 자치적인 공동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기숙사는 1970년대보다 더욱 갈라파고스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다양한 학생들이 상호교류와 공동생활을 통해 대학과 지역의 풍부한 자생성을 실현해 가는 생태계 말이다.

* 대학에서 다양한 마을의 실험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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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지하 동아리방(동아대 인문학회 카르마)
한국에서는 새학기부터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졸업도 하기 전 학생을 블랙 리스트에 올리고, 아르바이트와 취업활동에 시달리게 함에 따라 대학 안에서 작은 모임들이 자생할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법 말이다. 한국의 대학 풍경도 앞으로 크게 변화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휴학을 하고 잠시 삶을 고민하거나 학사경고를 맞거나, 취업이나 성적보다는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거나, 하는 모습이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대학 내 자생적 공동체를 유지시켜 주는 여유, 그 여유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와 경험, 성적과 취업으로 단일화되지 않는 다양성이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밤 10시면 완전한 어둠이 되어 버리고 문은 닫히고 대자보 하나 붙어 있지 않는 그런 대학을 보고 싶지 않다. 한국에서 새학기에 시작될 예정이라는 ‘학자금 상환제’는 대학 내의 작은 모임들, 대학 내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이루어지기 힘들 테지만, 금리를 더욱 낮추고 복리이자를 단리로 하는 등, 궁극적으로 무상교육을 지향해 가야 한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 신문반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노닥거리면서 온갖 일을 꾸미기 좋은 장소였고, 대학 때 동아리방이 밀집해 있던 가건물은 “쓰레기”라는 이름으로 통했다. 대학의 상상력, 작은 마을들을 구성하는 원동력은 이 더럽고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작은 모임들의 공동체 경험에 의해서 떠받쳐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요시다 기숙사는 벌레와도 공생하지 않는가! 대학이 작고 다양한 마을의 실험장이 되길 꿈꿔 본다.


2010/01/29 12:01 2010/01/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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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취업후 학자금상환제 신청, 인터넷으로 해봤더니

    Tracked from 정책공감 - 소통하는 정부대표 블로그 2010/02/02 16:58  삭제

    2010년도 벌써 한달이 다 지나고 2월이네요. 학생들이라면 슬슬 개강준비로 바쁠텐데요, 특히 등록금 납부 걱정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2010학년부터 취업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가 도입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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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경 2010/01/29 20:50

    글 잘 읽었습니다~
    교토에 갔을 때 교토대는 못 가봤는데 상상이상의 공간이 있군요!
    전 대학에서 둥지를 못 만들어서 대학 밖에서 여러가지 실험들을 하고 있지만,
    우선적으로 학교에서부터 작은 시도, 조그마한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등록금을 낮춰달라는거였는데, '학자금상환제'를 마치 선심 베풀듯 시행하려고 하네요. 점점 더 대학은 암울해 질 것 같아요..
    아무튼 글 감사합니다!

    • 그린비 2010/01/29 22:46

      그러게나 말입니다..선심 베풀듯_a 대학이 아니라 기업 교육기관인양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경님의 활동처럼, 대학 안이나 바깥에서 작은 활동들, 모임들, 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항상 관심있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

  2. 낙타 2010/01/30 00:52

    공감해 주셔서 기쁩니다. ^^ 언젠가 이경님의 활동 <희망제작소> 일들도 답글에서 알려주시고 들려주세요. ^^ 그런 활동들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자꾸 이야기되고 알려지고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습니다.

  3. 7인의봉인 2010/02/01 16:08

    어제 개콘에서도 동혁이형이 등록금이랑 학자금 상환제로 열변을 토하던데요. 참

    • 그린비 2010/02/01 16:25

      아, 7인의봉인님도 보셨군요~ 10년 동안 물가는 36%가 올랐는데 등록금은 116%나 올랐다죠. 진짜 헐~ 입니다;; 물가는 올랐다 내렸다라도 하지 등록금은 매 학기 오르니.. 아빠 혈압도 아니고..;;

      저도 학자금 대출받아 학교 다니고 졸업했는데 진짜 갚아야 할 돈이 어마무지 합니다. 남일 같지 않네염..참

    • SailipLieks 2017/05/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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