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성을 둘러싼 그 묘한 공모 혹은 연대감을 지켜보며


얼마 전, 인기 가수 전모 씨가 10대 미성년 여성을 성매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유명 개그맨 이모 씨는 룸살롱에서 여종업원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며칠 후 가수 정모 씨 역시 비슷한 혐의로 고소되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건, 어떤 일의 공간에서건 세상사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돌고 돌기 마련. 여성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인터넷에서 돌지 않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여성들은 종종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유명인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니, 친구에게 듣는 연예인 이야기도 눈빛을 반짝이며 “어머 정말?” 할 판인데, TV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것도 성매매 관계로 얽힌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찌 귀가 쫑긋하지 않겠나. 여성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쏟아낼 때면 나는 짐짓 당황스러운 채 하면서도 정작 속마음은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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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깔끔한 이미지와 논리 정연한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언론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에이, 설마~’라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믿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자 그 언니는 그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 늘어놓으며 조롱하듯 마무리멘트를 날렸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사람이 달라져서 지금은 안 그럴 수도 있겠지요, 뭐.”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도 기억을 못해 남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내가, 이 통신라인을 통해 ‘접수된’ 이야기만큼은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한데, 그 맛이 두고두고 씁쓸했다.

그것은 비단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뿐이 아니다. 모모대학 총학생회장, 모모노조의 모모간부, 모모회사의 모모팀 직원들 혹은 ‘소설쟁이’들도 간혹 여성들이 토해내는 이야기의 손님들이 되어 등장한다. 누군가는 전날 밤 뜨내기손님이 두고 간 스티븐 코비의 『원칙 중심의 리더십』을 들고 와 읽어 보라며 건네기도 했다. 그 익명의 공간에서는 누구든 여성들의 ‘손님’이 되었다.
우리와 인연을 맺었던 한 여성은 업소에 단골로 드나들던 한 노동자와 연인이 되었다. 여성은 모회사 노조원이기도 한 남자의 차 트렁크 안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각목과 쇠파이프가 늘 실려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이 업소에서 도망 나와 ‘탕치기(선불로 미리 돈을 받은 뒤 일은 하지 않은 채 도망가는 경우를 이르는 말)’ 혐의를 받고 경찰의 수배를 받던 중, 여성은 그 애인에게 기대며 유일하게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애인이라고 믿었던 바로 그 남자의 ‘협조’로 업주가 여성의 거처를 알게 되고, 여성은 결국 경찰에 넘겨졌다. 내가 개입된 일이 아니므로 나로서는 실제 정황을 자세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여성은 참으로 세세히 그때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성매매방지법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었으므로 여자가 놓인 상황은 지금에 비해 더 열악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여성의 인생은 바뀔 수도 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힘든 일 하는 사람인데요…”

여성들은 자신과 얽힌 그들과의 인연을 별 것 아닌, 뭐 워낙 다양한 손님을 겪다 보니 ‘그런 사람도 있다더라’ 하는 식으로 대수롭잖게 넘겼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들에 얽힌 추악한 ‘비밀’을 토해내며 그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이 TV에 나오는 것조차도 견디기 힘들어 했다.
폐쇄된 그 익명의 공간에서 너무도 정확하게 이름이 호명되고 그 공정치 않은 낱낱의 행위들이 열거되니, 나는 그 목록에 올랐던 사람들에 대한 굳은 ‘편견’을 꽤 오래 지니고 살아야 했다. 이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실망은 할지언정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누군가가 성매매를 했다고 해서 더 이상 놀라지는 않았다. 오랜 동안 그러한 통신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나 역시 무뎌져 갔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매매 행위를 알게 될 때, 특히나 위에서 언급된 유명인이나 운동사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그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면 대체로 놀라는 듯하다. 반면 남성들은 좀체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사회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그 핵심 논리이다. 성을 둘러싼 계급과 계층에 구분 없는 남성들의 강고한 공모 혹은 연대가 세월이 지나도 쉬이 흐트러지지 않음을 확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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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둘러싼 남성들의 은밀한 공모 혹은 연대
_ '싸나이'들이 놀다간 자리에 남은 여성들,
이 거대한 공모의 장에 노출된 수많은 피해자들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최근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08년 12월에 발생한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보고서'가 또 다시 채택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대법원은 가해자 김모 씨에게 내려진 징역 3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프레시안은 ‘최종 결론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로 유명한 법원에서조차 종결된 사건을 민주노총 내부가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2010년 1월 28일자).
오래전, 여성운동가들이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를 꾸려 그동안 쉬쉬했던 성폭력 사건들을 공개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조직보위’라는 논리로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던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가해자들의 실명이 공개되자 운동진영에서는 적지 않은 반향이 있었다.
십 년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호소’를 듣는다. 성매매와 성폭력의 정치적 분류와 배치를 넘어,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그 거대한 공모의 장에서 노출된 수많은 피해자들이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의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조속한 문제해결을 촉구하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치유를 위한 모든 행위들이다. 또한 가부장제 아래 성의 이중적 잣대를 옹호하는 부류의 연대가 권력이라는 옷을 덧입고 또 다른 이념과 원칙을 내세우는 것에 대한 날선 경계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부류 혹은 누군가의 도덕적 양심과 철학을 의심할 의도는 아니다. 그들이 연예인이나 사회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에 더 예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여느 사람에 비해 더 ‘바른 사람’이거나 ‘선량한 조직원’은 아니므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유독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 자격이 없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싸나이’들의 연대가 아니라 지극한 개인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함께 보듬을 ‘파트너’들이라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찰을 전제로 하는 개인들의 결집에서 비로소 변화와 희망이 자라나고, 이는 지금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결연히 내린 그 어떤 결단 못지않은 위대한 변혁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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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1:20 2010/02/0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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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looky

    Tracked from looky 2014/08/23 17:51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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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반 2010/02/03 12:02

    깊이 공감합니다

    • 그린비 2010/02/03 12:12

      아고, 감사합니다. 남성들도 공감을 할런지..함께 공감하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

  2. 퐁네프 2010/02/06 23:28

    이 글 덕분에 막달레나공동체라는 좋은 단체를 알게 되었네요.

    • 그린비 2010/02/07 18:41

      퐁네프님, 반갑습니다. (..*)
      좋은 단체 함께 후원해요. ^^!!